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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돌담길을 걷는 연인은 헤어진다’에 얽힌 재미난 썰
덕수궁 돌담길만큼 연인들의 사랑을 받는 데이트 코스도 드뭅니다. 연인이 아니더라도 이 아름다운 1.1km의 길을 걷고 싶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누구나 좋아하는 이 길의 시작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습니다.
정동길이라고도 불리는 이 덕수궁 돌감길이 생긴 것은 1921년입니다.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덕수궁을 제국의 황궁으로 삼았습니다. 그런 고종이 1919년 죽자 일본은 곧바로 역사 지우기에 나섰습니다. 우선 덕수궁의 구모를 줄이기 위해 궁 중간쯤에 있는 영성문을 헐고 도로를 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모습과 달리 도로 한 가운데에 큰 나무를 심고, 궁전은 안쪽이 안 보이도록 높은 담장을 둘러쳤습니다.
이게 덕수궁 돌담길입니다. 길이 완성되자 일본은 일반 백성들에게 이 길을 공개했습니다. 남녀가 걷기 좋은 길이라고 알리는 것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창경궁을 동물원으로 만든 것처럼 궁궐이 갖고 있는 권위를 일거에 무너뜨리려는 음흉한 시도였습니다.
사정이야 어찌됐든 임금이 살던 궁전을 걸을 수 있다는 소식에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왔습니다. 그리고 울창한 나무와 높은 담은 남의 이목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당시의 연인들에게 무척 매력적이었습니다. 이 때부터 덕수궁 돌담길은 사랑길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이 길을 걷는 연인들은 헤어지게 된다.’ 는 괴담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누가 이 말을 시작했는지, 무슨 근거로 이런 말이 나왔는지 알 길이 없지만 그 소문은 지금도 연인들 사이에 남아 있습니다. 가설은 무척 많습니다.
첫째는 여성의 능이 있는 자리라 음기가 너무 쎄기 때문이란 것입니다.
실제로 이곳엔 신정왕후의 묘인 정릉이 있었습니다. 태조 이성계가 몹시 아꼈던 둘째부인입니다. 황후가 갑자기 죽자 태조는 묘를 궁 가까이 두고 싶었습니다. 4대문 안에 묘를 둘 수 없다는 당시의 금기를 깨고 강행한 것이죠. 첫째 부인 태생인 태종 이방원이 신정왕후 태생인 세자 방석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다음, 이 묘를 지금의 성북구 정릉으로 옮겨 버렸습니다. 지금은 흔적도 없지만 정릉의 ‘정’자를 따서 이 동네 이름이 정동이 되었습니다.
이런 속설에서 빠지지 않는 게 ‘여인들의 한’입니다.
둘째 가설이 바로 궁중 여인들의 원한 맺힌 사연입니다.
덕수궁의 후미진 곳엔 왕의 승은 한 번 입지 못하고 나이든 궁녀들의 거처가 있었다고 합니다. 외롭게 죽은 이들이 덕수궁 돌담길을 다정하게 걷는 연인들을 시기해 헤어지게 만든다는 것이죠. 이 궁전에 한을 쌓은 또 다른 여인으로는 광해군과의 스캔들로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목을 맨 한 과부의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셋째 가설도 여인들의 한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정동의 뒷골목엔 유난히 무당이 많아 무당골로도 불렸다고 합니다. 이 무당들이 주로 하는 일이 바람난 남편이 돌아오게 하는 주술이었습니다. 이들은 남근 조각상을 금줄에 줄줄이 걸어 놓고 남자들의 양기를 빨아 들이는 굿판을 별였습니다. 그러니 연인들이 다정하게 걷는 꼴을 못 본다는 것이죠. 실제로 덕수궁 근처에서 남근모양의 목각이 무더기로 발견된 적도 잇으니 여인들의 한이 서린 동네인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넷째 가설은 하이틴 소설처럼 약간 달달합니다.
덕수궁 근처엔 이화학당과 배재학당이 있었습니다. 두 학교는 걸어서 5분 정도의 가까운 거리에 있었습니다. 두 학교 중간에는 정동교회가 있습니다. 오랜 세월 광화문 돌담길로 연인들을 끌어당기는 노래인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에서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으로 나오는 바로 그 교회입니다.
신식학교에서 신식교육을 받으며 꿈을 키우던 이 학교 학생들은 정동 교회에서 몰래 만나 수줍은 연애편지를 주고받곤 했습니다. 암튼 학교를 가려면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같이 걸어야 했고, 정동교회에서 양쪽으로 갈라졌습니다. 이 모습이 이별하는 연인처럼 보인다 하여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면 헤어진다.”는 말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돌담길이 중간에 끊어진데서 유래했다는 해석입니다.
덕수궁 돌담길을 걷다보면 영국대사관저에 막혀 중간에 되돌아와야 했습니다. 이게 인연들의 인연을 끊어 놓은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여러 가설 중 가장 억지스러워 보이지만 이 마저도 2018년도에 돌담길이 이어졌기 때문에 더 이상 설자리가 없게 되었습니다.
가장 지지를 많이 받는 가설이 여섯 번째입니다.
현재의 서울시립미술관 자리에 대법원과 가정법원이 있었습니다. 이혼을 하려면 반드시 남녀가 함께 덕수궁 돌담길을 걸어 가정법원에 가야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사랑을 키워가는 연인들에게 오히려 덕수궁 돌담길은 가서는 안 되는 길이었습니다. 이혼하지 말고 사랑을 영원히 이어나가라는 의미에서 역설적으로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면 헤어진다.”는 소문이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경계의 의미라는 것입니다.
사실 7~80년대 연인만 해도 서울에서 마땅히 걸을 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장 인기 있는 덕수궁 돌담길이나, 창경원 길, 남산 계단 길에 몰렸습니다. 찾는 숫자가 많은 만큼 이 길에서 헤어지는 연인들의 숫자도 절대적으로 많을 수 밖에 없습니다. 나쁜 기억은 늘 오래 거거나 확대 재생산되기 마련입니다. 때문에 주변에 한명이라도 이곳에서 헤어지는 친구가 나오면 이게 점점 뻥튀기되어 이 소문이 사실인양 점점 더 확증편향 되어 갔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 가정법원이 엮이면서 “덕수궁 돌담길을 걸은 연인은 헤어진다”는 말이 전설처럼 오랫동안 떠돌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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