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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인은 낭만적이고, 독일인은 엄격하며, 이탈리아인은 열정적이다." 각 나라마다 이런 고정관념 같은 이미지가 있습니다.

영국은 어떨까요?

특히 우리나라와 일본에선 '영국=신사의 나라' 라는 등식이 있습니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꽤 오래전부터 사용해 왓꼬,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면, 영국에 대한 상반된 반응도 꽤 있습니다. 특히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저지른 각종 만행을 두고 '영국은 만악의 근원' 이라는 비난도 쏟아집니다.

 

영국을 다룬 유튜브 채널의 영상에 달린 댓글만 봐도 그렇습니다. 건듯하면 축구장에서 난동을 부리는 홀리건(hooligan)도 "영국 남자들이 정말 신사일까?" 라고 갸우뚱거리게 만듭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 영국은 신사의 나라라는 이미지가 굳건합니다.

왜 이렇게 고착화된 것일까요?

사실 이건 일본의 영향이 절대적으로 큽니다.

우선 영어 gentleman을 신사(紳士) 라고 맨 처음 번역한 게 일본입니다.

일본의 근대화를 이끌었다는 메이지 유신이 한창 진행되던 19세기 중후반에 일본은 지배 계층을 뜻하는 gentleman을 어떻게 번역할까 고민하다가 신사라고 했습니다. 紳士에서 紳은 허리띠를 뜻하는데, 신사는 허리띠를 한 중국의 명청 시대 관료였습니다. 이들은 교육을 잘 받은 지식인들로 조선의 사대부를 연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젠틀맨(신사)란 단어는 영국의 젠트리(gentry)라는 계급에서 나왔습니다.

이들은 공작, 후작, 백작, 남작, 자작 같은 작위를 가진 귀족은 아닙니다. 하지만 부유한 자작농을 뜻하는 요먼(Yeoman)보단 높은, 상당한 상유층들이었습니다. 즉, 영국에서 젠틀맨은 단순히 계급 명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일본에서도 중국의 관료 계급을 그대로 가져와 번역한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후부터 일본에선 신사를 다른 의미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특정 신분 계층을 가리키는 개념에서 "교양 있고, 예의 바른 남성" 을 뜻하는 용어로 쓰게 된 것이지요. 요즘처럼 말입니다.

메이지 유신 시대에 일본은 영국을 가장 이상적인 국가로 삼았습니다. 같은 섬나라로 세계 최강국에 올랐다는 점에 매료된 것입니다. 이 시기에 후쿠자와 유키치 라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막부 철폐와 부국강병을 내세우며 메이지 유신을 여는데 큰 공헌을 한 인물로 1만 엔 권의 초상화에 올랐던 사람입니다.

독학으로 영어를 배운 그는 31살 때인 1862년 시찰단의 일원으로 거의 40일간 영국을 방문한 바 있습니다. 이 여행에서 큰 감명을 받은 그는 돌아오자마자 "일본은 동양의 영국이 되어야 한다." 는 운동을 펼쳐 일본에 영국 열풍을 불게 했습니다.

 

일본은 1871년에도 대규모 사절단을 파견해 미국과 유럽 등 12개국을 둘러보게 했는데, 영국에서만 4개월을 머물며 영국의 사회 문화 군사 제도를 연구했습니다. 귀국 후 이들은 5권의 보고서를 남겼는데 그 중 한 권을 온전히 할애할 정도로 영국 비중이 무척 높았습니다. 이런 영향으로 메이지 시대 이후 영국 신사는 일본인들이 추구해야 할 이상적인 인간 유형으로 급부상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시대 일본에선 영국 신사들의 에티켓 관련 책들의 출판 붐이 일었고, 여러 문학작품에서도 연국 신사를 연상시키는 남자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일본에서도 젠틀맨(신사)는 처음엔 '점잖은 상류층 사람들' 정도의 의미로 쓰였습니다. 그러다가 메이지 유신 이후 서양 문화를 동경하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영국 신사는 서구화와 근대화를 상징하는 표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의미가 과장돼 '영국 신사=교양 있고, 예의 바르고, 세련된 매너를 가진 남성' 을 뜻하게 되었고, 이게 '영국 = 신사의 나라' 로 고착화된 것입니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한테까지도 전해지게 된 것이죠. 

 

다시 풀이하면 '영국은 신사의 나라' 라는 말은 계급이나 신분의 측면에선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매너 좋고 품위 있는 남자들이 많은 나라라는 의미에서 '영국은 신사의 나라' 라고 한다면 그건 당치도 않은 얘기입니다. 작위를 가진 옛 영국 귀족들은 보통 1천 2백만 평의 땅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보다 낮은 젠트리, 즉 신사 계급으로 대접받으려면 적어도 4백만 평 정도는 가져야 합니다.

이 정도면 대략 한강 둔치 공원을 합친 여의도 면적의 3배나 됩니다. 이런 대지주들이 극소수인 것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실제로 영국에서 젠트리 계급은 적을 땐 전체 인구의 0.5%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산업혁명 후 신흥자본가들의 편입으로 신사 계급이 가장 많았던 19세기에도 전체 인구의 2~3%를 결코 넘지 않았습니다. '매너 좋고 품위 있는 신사 계급이 다수인 나라' 가 있을 리 없다는 얘기입니다.

 

그렇다면 같은 유럽에서도 '영국은 신사의 나라' 라는 말이 있을까요? 먼 과거엔 있었습니다.

19세기와 20세기 초의 일입니다. 하지만 그 의미가 다릅니다. 영국에 젠트리 계급이 등장한 것은 15~6세기이지만 그 기원은 11세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정복왕이라 불리는 윌리엄 1세가 프랑스의 노르망디 공국에서 건너와 영국의 왕위에 오르죠.

이 때, 윌리엄을 도운 노르망디 출신 기사들이 논공행상 끝에 영국 최초의 귀족이 됩니다. 그런데 이들은 바이킹의 후예들로 정말 거칠고 호전적인 사내들이었습니다. 국정을 논하다가도 뜻이 맞지 않으면 칼싸움을 벌여 서로 죽이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이 야만적인 천성을 다스리기 위해 예절을 강조하면서 만들어진 게 기사도입니다. 기사도는 성모 마리아를 중시하는 중세의 신앙에서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젠트리 계급이 형성되면서 기사도가 계속 이어져 신사도가 되었습니다. 이 둘은 여성들에게 매너가 좋아야 한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젠트리들은 일반인들은 물론 구 귀족들과 차별화하기 위해 재산은 물론 일정 수준 이상의 지식과 품위를 갖추도록 서로에게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이 신사계급 중에선 허영심이 가득한 자들도 있었고, 구 귀족과 다를 바 없는 낡은 사고방식을 가진 자들도 많았습니다. 이들은 귀족과 마찬가지로 아무리 넓은 땅을 갖고 있어도 절대로 농사를 짖는 법이 없었고,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한다는 것 자체를 경멸했습니다.

 

그래서 부유한 일반인이 신사로 인정받으려면 산업 혁명 초반만 해도 도시의 자본가들조차 시골로 내려가 넓은 땅을 산 다음, 원래 하던 일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산업혁명 후 자본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농업은 급격하게 쇠퇴해갔습니다. 땅이 많은 신사 계급들도 경제난에 빠지면서 몰락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런던 시내엔 젠트리 계급을 상징하는 잘 빠진 슈트와 모자, 지팡이를 든 사람들로 넘쳐났습니다. 이런 신사 복장이 중산층 사이에서도 대유행이 된 것입니다. 이 모습을 보고 유럽의 다른 국가들에서도 '영국은 신사의 나라' 라고 불렀습니다. 다만, '매너 좋은 남자들이 많은 나라' 라는 뜻이 아니라 '주제 모르고 잘난 척하는 사람들이 많다' 는 경멸과 냉소적인 의미로 쓰였습니다.

어쨌든 영국은 스스로 '신사의 나라' 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신사도 아닌 것들이..." 라고 욕하면 역국인들은 좀 억울할 수도 있습니다. 그나마 영국인들은 유럽인들 중에선 신사가 되려고 애쓴 측면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역사적으로 저지른 죄악이 씻어지지는 않겠지만 말입니다.

 

약간 사족이지만 신사 이야기를 하는 김에, 이와 관련된 두 가지 용어를 소개하면서 이 영상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라는 용어를 많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낙후된 구도심이 번성하면서 임대료가 올라 원래 살던 사람들이 내쫓기는 현상을 말합니다. 우리나라의 홍대나 서촌, 경리단길 등에서 겪은 현상이지요. 눈치 채셨겠지만 이 단어도 신사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1964년 영국의 한 사회학자가 처음 쓴 이 용어는 신사를 뜻하는 gentri와 어떤 경향을 뜻하는 -fication의 합성어입니다. 굳이 우리말로 직역하자면 신사계급화 즉, 상류사회화, 이 정도 되겠네요. 평소 사냥하고, 교양 쌓으면서 고급 백수의 삶을 살던 신사들이 무척 중시하던 활동이 사교입니다.

 

시골의 대저택에서 살던 신사들은 런던에서의 사교를 위해 임시 거처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18~9세기에 다닥다닥 붙은 연립 주택을 런던 시내에 대량 건설했습니다. 이게 타운하우스입니다. 우리나라에선 고급 주택의 이미지가 있는 타운하우스는 원래 신사들을 위한 소박한 원룸 같은 개념의 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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