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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지구는 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종교재판장을 나오면서 혼잣말로 내뱉었다는 너무나 유명한 말입니다. 갈릴레오가 정말 이 말을 햇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하지만 어쨌거나 갈릴레오가 지동설을 주장했다가 종교재판을 받았다는 건 사실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천동설 대 지동설 논쟁을 종교와 과학의 대립으로 생각합니다.

'기독교적인 천동설' 과 ' 과학적인 지동설' 이 대립한 결과 교회의 권력이 과학을 탄압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생각은 여러 면에서 잘못되었습니다.

교회는 오랜 세월 천문학의 발전을 지원해왔습니다. 심지어 갈릴레오를 제외한 유명 천문학자들은 지동설을 지지하고도 교회의 탄압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2천 년의 세월동안 천동설을 지동설보다 더 과학적이었습니다.

'천동설 대 지동설' 은 고대 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논쟁입니다. 기원전 4세기경의 그리스 학자들은 이미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늘에 떠있는 태양과 달, 금성이나 수성 등의 행성, 그리고 별들도 모두 공처럼 둥글다고 생각했습니다. 문제는 이런 구형의 천체들이 어떻게 움직이냐는 것이었습니다. 맨눈으로 보기에 지구의 땅덩어리는 꿈쩍도 하지 않으니, 가장 자연스러운 설명은 지구가 멈춰잇고 하늘의 천체들이 움직인다는 천동설이었습니다.

 

지동설을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기는 했지만, 당시에는 근거가 없었기에 금세 잊혀졌습니다.

그리스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도 천동설을 지지했습니다. 그의 세계관에서 지구는 우주의 중심에 멈춰있고, 모든 천체는 지구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회전했습니다. 이 아이디어는 후대의 많은 천문학자들에게 영감을 주었지만, 실제 천체의 움직임을 계산하는 데에는 쓸모가 없었습니다. 특히 행성의 움직임이 문제였습니다.

 

지구에서 관찰한 행성은 때론 속도가 빨라지거나 느려지고, 심지어 가끔은 거꾸로 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단순한 원 운동으로는 행성의 복잡한 움직임을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천체의 움직임을 제대로 예측하는 '과학적 천동설' 은 2세기 그리스의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에 의해 완성되었습니다. 그도 천체가 지구 주위를 원형으로 회전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시와 달리 그의 주장은 원 안에는 더 작은 원이 돌고 있고, 천체는 원과 원이 맞물려서 만드는 복잡한 곡선을 따라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이런 복잡한 곡선은 행성의 움직임을 설명하기에 적합했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이론은 행성이 언제 역행하는지도 잘 예측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태양과 달의 움직임 역시 꽤나 정확하게 알아맞히었습니다. 이후 천 년이 넘도록 이를 뛰어넘는 이론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중세시대 초기에 수많은 그리스 고전이 사라지면서 프톨레마이오스도 유럽에서 사라진 인물이 됩니다. 다행히도 그의 책은 이슬람으로 건너가 아랍어로 번역되어 살아남았습니다.

 

9세기경 프톨레마이오스를 계승한 이슬람 천문학은 세계 천문학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이들의 천문학은 서로는 아프리카의 말리에서부터 동으로는 아시아의 인도까지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중국에서도 13세기 원나라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달력 제작 기술을 배우기 위해 이슬람 천문학자들과 교류했습니다. 그리고 14세기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 때 이슬람 역법을 중국어로 번역한 '회회력법' 으로 달력을 만들어 18세기까지 사용했습니다.

 

조선의 세종대왕 때엔 이 회회력을 사용해서 우리나라 최초의 역법인 '칠정산' 을 만들었습니다. 다시 말해 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이 우리한테까지도 온 것입니다. 한편 유럽에서도 12세기부터 그리스 고전의 아랍어 판을 라틴어로 번역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되돌아온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은 16세기까지도 흔들림 없이 사용되었습니다. 유럽천문학자들도 이 이론을 사용해서 달력을 만들려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천동설의 첫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달력 편찬은 교회의 중요한 사업이었습니다. 달력은 절기를 알려줌으로써 농업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당시에는 종교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기독교 최대의 기념일인 부활절이 춘분 이후 보름달이 뜬 뒤 맍이하는 첫 번째 일요일로 정해졌기 때문입니다. 부활절 축제를 준비하려면 춘분의 날짜가 정해져야 했습니다. 당시 유럽에서 쓰던 달력은 오래 전 로마 황제 카이사르가 제정한 율리우스력이었습니다. 이는 1년을 365일로 하되, 4년마다 윤년을 두어 366일로 하는 방식입니다.

 

율리우스력은 4년에 한 번씩 윤년이 추가되니, 평균적으로 1년을 365, 1/4일으로 세는 것입니다. 이는 춘분에서 다음 춘분까지의 시간을 잰 것입니다. 하지만 이 수치는 실제와 약 11분 정도의 작은 오차가 있었습니다. 하루로 치면 1.8초 정도의 차이입니다. 이 작은 오차는 율리우스력이 1500년간 쓰이면서 매년 누적되었고, 16세기에는 실제 춘분과 달력이 열흘이 넘게 차이 나는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간 언젠가는 12월 25일로 날짜가 정해져 있는 크리스마시와 보활절이 겹치게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 정도였습니다.

 

교회도 이를 일찌감치 알아채고 천문학자들에게 달력 개혁을 의뢰했습니다. 그런데 프톨레마이오스 이론을 사용한 시도는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같은 의뢰를 받았던 폴란드의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는 이 이론이 근본부터 잘못된 것이 아닌지 의심하게 됩니다. 원래 프톨레마이오스 신봉자였던 코페르니쿠스는 수십 년 간의 연구 끝에 자신만이 새로운 천문학 체계를 다룬 책을 발표합니다.

 

이 책에는 지구와 행성이 태양을 중심으로 회전한다고 쓰여 있었습니다. 코페르니쿠스가 새로운 이론을 만들기로 결심한 이유는 프톨레마이오스 이론이 수학적으로 너무 난해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천문 현상을 보다 간결하게 설명하고 싶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역해으 운동이었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행성의 역행을 원과 원이 맞물리는 복잡한 궤도로 설명했습니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에서 역행 운동이란 그저 눈속임에 불과했습니다.

 

예를 들어 지구와 화성은 모두 태양 주위를 회전하는데, 화성보다 빠른 지구가 가끔씩 화성을 추월해서 앞질러 가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 때 지구에서 바라본 화성은 역행하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마치 차를 타고 가다보면 창밖의 사람이나 풍경이 뒤로 가는 것처럼 보이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기서 코페르니쿠스는 한 가지 실수를 저지릅니다. 천체가 태양 주위를 원을 그리며 움직인다고 가정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올바른 궤도가 원이 아니라 타원임을 압니다.

 

하지만 천체의 움직임을 원 운동으로 설명하려는 전통은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2천년이나 이어졌고, 코페르니쿠스도 이 전통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이 실수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에 큰 흠집을 남겼습니다. 이론이 천체의 움직임과 잘 맞지 않는 것입니다. 오차를 줄이려면 더 복잡한 궤도가 필요했습니다. 코페르니쿠스는 프톨레마이오스를 답습해서, 원과 원이 맞물리는 복잡한 곡선을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수정을 거치자 코페르니쿠스의 이론도 프톨레마이오스만큼 난해해졌습니다. 게다가 이 이론은 프톨레마이오스에 비해 아주 뛰어난 예측을 해낸 것도 아니었습니다.

 

결국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천동설에 비해 더 간결하지도 않았고, 특별히 뛰어난 예측을 보이지도 못했습니다. 지구가 움직인다는 결정적인 증거도 여전히 없었습니다. 그래서 당대의 천문학자들로선 지동설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했습니다. 과학적인 근거도 없는데 2천 년간 내려온 '진리' 를 어찌 깨겠습니까? 그런데 기묘하게도 과학자들은 코페르니쿠스의 틀린 이론을 높게 평가했습니다. 이 이론이 수학적으로는 너무나 완성도가 높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가르침과 모순된다는 걱정도 커갔지만 신학자들조차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틀렸지만 수학적으로는 유용하다' 면서 학생들에게 가르쳤습니다. 그 이론으로 만들어진 천문표는 달력 개혁에 사용되어, 오늘날에도 쓰이는 그레고리력을 만드는 데 일조했습니다. 이처럼 천동설이 학계의 정설이었기 때문에, 코페르니쿠스 이론의 수학적 강점만을 살려서 천동설에 이식하려는 시도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수정된 천동설은 많은 천문학자들의 지지를 얻었습니다.

 

여전히 천동설이 지동설보다 종교가 아닌 과학적으로 우위였던 것입니다. 17세기 초 케플러와 갈릴레오가 등장하면서 지동설은 천동설을 역전하게 됩니다. 케플러는 새로운 천문 관측 자료와 수많은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지구와 행성의 궤도가 원이 아니라 타원형이라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타원 궤도로 만들어진 케플러의 지동설은 프톨레마이오스나 코페르니쿠스보다 훨씬 단순하면서도 뛰어난 예측력을 가졌습니다.

 

갈릴레오는 당대의 새로운 발명품인 망원경을 사용해서 천체를 관측했습니다. 그는 육안으로는 볼 수 없었던 수많은 관찰 기록을 남겼습니다. 이들은 하나같이 지동설에 유리한 증거였습니다. 특히나 결정적ㄷ인 것은 목성 주위로 네 개의 위성들이 회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사실은 모든 천체가 지구를 중심으로 회전한다는 천동설과 완전히 모순되었습니다 이제 지동설은 천동설보다 더 단순하면서도 정확했고, 과학적인 증거도 갖췄습니다.

 

하지만 논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카톨릭교회가 지동설을 이단으로 선고한 것입니다. 교회가 처음부터 지동설을 반대하지는 않았습니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오히려 교회에서 책으로 출판해 달라고 요청할 정도였고, 그의 책은 교황에게 헌정되었습니다. 당시에도 지동설이 성경과 모순된다는 주장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경 말씀은 항상 해석의 여지가 잇었고, 교회는 천문학자들에게 호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마르틴 루터를 비롯한 개신교도들은 처음부터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에 적대적이었습니다.

이들에게는 오직 성경만이 지식의 원천이었기 때문에, 지동설을 위해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일은 있을 수 없었습니다. 루터는 "요즘 바보들은 천문학을 뒤집으려 하지만 성경에선 분명 지구가 아닌, 늘 움직이는 태양과 달보고 멈추라고 하셨다" 며 "그건 마차나 배에 탄 사람이 땅이나 나무들이 걷고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고 지동설을 옹호하는 학자들을 비난했습니다.

 

어쨌든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이끈 종교개혁은 전 유럽을 휩쓸었고 가톨릭교회도 자정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가톨릭교회도 이제는 성경 해석에 훨씬 엄격해졌으며, 로마 종교재판소가 생겨서 이단적인 출판물을 금지했습니다. 케플러의 연구는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의 연구는 어려운 수학이라서 이해할 수 있는 사라밍 거의 없었고, 일반 대중에 미치는 영향력은 전혀 없었습니다.

 

반면 갈릴레오는 달랐습니다. 그의 책은 일반인들에게 무척 인기가 있었습니다. 그는 망원경으로 관찰한 달과 태양, 행성과 은하수의 움직임을 모두 직접 삽화로 그려 책에 넣었습니다. 복잡한 수학이 없으니 모든 사람들이 이해하기가 쉬웠고, 실제로 방원경을 사서 갈릴레오를 횽내 내는 사람들도 등장했습니다. 그간의 천문학자들과 달리 갈릴레오는 일반 대중에게까지 널리 지동설을 퍼뜨린 위험인물이 된 것입니다.

 

교회는 이단적인 이론이 대중을 물들이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결국 갈릴레오는 두 번의 종교재판을 통해 지동설을 철회하고 가택 연금이 되었습니다 .동시에 지동설은 공식적으로 금지되었으며, 코페르니쿠스와 갈리레오의 책을 포함해 지동설을 지지하는 책은 모두 금서로 지정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교회는 달력 편찬을 위해 천문학자들이 필요했습니다. 금서로 지정되었던 코페르니쿠스의 책이 달력 계산에 필요하다고 판단되자, 교회는 첵에서 지동설을 지지하는 부분만 편집해 재출간했습니다.

그래서 천문학자들은 여전히 지동설을 연구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교회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나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틀렸음을 안다. 내 연구는 단지 수학적인 가설일 뿐이다." 라는 식의 태도를 취해야 했습니다. 그러면 교회도 그들의 연구를 묵인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천문학은 계속되었습니다. 세월이 지날수록 지동설에 유리한 증거가 많이 쌓여 갔습니다.

 

17세기 말에는 뉴턴이 중력 이론을 발견했습니다. 이제 지구와 모든 행성이 움직이는 근본 우너리가 밝혀졌고, 케플러의 이론은 수학적으로 증명되었습니다. 18세기에는 모든 천문학자들이 지동설을 지지했고,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은 더 이상 대학에서도 가르치지 않게 되었습니다. 교회도 점차 지동설에 대한 금서 조치를 완화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19세기 초반에는 모든 금서가 사라졌습니다. 그렇게 천동설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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