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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나이 개념, 왜 한국만 나이 세는 방법이 다른 것일까?

 

한국은 세계가 인정하는 디지털 강국입니다. 그만큼 변화에 적응하는 속도가 엄청납니다. 이젠 어떤 분야에선 적응을 넘어 변화를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그런데 유독 나이 문제에서 만큼은 아닙니다.

우린 세계에서 유일하게 ‘태어나자마자 한 살’이 되는, 소위 한국식 나이를 여전히 고수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 걸까요? 

우리나라엔 3개의 나이가 있습니다. 법적으론 세계의 나라 다른 나라들처럼 ‘만 나이’를 이용합니다. 의외라고 하실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민법 제 158조에 그렇게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공문서나 법조문, 병원진료기록 등은 모두 ‘만 나이’를 써야 합니다. 약봉투도 자세히 보면 ‘만 나이’가 쓰여 있습니다.

 

‘만 나이’는 각자의 생일을 기준으로 1년이 지나면 한 살을 더하게 되는 방식입니다. 구하는 방식은 생일이 지났으면 ‘만 나이=현재년도-출생년도’이고, 생일이 안 지났으면 ‘만 나이 =현재년도-출생년도-1’입니다. 

 

그런데 법적으로만 그럴 뿐 일상사에선 대부분 한국식 나이를 씁니다. 언제 태어나건 상관없이 태어난 해를 한 살로 보고, 새해의 첫날이 되면 한 살을 더 하는 방식입니다. 이를 보통 ‘세는 나이’라고 합니다. 구하는 방식은 ‘세는나이=현재년도-출생년도+1’입니다. 이 두가지도 복잡한데 우리나라엔 ‘연 나이’도 있습니다. 병역법과 청소년보호법에서 주로 사용하는데 빠른 행정을 위해 오직 년도만 사용합니다. 구하는 방식은 ‘연 나이=현재년도-출생년도’입니다.

 

그래서 어떤 날짜를 기준으로 하느냐에 따라 한 사람이 동시에 3개의 나이를 갖게 되는, 기상천외한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이게 오죽 복잡하면 포털마다 ‘만 나이 계산기’가 있습니다.

 

‘나이’는 ‘낳다’에서 나온 말입니다. 즉, 나은 날로부터 지나온 시간을 합친 게 나이입니다. 그런데 시간을 계산하려면 달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 세는 나이의 원조가 우리가 아니라 중국인 이유가 이것입니다. 그래서 중국의 달력을 하사 받은 동아시아의 나라들이 모두 ‘세는 나이’를 썼습니다.

 

음력은 농사에 도움이 되는 자연의 주기에 맞춘 달력입니다. 그러다보니 양력에 비해 불규칙하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윤달도 자주 있고, 한 달의 길이도 들쑥날쑥합니다. 그래서 중국은 매년 새로운 달력을 반포했습니다. 매년 날짜가 달라지니 생일은 믿을 만한 날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가장 확실한 기준은 새해 첫날입니다. 그래서 불안한 ‘만 나이’ 대신, 새해 첫날 모두가 함께 나이를 먹는 ‘세는 나이’를 동아시아의 농경 국가에서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설날 떡국을 먹으면 한 살 더 먹는다.”고 합니다. ‘한 살, 두 살’하는 나이를 세는 단위인 살은 설에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한 설, ‘두 설’이라고 했습니다. 동물의 숫자를 세는 단위인 마리가 머리에서 나온 것과 같은 모음 교체 현상입니다.

 

어쨌든 자꾸 날짜가 변하는 생일을 기준으로 하는 것보단 매년 정확하게 오는 설을 몇 번이나 보냈는지를 세어서 나이를 정하는 게 훨씬 직관적으로 이해가 쉬웠습니다. 이렇게 되면 나이에 따른 서열을 분면하게 할 수 있어서 공동체 생활이 이로울 수밖에 없는 농경사회를 안정적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런 연유로 농경 국가에선 새해 첫날은 떠들썩하게 보내지만 생일은 별 의미가 없었습니다. 아기의 첫 돌 정도만 중요할 뿐 생일은 노인이 되어서야 자식들이 챙겨주는 날이었습니다.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로서의 생일입니다. 그만큼 농경사회에선 노인이 중요했습니다. 농사엔 그들의 경험과 노하우가 절대 필요해서입니다.

 

동아시아의 ‘세는 나이’는 한자 문화권에서 0의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1부터 시작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0의 개념이 뚜렷한 유럽에선 그래서 태어나면 0살, 그렇지 못한 동아시아는 1사이란 것입니다. 유럽이 시작의 숫자로 1이 아닌 0을 사용하는 예가 많은 건 사실입니다. 건물의 엘리베이터만 해도 우리의 1층은 0층이나 지상층이라는 의미의 G(Ground)를 표시하고 있고, 2층부터 1, 2, 3의 순서로 나가 우릴 헷갈리게 합니다. 하지만 이는 요즘 ‘근거 없음’으로 굳어가는 중입니다. 동아시아의 수학수준이 최소한 17세기까진 유럽에서 앞서 있었고, 0에 대한 인식도 중국이 먼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더라도 중국이 시작의 숫자로 1을 쓰는 것은 매우 흔한 방식입니다. 대표적인 게 기년법입니다. 기년법은 특정 년도를 원년으로 삼아 그 후 1년씩 더해가며 특정 사건이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기록하는 방식입니다.

중국의 한무제가 기년법으로 연호를 처음 쓴 이후 한국과 일본에도 널리 퍼졌습니다. 이 기년법은 원년을 0년이 아닌 1년으로 본다는 점에서 ‘세는 나이’ 방식과 아주 정확히 일치합니다. 이 기년법이 태어나자마자 1살로 치는 ‘세는 나이’를 만들었는지 여부는 모릅니다. 다만 이런 방식의 숫자 쓰임이 동아시아에선 일반적이라는 걸 확실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원조국인 중국은 더 이상 세는 나이를 쓰지 않습니다. 그 영향권인 일본, 몽골, 베트남도, 심지어 북한도 ‘세는 나이’를 버리고 ‘만 나이’를 실생활에서 사용 중입니다. 동아시아권과 비슷한 ‘세는 나이’를 쓰던 이란 터키 키프로스(사이프러스) 같은 서아시아권 국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지금 시대의 ‘세는 나이’는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가장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12월 31일에 태어난 아이들입니다. 이들은 ‘세는 나이’에선 단 하루 만에 2살이 되어야 합니다. ‘만 나이’에 비해 무려 2살이나 차이나는 것은 누가 봐도 비합리적입니다. 이 때문에 연말에 출산 예정인 임산부들은 큰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나중에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사실상 1년 차이가 나는 1월생들에게 치일까봐서입니다 .

‘세는 나이’가 이 나이 때의, 시간에 따른 커다란 신체적, 인지적 발달 차이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공기관에서도 사안에 따라 ‘세는 나이’와 ‘만 나이’, ‘연 나이’를 반복해서 확인해야 하니 행정효율에도 좋을 리 없습니다. 뉴스에 보도된 인물의 나이가 뭘 기준으로 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재검색을 해야 한다면 이도 사소하나마 시간 낭비입니다. 이 글로벌한 시대에 외국인에게 ‘한국 나이’를 별도로 설명해야 하는 것도 사회적 비용입니다.

 

재수 없으면 외국 여행 중 경찰에게 자신의 나이를 잘못 말했을 경우 허위 진술로 유치장에 감금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세는 나이’를 포기하지 않는 다는 것은 불편함을 넘어선 다른 효용성이 있다는 얘기일 것입니다.

 

한국은 나이로 관계를 맺는 나라입니다. 누구를 만나 통성명을 하고 나면 곧바로 나이 파악에 들어갑니다. 그걸로 호칭과 서열이 정리되면 그때부터 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그런데 만 나이를 쓰면 어떻게 될까요? 그럼 그자리에 모은 모든 사람들의 생일을 일일이 파악해야 합니다. 생일을 알아냈다 하더라도 그 많은 사람들의 나이를 모두 기억하는 건 어렵습니다. 여러모로 무척 번거로운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한국식 나이를 쓴다면 단번에 이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같은 해에 태어난 사람들은 몇 월생이든 관계없이 전부 한 계급으로 이미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빨리빨리 문화와도 잘 통합니다 .이게 여러 불편함을 넘어서는 ‘세는 나이’의 효용성입니다.

2016년 리얼미터에서 이에 관한 여론조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이 조사에 따르면 ‘세는 나이’ 찬성이 46.8%, ‘만 나이’ 찬성이 44%로 나왔습니다. ‘세는 나이’ 찬성이 약간 우위입니다. 그런데 의외로 ‘세는 나이’의 가장 강력한 찬성층이 20대로 52.8%가 지금의 한국식 나이를 지지했습니다. 나이와 학번이 거대한 기수가 된 이 세대들은 만 나이로 바뀔 경우의 혼란을 무척 꺼려하는 듯합니다.

생일에 따라 나이가 달라진다면 친구가 갑자기 형이나 언니가 되거나, 후배가 졸지에 친구가 되어 서로 말을 놓아야 되는 난처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걸 사소한 혼란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호칭과 존비어가 뒤바뀐다는 건 나이에서 오는 권력관계의 변화를 뜻하는 것이니 이는 누군가에겐 무척 예민해질 수 있는 미묘한 문제입니다.

한국식 세는 나이를 옹호하는, 가장 흔한 모범답안은 ‘한국에서는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사람으로 존중해 한 살로 인정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이 서양에 비해 태아를 더 존중했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니 이는 더 논의할 필요조차 없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만 나이’가 세계적인 대세인 것은 분명합니다. 우리나라의 여론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2018년 SBS의 조사에선 ‘만 나이’ 사용을 지지하는 사람이 61.8%로 대폭 늘어났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나이는 “세상에 태어나서 지나온 시간의 합”입니다. 그런 면에서 태어난 날과 달이 모두 다른 전국민이 1월1일에 일제히 나이를 먹는 다는 것은 따지고 보면 아주 이상하고 비합리적입니다. 

사실 새해 첫날이 되면 우울해하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이건 순전히 억울하게 나이를 먹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만으로 나이를 센다면 당연히 새해 첫날의 우울증도 없어질 것입니다. 더구나 대한민국은 젊게 보이기 위해 보톡스, 성형 등 온갖 애를 다 쓰는 나라입니다. 인구노령화라는 심각한 문제도 안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2살이나 더 많은 ‘세는 나이’를 굳이 고집할 필요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나이가 벼슬’인 한국에선 나이 먹기 싫어할 때만 ‘만 나이’를 쓰고 싶어 한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게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세는 나이’와 ‘만 나이’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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