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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여우가 멸종된 이유와 여우에 관련한 소설, 그 많던 구미호는 어디로?!
여우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남극과 북극 같은 극한의 기후만 아니라면 여우는 거의 모든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그만큼 여우는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매우 뛰어난 동물입니다. 하지만 단 한나라만 예외입니다. 바로 우리나라입니다. 서식환경이 그 어디에도 뒤질게 없는 나라인데도 말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모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야생동물 중 사실 여우만큼 우리와 친숙한 동물도 없습니다. 호랑이가 없으면 여우가 왕노릇을 한다는 호가호위나, 여우는 죽을 때 구릉을 향해 머리를 두고 초심으로 돌아간다라는 뜻의 수구초심은 아주 오래전부터 쓰던 사자성어입니다.
보통 단란한 가족을 “토끼같은 자식들과, 여우같은 마누라”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여우같은 마누라와는 같이 살아도, 곰같은 마누라와는 같이 못 산다.” 라는 속담도 있습니다.
남자를 잘 홀리는 여자를 ‘불여우’라고 표현하곤 했는데, 바보 온달도 처음 평강공주를 만났을 때 혹시 “여우가 아닐까” 라고 의심한 바 있습니다. 맑은 날 내리는 비를 여우비라고도 합니다. 옛날엔 우리나라에도 여우가 무척 많아서 각 고을마다 여우고개가 하나 정도는 있었습니다. 서울에선 지금 사당동과 과천을 연결하는 남태령이 여우가 많이 출몰한다고 해서 여우고개라고 불렸습니다.
어렸을 적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라는 동요를 안 불러본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어 “밥 먹는다. 무슨 반찬? 개구리 반찬, 죽었니, 살았니?”라고 물어보고, 살았다고 답하면 여우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 잽싸게 도망쳐야 했습니다. 이렇듯 여우는 아이들의 흔한 놀이에도 등장할 정도로 사람과 아주 가까이에서 살아온 동물입니다. 그건 여우가 좋아하는 먹이가 주로 사람 근처에 있기 때문입니다.
여우가 거의 모든 나라에 산다는 것은 어떤 음식도 잘 먹는다는 얘기입니다. 물가에 사는 여우는 물고기를 잡아 먹기도 하고, 개구리나 도마뱀으로 배를 채우기도 합니다. 이게 없으면 곤충을 잡아먹거나, 그것마저 없으면 과일이나 나무 열매도 먹는 잡식파입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여우가 가장 좋아하는 먹이는 쥐와 닭 토끼 같은 작은 포유류입니다. 모두 사람과 가까이에서 사는 동물들입니다.
닭과 토끼를 키우는 농촌에선 매일 밤 여우와 전쟁을 해야 했습니다. 여우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닭장과 토끼장을 아무리 단단히 고쳐도 여우는 어떡하든 방법을 찾아내 몇 마리씩 훔쳐가곤 했습니다. 그래서 ‘여우같은 놈’이라는 욕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입니다.
여우가 더 밉상으로 보였던 것은 주로 무덤가에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는 여우가 시체를 좋아해서가 아닙니다. 원래부터 여우가 살기 좋아하는 곳이 전망 좋고 양지바른 곳입니다. 시골에선 딱 이런 곳이 무덤입니다. 무연고 묘 같은 경우엔 사람들이 잘 드나들지도 않습니다. 여우는 햇볕 잘 드는 곳에 굴을 파고 그곳에서 새끼를 키웁니다. 그리고 아래가 내려다보이기 때문에 침입자를 감시하기도 좋고, 먹잇감의 이동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여우는 뛰어난 청각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무려 100m 밖에서 쥐가 짹짹거려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여우가 직접 굴을 파는 것도 아닙니다. 여우는 주로 오소리가 파 놓은 굴을 빼앗습니다. 뺏는 방법이 아주 영악합니다. 오소리는 조금 결벽증이 있는 동물입니다. 지저분한 것을 참지 못합니다. 여우는 이를 이용합니다. 오소리가 굴을 비운 사이 여우가 들어가 똥을 싸고 오줌을 눠서 난장판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여우는 원래 냄새가 지독하기로 유명한 동물이기도 합니다. 이를 견디다 못한 오소리가 굴을 포기하면 그 때 여우가 새끼를 데리고 입주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여우가 영리함이 나옵니다. 여우는 굴을 파는 것은 서툴지만 굴을 개보수하는 데는 천재입니다. 여우굴의 길이는 보통 5~20m입니다. 여기에 굴의 출입구를 많으면 10개 정도를 만들어 놓습니다. 굴이 무너지거나 침입자가 있을 경우를 대비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사람이 여우를 잡는 것은 무척 어렵습니다. 여우는 이 많은 출입구를 이용해 신출귀몰하게 숨거나 나타납니다.
여우는 또한 먹이가 생기면 필요한 만큼만 먹고 나머지는 이 굴 속에 보관합니다. 여우는 정말 대단히 용의주도하고 영리한 동물입니다. 글머에도 야생에서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여우의 자연 수명은 10년이 넘지만 100% 야생에선 3~4년을 생존하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여우로선 생존을 위한 최선이지만, 이 여우를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은 여우를 일방적으로 오해하기도 합니다. 여우가 시체를 파먹는 요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1천 년을 견딘 여우는 꼬리가 9개 달린 구미호가 된다는 상상력으로 발전했습니다.
구미호는 드라마의 아주 인기 있는 단골 소재라 요즘엔 여우하면 곧바로 구미호를 연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옛날 이야이에도, 우리의 옛 기록에도 구미호는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주로 백여우에 관한 이야기일 뿐이고, 구미호는 주로 일본의 민담에 등장합니다. 구미호는 일제시대에 일본에서 건너온 이야기인 것으로 보입니다.
어쨌든 이렇게 해서 여우는 교활하고 사악한 동물의 상징이 되었습니다만 이제 우리에겐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라고 물어볼 여우가 없습니다. 1970년대에 지리산에서 포획된 여우를 마지막으로 갑자기 이 땅에서 사라진 것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개체수가 줄어들 수는 있지만 이렇게 여우가 완벽하게 멸종된 것은 다른 나라에선 유례가 없습니다. 물론 몇 가지 짐작되는 이유가 있기는 합니다.
한국의 여우는 일제시대 때부터 서서히 줄어든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강점기 때엔 여우 목도리가 무척 유행했습니다. 여우 한 마리를 통째로 사용해 만든 여우 목도리는 당시 신여성의 실수품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일본 여성들에도 여우목도리는 부의 상징으로 여겨져 그 때 수없이 많은 여우가 남획되었습니다. 여우 목도리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우리나라에서 유행했습니다.
1960~70년대에는 외화벌이를 위해 많은 여우 가죽이 수출되기도 했습니다. 암튼 1953년 휴전 직후 창경원의 동물원을 복원하기 위해 여우를 포획 했더니 생각만큼 잘 잡히지 않아 애를 먹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미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여우가 드물어지기 시작했다는 방증입니다. 그 다음 원인으론 여우의 서식 공간이 줄어들었다는 점이 꼽히고 있습니다. 6.25가 끝나고 1950년대 중반이 되면서 우리나라는 베이비붐이 불면서 인구가 본격적으로 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1960년대부턴 급속한 산업화가 진행되었습니다. 이는 많은 면적의 산림 훼손을 가져왔습니다. 여우가 살만한 공간도, 여우의 먹잇감도 급속히 줄어들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위기를 맞은 여우에게 1960~70년대 전국적으로 벌어진 ‘쥐잡기 운동’이 결정타를 날렸습니다. 당시 전국의 쥐는 6천만 마리 정도로 추정되었습니다. 이 쥐가 갉아 먹는 곡식이 전주시민 전체가 무려 1년 간 먹을 양과 같았습니다. 워낙 먹고 살기 어려웠던 시절이라 쥐를 잡아 이 곡식이라도 아껴야 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정부는 마치 군사작전하듯 일제히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전국에 쥐약을 놓게 했습니다. 구호도 살벌해 ‘간첩 때려잡듯 쥐를 때려잡자’였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기절초풍할 일이지만 당시 초등학생들은 집에서 잡은 쥐의 꼬리를 잘라 학교에 가져가면 학용품 선물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많은 쥐를 잡을 수는 있었지만 이게 여우에겐 재앙이었습니다. 여우의 먹잇감이 대폭 사라지기도 했고, 쥐약을 먹은 쥐를 먹는 바람에 수많은 여우가 죽었습니다. 물론 당시엔 쥐가 여우의 식량이고, 쥐가 없으면 여우도 사라진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알았다고 하더라도 상관하지 않았을 테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여우가 우리나라에서 멸종됐다는 게 학계의 설명이긴 합니다. 하지만 이게 다는 아닐 것 같습니다. 대량으로 쥐약을 놓는 나라가 우리뿐이 아닙니다. 더구나 여우와 식성이 비슷한 족제비나 너구리는 멀쩡하기만 합니다. 때문에 여우가 멸종된 데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전염병이 한 몫 했을 것으로 생태학자들은 의심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선 소백산 일대에서 여우를 복원하기 위한 작업이 진행 중입니다. 이 산에 여우가 좋아하는 쥐와 파충류, 견과류 등이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리산의 반달곰 복원사업보다도 진척이 더 지지부진하다고 합니다. 혹 여우의 이례적인 멸종이 우리나라의 생태계에 적신호가 켜진 것이 아닌지, 아니면 우리가 모르고 있는 사이에 또 다른 종의 멸종이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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