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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은 보통 태어나서 신도의 신사를, 결혼할 때는 기독교의 교회를, 죽어서는 불교의 사찰을 찾습니다.

우리로선 이해가 쉽지 않지만 일본인들은 이처럼 다종교를 갖는 데 거부감이 없습니다. 어쨌든 일본에선 이 3종교가 가장 중요합니다.

어떤 나라든 종교는 그 나라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 키워드입니다. 종교만큼 마음 속 깊은 곳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본은 이게 간단치 않습니다. 종교의 보편성을 좀처럼 따르지 않아서입니다. 보통 각 나라의 종교는 원시토착신앙으로 시작해 결국엔 외래의 고등종교로 대체되는 수순을 밟습니다. 기독교와 이슬람, 불교를 믿는 나라들이 대개 그렇습니다. 하지만 일본만은 예외입니다.

 

일본은 지금까지도 수천 년간 내려온 민속신앙인 신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아마 세계에서 유일한 사례일 것입니다. 세계의 지배 종교들인 기독교와 불교조차 힘 한번 제대로 쓰지 못하거나 일본식으로 변형돼 간신히 숨 쉬는 정도입니다. 우선 일본의 기독교와 불교의 현황을 보면서 일본인들이 어떤 종교관을 가졌는지 그 일단을 살펴봅니다.

 

일본에 기독교는 한국보다 훨씬 이른 16세기 중반쯤 들어왔습니다. 그럼에도 지금 일본의 기독교 인구는 전체 인구의 1%도 되지 않습니다. 일부 이슬람 국가들을 제외하곤 세계에서 거의 최저치일 것입니다. 일본에 기독교가 크게 번성하지 못한 건 막부시대의 혹독한 탄압이 주된 이유입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기독교 인구가 전혀 늘지 않는 것은 또 다른 이유가 있다는 뜻입니다.

 

일본인들은 오랫동안 다신교의 세계에서 살아왔습니다. 일본의 지배 종교인 신도는 "8백만의 신" 을 모신다고 보통 얘기합니다. 아마 인도의 힌두교 다음으로 많은 게 일본의 신들일 것입니다. 그러니 기독교나 이슬람의 유일신은 일본인들에겐 매우 낯선 개념입니다.

 

반면 우리는 오랜 세월 석가모니의 불교와, 공자와 주자를 큰 스승으로 모시는 유교 속에서 살았습니다. 때문에 상대적으로 일본보단 기독교의 유일신을 받아들이기가 쉬웠을 것입니다. 일본의 신도에선 사람이 죽으면 신이 됩니다. 나도 죽으면 신이 되는데 굳이 예수가 새로울 이유가 없습니다. 단순하게 퉁 치면 동급인 것입니다. 그러니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기독교의 가르침은 일본에선 잘 통하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선과 악이라는, 뚜렷한 이분법적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천당과 지옥이라는 사후세계가 뒤를 받칩니다. 사후세계의 심판이 두렵다면 죄를 짓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일본의 신도엔 선과 악의 개념이 없습니다. 착한 사람도, 나쁜 사람도 모두 신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악력으로부터 피해를 당하지 않기 위해 악신을 더욱 정성들여 모셔왔습니다. 일본이 강제징용과 위안부에 사과를 하지 않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습니다. 악의 개념이 희박하니 미안함도 잘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일본의 종교에서 죽음이란 윤회를 위해 잠시 대기하는 장소일 뿐, 심판에 대한 두려움은 없습니다. 때문에 신도는 지극히 현세적인 기복신앙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그래서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다른 종교로 갈아타는 것이 무척 자연스럽습니다. 실제로 일본인들은 62%가 결혼은 기독교식으로 합니다. 영화와 드라마의 영향에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더구나 석가모니를 인도의 힌두교에서 자신들의 신으로 흡수하듯 예수 역시 일본의 신도에선 8백만의 신 중 하나일 뿐입니다.

이 외에도 일본에서 기독교가 뿌리내리기 어려운 이유는 많습니다. 자신들에게 패배의 굴욕을 안긴 적대국의 종교라는 점도 있고, 일본 특유의 국민성도 분명 한 몫 합니다. 일본 기독교는 선교활동을 잘 하지 않습니다. 남에게 뭔가를 권하는 것 자체가 민폐라고 생각해서입니다. 게다가 남에게 거절당하는 것을 큰 수치로 여기기 때문에 애초부터 이런 일을 만들려고 하지 않습니다.

 

남의 눈치를 크게 살피는 일본인들의 집단주의와 변화를 극도로 싫어하는 고지식함도 새로운 종교를 받아들이는 걸 어렵게 하는 요소입니다. 암튼 여러 모로 일본과 기독교는 상성이 잘 맞아 보이지 않습니다.

 

일본 불교는 사정이 훨씬 낫지만 알고 보면 기독교 못지않게 처량한 신세입니다.

현재 일본의 사찰 수는 무려 8만4천여 개나 됩니다. 일본 전역의 편의점 숫자보다도 50% 이상이 더 많습니다. 그런데 일반에게 공개되는 절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교토의 금각사나 나라의 동대사, 도쿄의 아사쿠사 등 큰 도시의 유명사찰들만이 연중 공개될 뿐, 지방의 작은 절들은 늘 굳게 문이 닫혀 있습니다. 그 지역의 묘지 운영에만 절이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일본인들은 압도적으로 많은 94%가 장례를 불교식으로 치룹니다.

 

'일본 와 문화가 만들어낸 일본의 노포들' 이란 영상에서 말씀 드렸듯, 일본의 근간을 지배하는 와 문화는 불교 승려들도 세습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에서 승려는 "부모에게 물려받은 절에서 장례식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 이란 이미지가 강합니다. 종파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일본의 승려들은 결혼도 하고, 머리도 기르고, 고기도 먹고, 술도 마시고, 담배도 핍니다. 그래서 일본의 사찰에선 우리처럼 법회를 갖거나, 참선을 하거나, 불자들 사이의 공부 모임 같은 모습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심지어 일본의 사찰에선 불상을 찾기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한국 불교는 가장 중요한 건물인 대웅전에 불상을 모시지만, 일본에선 그 절이나 종파를 세운 승려를 모신 전각이 훨씬 더 큰 경우도 있습니다. 일본 불교 내에서도 "장레의식만 있을 뿐 신앙은 없다." 고 개탄합니다. 불교에 대한 혐오가 커지면서 장례사업도 이전만 못합니다. 오늘날 일본 불교는 사찰 유지를 위해 부적판매와, 개와 고양이 같은 애완동물의 장례식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일본에서 가장 중요한 종교는 신도입니다. 일본 특유의 다중신앙을 감안할 때 일본 국민의 90%이상이 사실 신도를 믿는다고 봐야 합니다. 신도의 바탕은 아주 오래 전의 애니미즘과 샤머니즘입니다. 처음엔 주로 자연과 자연현상을 신으로 모시다가 첨차 조상신이 추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신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된 것입니다.

 

이 신들의 모습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에 나오는 유바바나 가오나시를 떠올리면 될 것 같습니다. 이처럼 일본에 신이 많은 것은 지진, 화산폭발, 태풍 같은 자연재해가 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혹독한 무신 정권과 잦은 내전으로 일본인들의 삶은 늘 불안했습니다. 그러니 신에 대한 의존도가 클 수밖에 없었고, 신은 많으면 많을수록 안심이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다져진 종교이다 보니 현실을 넘어서는 종교의 보편성이나 내세관이 발달할 수 없었습니다. 당장 당장의 위험을 모면할 수 있는 신의 가호가 늘 다급했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신도가 특정한 교조도, 압도적인 신도, 성경이나 코란 같은 경전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 같은 맥락에서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생각해봐야할 게 일본의 신도는 개인을 위한 종교가 아니란 것입니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자연재해도, 빈번한 전쟁도, 혹독한 무신들의 철권통치도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늘 부족과 마을 단위로 단단히 뭉쳐 어려운 일을 극복해 나가야 했습니다. 일본 특유의 집단주의가 바로 여기서 나온 것입니다. 암튼 그래서 공동체의 이익과 안녕을 위해 '우지가미' 라는 부족 수호신에게 빌어야 했고, 이게 발전돼 신도가 된 것입니다.

 

일본은 종교에서도 자신의 영역을 지켜야 하는 와 사상이 드러납니다. 신도에선 사람과 신이 공존하되 서로의 영역이 존재합니다. 어느 쪽이든 이 경계를 넘어서면 불행이 시작됩니다.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에서도 치히로 가족이 인간의 영역을 벗어나 신의 영역으로 들어섰기 때문에 온갖 사단이 벌어졌습니다. 그래서 억울하게 죽은 원혼일수록 인간의 영역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하도록 극진히 달래야 했습니다.

 

한 조사에 의하면 절대 다수가 신사를 찾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인 중 70%가 자신은 종교가 없다고 답했습니다. 워낙 오래전부터, 워낙 오래된 신을 모셔왔기 때문에 신도는 습관이나 문화일 뿐 종교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일본의 신사에 가면 꽤 평화로워 보입니다. 즐겁게 자신의 소원을 빌거나 점괘를 받아 보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이럴 때 보면 일본의 신도는 인도의 힌두교와 닮은 점도 여럿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시대가 바뀌면서 한 때 일본의 집단주의를 이끌었던 일본의 종교에도 점차 변화가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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