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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통합의 뿌리가 된 18세기의 영국 오렌지족의 그랜드 투어의 역사
1990년대의 우리나라에 오렌지족이 있었습니다.
부자 부모의 돈으로 명품 사고, 외제차 사고, 밤마다 나이트클럽에서 놀던 일부 청년들을 가리키는 용어였습니다. 이들이 대개 미국 유학중이거나 유학생 출신들이라 영어를 마구 섞어 쓴다는 특징이 있었습니다.
17~8세기의 영국에도 이런 족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오렌지가 아니라 마카로니족이라고 불렸습니다. 오렌지족과 마찬가지로 이들의 부모도 엄청나게 부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장기 유학도 다녀왔습니다. 다만 이들은 되도 않는 이탈리아어와 프랑스어를 섞어 쓰면서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하려 했습니다.
마카로니는 이들이 이탈리아에서 먹던 파스타에서 따온 말입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마카로니족은 유럽의 역사에 중대한 변화와 발전을 가져왔습니다.
17~8세기 영국의 귀족들 사이엔 재산과 작위를 물려줄 장남을 해외로 장기여행을 보내는 게 유행이었습니다.
주 여행지는 프랑스와 이탈리아였습니다. 기간은 보통이 2~3년, 길게는 10년이었습니다. 간혹 집안에 따라선 차남 이하의 아들들도 여행을 보냈는데, 경비가 워낙 많이 들었기 때문에 서너 달 동안 프랑스의 파리를 다녀오는 정도였습니다.
당시의 영국은 16세기말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무너뜨리면서 유럽의 신흥 강호로 떠오르던 때였습니다. 하지만 세계의 유행을 선도하는 프랑스나 르네상스라는 새로운 시대를 연 이탈리아에 늘 문화적인 열등감을 갖고 있었죠. 때문에 영국의 부자 부모들은 아이들이 대륙의 선진국에서 외국어를 익히고 프랑스의 세련된 매너와 이탈리아의 예술을 배워오길 바랬습니다.
이를 그랜드투어(Grand Tour)라고 했습니다.
현대 사회의 유학과 해외여행의 시발점이지요. 혹시 많은 자동차에 GT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걸 아시는지요? 국산과 외제 가릴 것 없이 신경 써서 보면 트렁크 쪽에 GT라고 쓰인 차가 꽤 있습니다. “장거리를 안락하게 달릴 수 있는 고성능 자동차” 대략 이런 뜻입니다. 이 GT가 바로 “Grand Tour”에서 나왔습니다. 귀한 아들이 장거리를 안락하고 안전하게 다녀올 수 있도록 귀족 부모들은 여러 가지로 신경 쓸 것이 많았습니다.
유럽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던 종교 전쟁의 여파가 아직 남아 있던 시기였습니다. 산적과 해적들도 곳곳에서 출몰했습니다. 우선 일행이 많으면 좀 더 안심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행 내내 시중을 들어줄 하인을 여럿 동행시켰습니다. 보통 3년의 기간을 잡는 여행이었기 때문에 짐도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귀족과 교류하는 격조 높은 자리나, 무도회도 많을 것이기 때문에 양복도 여러 벌 가져가야 했습니다. 물론 패션의 본고장인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새옷부터 여러 벌 다시 샀지만 말입니다.
파리나 로마 가는 길에 묵어야 할 작은 도시에선 잠자리도 분명 불편할 것이기 때문에 침구와 목욕통도 가져갔습니다. 이 모든걸 실으려면 여러 대의 마차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니 그랜드투어 초반엔 마차를 몰 여러 명의 마부도 데려가야 했습니다.
초기 기록을 보면 이탈리아 음식이 맛없다는 젊은 귀족들의 투정이 꽤 있었습니다. 영국이야말로 음식 형편없기로 악명이 높은 나라인데 말이지요. 그래서 일부 귀족 집안에선 식사를 담당할 요리사도 함께 보냈습니다. 이들의 불평 중엔 독일의 도로 사정이 가장 엉망이라는 것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곳곳에 아우토반이 깔려 있는 나라에 말이죠.
어떤 팀은 화가도 데리고 갔습니다. 카메라가 없으니 여행을 그림으로 기록하기 위해서입니다. 아플 경우를 대비한 의사도 동행자 중에 있었습니다. 일행 중엔 간혹 ‘침실 친구’도 있었습니다. 먼 길 가는 아들을 둔 귀족 부모의 걱정거리 중엔 ‘여색에 빠진 방탕한 생활’도 있었습니다. 특히 필수 방문지 중 하나인 베네치아가 문제였습니다.
당시 베네치아는 유럽 최대의 환락도시로 매춘부만 2만 명이 넘었습니다. 이곳에서 그랜드투어를 떠나온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젊은 귀족들은 매춘부 뿐 아니라 귀부인들의 집중적인 타깃이었습니다.
당시 유럽의 결혼은 가문과 가문의 결합이었습니다. 이들은 아들을 낳아 결혼의 의무를 다한 후엔 남녀 불문 정부를 두는 것에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서로 간에 사랑 없는 결혼을 이런 식으로 만회한 셈입니다.
이런 지뢰밭에 베네치아 뿐 아니라 파리, 로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환락에 빠져 지내지 않도록 일부 귀족 부모들은 가난한 집안의 딸과 계약을 맺어 여행 내내 잠자리를 함께 하도록 했습니다. 이게 ‘침실 친구’입니다.
그렇다고 이 젊은 귀족이 마냥 놀기만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랜드 투어의 본질은 교육 여행입니다. 어떻게 해서든 귀족 부모들은 아들이 공부하게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동행교사를 두어 수십 명에 달하는 그랜드투어팀을 이끄는 것은 물론 수시로 아들의 가정교사 역할을 하도록 했습니다. 이들은 플아스어나 이탈리아어에 능통해야 했고, 해외여행 경험과 풍부한 학식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주로 대학교에서 교수로 근무하는 학자들이 이를 맡았습니다.
귀족 자제의 동행교사를 맡아 수년 간 함께 여행을 한 사람 중에선 유명 인물이 꽤 많았습니다. 리바이어던을 집필한 영국의 철학자 토머스 홉스, 근데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 인식론의 창시자이며 계몽 철학자인 존 로크, 여행기로 유명한 수필가 조지프 애디슨, ‘로마제국 쇠망사’로 유명한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 등, 이 내로라하는 지식인들이 모두 젊은 시절 동행교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애덤 스미스의 경우 글래스고 대학에서 교수를 하고 있었는데 연봉의 두 배와 연금을 보장받았습니다. 애덤 스미스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여행 중 책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게 ‘국부론’입니다.
동행교사가 되면 우선 여행 코스를 짜야 합니다. 대개는 배로 이틀에 걸쳐 도버 해협을 건넌 다음 프랑스 가이드의 도움을 받아 파리로 가서 일정의 절반 정도를 지냈습니다. 그리고 스위스의 알프스를 넘으며 자연을 본 다음 이탈리아의 밀라노, 베네치아, 피렌체, 피사 등을 거쳐 로마로 들어갔습니다. 때론 개몽주의 철학자인 볼테르나 루소 같은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을 만나기 위해 먼 길을 둘러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최종 목적지가 로마인 것은 거의 같았습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은 역순이거나, 독일을 거쳐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서 배를 타고 도버 해협을 건너기도 했습니다. 젊은 귀족들은 파리나 로마 같은 대도시에선 사설 아카데미를 다녀야 했습니다. 이곳에선 상류층의 언어인 프랑스어와 수학, 역사, 지리 같은 학문, 그리고 대화술, 승마, 펜싱, 춤, 테니스 등을 배웠습니다.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에서 라틴어 고전을 외우는 것보단 훨씬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데다 각국에서 온 지배 계급 간에 인맥도 다질 수 있어서 만족도가 무척 높았습니다.
이 사설 아카데미 선정도 역시 동행 교사가 맡았습니다. 동행 교사는 또한 여행 중 경비 지출을 결정하는 권한도 갖고 있었습니다. 이는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젊은 아들이 못 미더웠기 때문이기도 하고 유흥에 지나치게 돈을 낭비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현금을 가지고 다닌 것은 아닙니다. 강도나 도둑들의 표적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당시만 해도 금융제도가 제법 발달해서 영국 은행의 신용장으로 필요한 돈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어쨌든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이 젊은 귀족을 서커스단의 곰에 비유하여 동행교사를 ‘Bear Leader’ 즉, ‘곰 조련사’라고 불렀습니다.
숙소는 일행이 적을 경우 호텔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대개는 하인들까지 같이 묵어야 했기 때문에 제법 큰 집을 빌려 함께 생활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랜드투어 비용은 어느 정도였을까요?
18세기의 솔즈베리 백작은 정확한 기간은 나와 있지 않지만 대학교수 연봉의 11배인 3,300파운드를 썼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를 오늘날의 우리돈으로 환산하면 7억 5천만 원 정도이고, 어떤 이는 약 11억 원이 들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여행 기간과 시기, 코스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아무리 적게 써도 1년에 2억 원 이상은 썼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 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이 들었습니다.
대부분의 귀족 자제와 동행교사는 쇼핑에 대한 특명을 별도로 받아왔습니다. 파리에선 옷과 보석을, 로마에선 회화와 조각과 골동품을, 암스테르담에선 주로 책을 구입하는 데 돈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무얼, 얼마만큼 쇼핑했느냐에 따라 여행 경비는 계속 늘어났습니다. 재밌는 점은 이 당시 여행이 확대됨에 따라 지금과 같은 여행가이드북이 여럿 출판되었는데, 공통적으로 “외국에선 결코 같은 영국인을 아는 척 하지 말라” 고 쓰여 있었습니다. 실제로 파리와 로마 등엔 많은 영국 예술가들이 진출해 있었는데 이들이 어리숙한 귀족 자제들에게 바가지를 씌우거나 가짜 골동품을 파는 일이 흔했습니다.
이렇게 온갖 야단법석 끝에 런던으로 돌아온 이 귀족 자제들은 곳곳에 로마를 배경으로 한 초상화를 걸어 놓고 자신들이 해외유학파임을 과시했습니다. 그리고 킷캣이나 딜레탕티회 등 유학파들만 모이는 사교클럽을 만들어 런던에서도 해외에서와 같은 향락을 즐겼죠.
이들은 해괴한 언어와 말투, 패션, 행동으로 곧 ‘마카로니족’이라는 경멸적인 별칭으로 불렸습니다. 더구나 이들이 옮겨온 성병은 런던의 심각한 사회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랜드투어는 상류사회의 일원임을 인정받는 자격조건이었기 때문에 런던의 귀족 사이에서 점점 더 확대되어 갔습니다.
얼마 후엔 독일과 북유럽, 러시아의 귀족으로까지 번져 그랜드투어는 전 유럽적인 현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점차 젊은 귀족뿐 아니라 전통 귀족들과 이들의 후원을 받은 지식인들까지 그랜드투어에 직접 나서게 되었습니다. 괴테가 1816년에 출판한 ‘이탈리아 기행’이 바로 그랜드투어에서 나온 책입니다.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이 터지면서 그랜드투어는 일단 중단되었지만, 유럽의 역사에 끼친 그 영향력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우선 ‘마카로니족’이라고 불렸던 철부지 귀족 자제들은 나중에 영국의 전성시대를 여는 주역이 되었습니다. 이는 그랜드투어로 섬나라의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 국제 감각을 키운 게 한몫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바가지를 쓰며 사온 회화와 조각 덕에 변변한 미술관조차 없던 영국은 영국박물관과 내셔널갤러리를 예술작품으로 채울 수 있었습니다.
또한, 그랜드투어는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 각국의 지성들과 귀족들이 국경을 넘어 교류하게 함으로써 18세기 후반의 계몽주의를 유럽 전역으로 퍼지게 해주었습니다. 이는 미국의 독립과 프랑스 혁명에 큰 영향을 미치면서 서구의 근대화를 앞당기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지식인들과 각국의 오피니언 리더들은 이 그랜드투어를 통해 자신들이 모두 그리스로마라는 한 뿌리에서 나왔다는 인식을 처음으로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유럽’이란 어휘가 보편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도, 유럽을 하나의 단위로 생각한 인쇄물이 출간된 것도 이때부터죠.
지금의 EU통합의 뿌리를 파고들면 그게 바로 그랜드투어와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내용은 연세대 사학과 설혜심 교수님의 저서 ‘그랜드 투어(휴머니스트 출판)’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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