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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다이어트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19세기 말 서구의 여성들은 수백 년 간 자신들을 옥죄던 코르셋을 벗어 던졌습니다. 이는 여성의 해방을 상징하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안가 여성들은 다시 코르셋을 입기 시작했습니다. 이름은 달랐습니다.
코르셋의 20세기판 새 이름은 다이어트입니다.
다이어트하면 여성부터 떠올리겠지만 원래는 남성의 것이었습니다. 중세의 기독교 시대에도 비만은 환영받지 못하는 분위기였습니다. 한때는 악마에게 영혼을 판 증거라며 죄악시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는 한편으로 살찐 몸은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먹고 살기 힘든 시절엔 그게 부의 상징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남성들이 갑자기 살이 찌는 건 치명적인 문제일 수 있습니다. 갑옷을 입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유럽에서 자주 전쟁이 벌어지던 시절, 갑옷을 입지 못한다는 건 남자들에게 큰 불명예였습니다. 몸이 무거워지면 말을 타고 날렵하게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목숨이 달려 있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19세기까지의 다이어트 관련 서적은 대부분 남성들을 위한 책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19세기 말이 되면서 다이어트는 점차 여성들의 문제가 되어 갔습니다. 여성들의 신체에 중대한 변화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전만 해도 여성들의 식사량은 남성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주로 남자들이 먼저 먹고 남은 음식을 여성들과 아이들이 나눠 먹었죠. 가족이 먹고 살기 위해선 남자의 물리적인 힘이 중요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이 때문에 14~18세기 여성들의 체구는 그 이전에 비해서도 왜소했습니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오히려 풍만함이 미인의 상징이었죠. 다산과 풍요가 무엇보다 중요한 사회적 가치였으니까요. 그러다 산업혁명 후 식단이 풍성해지면서 마치 그간의 굶주림을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여성들은 식탐을 부리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19세기부터 여성들의 키가 비약적으로 커지게 되었고, 몸무게는 그보다 더 늘어나게 됐죠. 그러면서 다이어트가 조금씩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게 된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특히 영국에서 독립한 신생국 미국에서 두드러졌습니다.
영국과 비교도 안 되는 드넓은 비옥한 영토에서 나는 풍부한 먹거리 덕택입니다. 여기에 19세기말부터는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여성들이 가정에서 요리하는 시간이 줄어든 반면, 외식 문화가 본격적으로 발달하게 되죠. 그에 맞춰 미국에 대중적인 식당도 엄청 늘어났고, 이게 미국인들의 과식을 부추기게 되었습니다.
사실 미국의 기름진 음식이 얼마나 쉽게 비만을 가져오는지는 하와이를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원래의 하와이 원주민들은 무척 날씬했습니다. 19세기 후반 미국이 하와이에 본격 들어가던 시절의 하와이 원주민 사진을 보면 뚱뚱한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식생활이 미국식으로 바뀌면서 주민의 60%가 갑자기 비만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하와이는 미국에서 심장병과 당뇨병 사망률이 가장 높은 지역입니다.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체중계의 보급은 미국인들로 하여금 처음으로 자신의 몸무게를 구체적으로 알게 해주었습니다. 이게 사회 전반의 다이어트 분위기를 끌어 올렸죠. 이 당시 자신의 체중을 잰다는 건 무척 신기한 일이었기 때문에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래서 시청이나 보건소는 물론 은행과 극장 심지어는 식당과 기차역에도 체중계가 설치되었습니다.
하지만 여러 사람이 보는 곳에서 몸무게를 재는 것은 특히 여성들에게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습니다. 더구나 정확한 체중을 알려면 옷을 벗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집에서 잴 수 있는 개인용 체중계도 보급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덕에 사람들은 자신의 몸무게를 계속해서 확인할 수 있게 되었고, 수치로 표시된 자신의 몸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와 비슷한 역할을 한 게 한 가지 더 있습니다.
20세기 초에 대유행이었던 생명보험 가입입니다. 보험과 다이어트가 무슨 상관일까 싶지만, 생명보험을 들려면 신체에 관한 온갖 정보를 기입해야 했습니다. 당연히 이 중에는 체중도 있었습니다. 수치로 명확하게 표기된 몸무게는 비만이 많은 미국 사람들에게 다이어트의 필요성을 상기시켜 주곤 했습니다.
사진의 발명역시 다이어트 열풍을 만드는데 한몫했습니다. 19세기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일반에 보급된 카메라는 20세기 초가 되면 작고 가벼운 카메라가 만들어져 보통 사람들도 사진을 찍기가 훨씬 쉬워졌습니다. 사진은 자신의 몸을 객관적으로 보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같이 찍은 사람들과 자신의 몸을 비교할 수도 있게 해주었습니다. 더구나 사진 덕에 신문과 잡지에서 다이어트 관련 기사를 만드는 것도 훨씬 쉬워졌죠. 이것들보다 미국에서 다이어트가 본격화된 더 중요한 이유로 기성복을 꼽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땅덩이가 큰 미국에선 1870년대부터 일찌감치 통신판매가 발달했습니다.
당연히 옷가게도 멀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옷도 통신 판매를 통해 샀죠. 그런데 막상 입어보면 안 맞기 일쑤였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류회사들은 옷을 몇 종류의 사이즈로 나눠 제작했습니다. 이게 기성복이죠.
당시의 의류 주문서를 보면 자신에게 맞는 사이즈를 선택하기 위해 신체의 어떤 부분을 어떻게 재야하는지 아주 상세히 안내하고 있습니다. 이제 사람들의 몸은 S, M, L 또는 ;44, 55, 66 등으로 나눠진 기준에 따라 분류되게 되었습니다. 즉, 몸에 옷을 맞추는게 아니라 옷에 몸을 맞추는 시대가 온 것이죠.
이러면서 사람들은 ‘원하는 사이즈를 입으려면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 는 사고방식이 뿌리 내리게 된 것입니다.
1차 세계대전도 다이어트를 촉진하는 묘한 분위기를 마련했습니다.
미국은 1917년 뒤늦게 세계대전에 참전했습니다. 애국주의가 팽배하던 시기였습니다. 이 시대의 표어는 “아무리 건강하고 정상적인 국민이라도 지금 살이 찐다면 비애국자다” 라는 것입니다. 전시배급제도가 도입된 상황에서 뚱뚱한 사람은 졸지에 사회적인 비판의 대상이 된 것이죠.
단순한 살빼기가 애국이라는 이데올로기로 둔갑하면서 다이어트는 전 미국적인 상황이 되었습니다. 사실 19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서구인들에겐 마른 몸에 대한 공포가 있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결핵 때문입니다.
결핵의 대표적인 증세 중 하나가 체중 감소였습니다.
하지만 이 무력, 결핵균이 처음으로 발견되고 치료제도 개발되었습니다. 이젠 몸이 말라도 걱정할 것 없이 더욱 다이어트에 매진할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런 여러 상황 속에서 19세기 말에 비로소 다이어트라는 단어의 사용이 일반화되었습니다. 그리고 각 잡지와 신문에 다이어트 관련 기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었죠.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칼로리와 비타민, 영양소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지금까지 활용되는 가장 핵심적인 다이어트 법이, 이 때 만들어졌습니다. 즉,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라는 것입니다.
이후 이를 기본으로 한 온갖 기발한 방법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 중에는 별 도움이 안되거나 오히려 몸을 헤치는 다이어트들도 많았는데, 20세기 초중반 할리우드 여성 스타들이 주로 했던 흡연 다이어트, ‘도움을 주소서 하나님, 악마는 내가 뚱뚱해지길 바랍니다.’ 같은 책을 베스트셀러로 만들었던 기도 다이어트,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가 했던 ‘잠자는 숲속의 공주’ 다이어트 등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이런 식으로 지금까지 나은 다이어트 방법만 1백년 간 3만여 종이나 됩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두 가지죠. 하나는 지금까지 해온 다이어트가 별 소용이 없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끊임없이 다이어트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이어트의 역사 라는 책을 보면 다이어트란 단어엔 ‘하루에 필요한 정량의 음식’ 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모든 동물 중 유일하게 필요한 음식 이상을 먹죠. 더구나 지금처럼 맛있는 게 넘쳐나는 세상에서 8먹는 걸 자제한다는 건 고문이나 다름없습니다. 한 손엔 다이어트 콜라, 또 다른 손엔 햄버거. 한쪽에선 다이어트 방송, 또 다른 쪽에선 그보다 더 많은 먹방. 이런 역설이 일상인 세계에서 다이어트는 과식에 대해 스스로 내린 벌이거나, 스스로 채운 코르셋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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