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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뜨기였던 이탈리아 마피아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범죄 조직이 된 사연
세계 모든 나라엔 크든 작든 범죄 조직이 있습니다. 우리와 가까운 중국엔 삼합회(Triad)가 있고, 일본엔 야쿠자(Yakuza)가 있습니다. 서구의 선진국도 마찬가지여서 미국엔 갱스터(Gangster)가 있고, 영국엔 클라임 펌(Carime Firms)이, 프랑스엔 밀리유(Le Milieu)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범죄조직을 부르는 하나의 통칭이 있습니다. 바로 마피아(Mafia)입니다. 현존 세계 최대 규모인 러시아의 5,000여개 범죄조직도 마피아라고 부릅니다.
다만 러시아의 상징인 붉은 색을 따서 레드 마피아라고 구별할 뿐입니다. 이렇듯 마피아는 세계의 모든 범죄조직을 일컫는 단어입니다. 하지만 원래 마피아는 이탈리아의 남부섬인 시칠리아의 폭력 집단을 말할 뿐이었습니다.
어떻게 이 한적한 섬의 몇몇 범죄자들이 범죄조직의 대명사가 된 것일까요?
이 모든 것들은 시칠리아의 지리적 위치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지도를 보면 시칠리아는 지중해의 거의 정 중앙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대항해시대가 시작된 15세기경만 해도 지중해는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바다였습니다.
그 시대만해도 유럽에선 지중해를 지배하는 자가 곧 세상을 지배하는 자였습니다. 그러니 지중해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시칠리아는 모든 나라가 군침을 삼킬 수밖에 없는 요충지였습니다. 시칠리아의 지배가 곧 지중해의 지배를 의미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칠리아의 주인이 끝도 없이 바뀌었습니다.
기원전 8세기의 그리스를 시작으로, 카르타고, 로마, 비잔티움, 아랍, 노리만, 게르만, 스페인 등, 그야말로 당대의 최강대국들이라면 빠짐없이 번갈아가며 시칠리아를 점령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시칠리아인들은 수없이 죽어 나갔고, 가혹한 착취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이 때문에 시칠리아인들은 외부인과 낯선 사람들에게 극도의 경계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정부와 공권력도 결코 믿지 않았습니다. 대신 가족과 친척, 마을 사람들이 뭉쳐 자신들의 재산과 목숨을 지켰습니다. 외세에 저항하던 소박한 시칠리아의 마을공동체가 바로 마피아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한 마을안의 가까운 사람들끼리만 뭉친다하여 시칠리아 마피아는 영화 대부의 주인공인 ‘콜레오네 패밀리’ 처럼 지역명+패밀리라고 이름 붙게 되었습니다. 콜레오네는 시칠리아의 주도인 팔레르모 근교의 한 작은 마을 이름입니다.
이 마을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규칙은 ‘오메르타(Omerta)’입니다. 침묵이란 뜻입니다. 문제가 생기더라도 가족이나 마을 안에서 해결해야 합니다. 이를 외부에 발설할 경우 마을에서 쫓겨나야 했습니다.
심할 경우에는 배신자로 간주되어 처벌되기도 했습니다. 수천 년간 쌓여온 이 독특한 풍조가 시칠리아에 마피아가 탄생하게 되는 역사적 배경이 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범죄 집단으로서의 마피아가 시칠리아에 나타난 것은 1800년대 초입니다. 이 시기의 시칠리아는 오랜 봉건제도가 무너지던 때였습니다. 다른 지역이 한창 산업혁명으로 달려가던 것과 달리 시칠리아는 그만큼 낙후된 지역이었습니다.
어쨌든 이 덕에 통일 이탈리아 왕국이 들어선 1861년에는 새로이 토지를 갖게 된 사람이 대폭 늘어났습니다. 1800년대 초에 비해 무려 10배나 많은 2만 여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러자 대지주와 소지주, 자영농 사이에 크고 작은 마찰이 끊임없이 일어났습니다.
무엇보다 대지주들이 토지를 빼앗기 위해 살인과 폭력을 일삼았습니다. 이에 소지주와 자영농들은 마을단위로 뭉쳐 복수로 맞섰습니다. 이게 마피아의 또 다른 상징인 벤데타(Vendetta), 즉 ‘피의 복수’입니다.
당시는 통일 왕국 초창기라 중앙의 행정력이 시칠리아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여기에 치안도 형편없었습니다. 우리의 경기도보다 두 배 이상 큰 시칠리아에 경찰이 고작 350명뿐이었습니다.
게다가 시칠리아의 공무원들은 극도로 부패해 갈등을 해결하기는커녕 터무니없는 액수의 뇌물을 요구하기 일쑤였습니다. 그야말로 당시 시칠리아는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상황이었습니다.
국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자 시칠리아의 소지주와 자영농들은 자신들의 재산과 생명을 지켜줄 보호자가 따로 필요했습니다. 다만 시칠리아의 오랜 성향 상 외부인은 믿을 수 없으니 그 보호자는 가까운 친인척이거나 마을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게 범죄조직으로서의 마피아입니다.
마피아는 돈을 받고 재산과 생명을 보호해주는 건 물론 복수도 대신해 주었습니다. 게다가 마피아가 중간에서 보증하기만 하면 서로 사기의 걱정도 없어서 계약도 순조롭게 이루어졌습니다.
시칠리아에선 마피아가 곧 경찰이요, 행정부였던 것입니다. 이 시기 시칠리아에서 가장 크고, 가장 신뢰받던(?) 마피아가 ‘코사 노스트라(Cosa Nostra)’였습니다. ‘우리들의 것’이란 뜻입니다. 외세에 저항하던 마을공동체에서 비롯되었음을 알려주는 전형적인 이름입니다.
‘코사 노스트라’는 영화 ‘대부(God Father)’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바로 그 마피아입니다. 사실 시칠리아 사람들에겐 공권력보단 마피아가 더 믿을만한 집단이었습니다. 그래서 마피아 출신들이 여러 도시에서 시장에 당선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기고만장해진 한 마피아가 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한 마을의 마피아 출신 시장인 프랜시스코 쿠치아(Francesco Cuccia)가 그곳을 방문한 무솔리니를 모욕한 것입니다. 1922년 파시스트 정권을 세운 베니토 무솔리니는 전국을 순시 중이었습니다. 그는 무솔리니에게 “내 보호아래에 있으면 많은 경호원을 데리고 올 필요가 없다”고 떠벌리는가 하면 무솔리니의 연설에 아무도 참석하지 못하게 방해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격분한 무솔리니는 로마로 돌아오자마자 곧바로 마피아의 해체에 나섰습니다.
파시스트 정권답게 초법적인 권한을 행사해 마피아로 의심되기만 하면 사형이나 장기형에 처했습니다. 무고한 희생자가 속출했지만 시칠리아의 마피아들은 궤멸적인 타격을 받았습니다. 천하의 무솔리니를 잘못 건드린 한 어리석은 보스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론 마피아가 이탈리아 전역은 물론 세계로 퍼지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1900년대는 이탈리아인들이 대거 미국으로 이주하던 때였습니다. 주로 가난한 남부인들로 무려 9백만 명이나 되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 100년이나 늦은 상황이었습니다. 이미 좋은 일자리는 먼저 온 아일랜드나 독일인들의 차지였습니다. 이탈리아인들은 온갖 허드렛일을 맡으면서 멸시와 차별의 대상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무솔리니에 쫓긴 시칠리아의 마피아 수천 명이 한꺼번에 미국으로 이주했습니다. 온갖 설움과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던 이탈리아인들이 속속 마피아의 조직원으로 합류했습니다.
급속히 세를 불린 시칠리아 마피아는 오랜 전통과 앞선 노하우를 바탕으로 당시 뉴욕을 지배하던 아일랜드와 유대계 조직들을 제압해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정도로만 끝났다면 시칠리아 마피아는 그냥 동네 불량배 정도로 머물렀을 것입니다. 그런데 때마침 미국에서 금주법이 시행되었습니다. 이게 시칠리아 범죄 조직을 세계적인 마피아로 키운 결정적인 계기입니다.
코사 노스트라를 중심으로 이탈리아 마피아는 즉각 밀수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그야말로 노다지였습니다. 금주법으로 술값은 천정부지로 뛰었고, 여전히 술을 마시려는 사람은 넘쳐났습니다. 술은 만드는대로 팔려 나갔고, 마피아는 재벌이 되면서 거대 조직으로 커갔습니다.
뉴욕을 ‘코사 노스트라’가 장악하는 사이 시카고는 나폴리 출신의 알 카포네가 지배했습니다. 그 역시 밀주사업으로 세력을 키운 마피아계의 최고 스타로 ‘밤의 대통령’이라고 불렸습니다. 이쯤 되자 미국 언론에선 이탈리아의 모든 범죄 조직을 마피아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점차 다른 나라 출신의 폭력 조직도 모두 마피아라고 호칭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무솔리니로 인해 고사해가던 이탈리아 본토의 마피아들도 부활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이 2차 대전 중 마피아의 협력을 얻어 시칠리아에 쉽게 상륙작전을 성공시킨 덕분이었습니다. 미군정은 마피아에게 시칠리아의 치안을 맡기기도 했습니다.
무솔리니때 시칠리아에서 도망쳐 이탈리아 남부에서 숨죽이며 살던 마피아들도 우익 정치 세력과 손잡고 백색테러에 나섰습니다. 공산주의의 확산을 두려워하던 미군정의 묵인이 있었던 덕입니다.
1933년 금주법이 폐지되자 미국의 이탈리아 마피아는 마약 사업에 손을 댔습니다. 밀주 판매의 노하우를 살려 마약 밀매업에 나선 것입니다. 미국 마피아와 협업 관계를 맺고 있던 이탈리아 마피아들 역시 마약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터키에서 재배한 양귀비를 들여와 시칠리아에서 가공한 다음 유럽과 미국에 팔아 막대한 이득을 올렸습니다. 마약 사업이 커지자 이권을 둘러싼 마피아들의 전쟁이 자주 벌어졌습니다. 이 와중에 일반인들의 피해까지 커지자 1960년대에 들어서 이탈리아와 미국 양쪽 모두에게 대대적인 마피아 소탕 작전이 벌어졌습니다.
1970년대에 들어선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미국에서 완전히 자리 잡게 되자 더 이상 마피아의 조직원이 되려는 사람도 없게 되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미국의 이탈리아 마피아는 점차 소멸해 갔습니다.
하지만 이탈리아 마피아는 1972년 제작된 영화 ‘대부(The God Father)’가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이 영화 덕에 마피아라는 용어는 세계 모든 나라의 어린이들까지 알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 후 마피아는 각 국의 범죄조직을 일컫는 단어로 확실히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이탈리아 본토의 마피아는 여전히 건재합니다. 이제 노골적인 총질과 살인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사업기반이 탄탄합니다. 과거 대부업과 마약사업으로 현금을 축적한 마피아들은 이제 마트, 레스토랑, 호텔, 은행 등, 아주 다양한 분야에 합법적인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현재 마피아가 거둬들이는 연간 수입은 이탈리아 국내 총샌산(GDP)의 약 7%에 이를 정도로 막대합니다.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워낙 큰데다 뇌물을 통한 정권계의 유착도 강해 이젠 없앨 방법도 없을 듯 싶습니다. 마피아의 본가인 시칠리아의 ‘코사 노스트라’도 여전합니다. 비록 나폴리의 조직인 ‘카모라(Camorra)’에게 1위 자리를 빼앗기고, 최근 가장 핫한 조직인 칼라브리아의 ‘은든란게타(N`Drangheta)’에게 유명세도 빼앗겼지만, 코사 노스트라는 아직도 이탈리아의 3대 마피아 중 하나로 건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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