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대영제국이 왜 만들어졌는지 혹시 아시나요?

그건 영국보다 맛있는 음식과 식재료를 찾다가 만들어진 결과입니다. 물론 농담입니다. 바로 미국의 작가 마거릿 홀시가 남긴 유머입니다.

외지인만 이런 얘기를 한 게 아닙니다.

윈스턴 처치른 "영국은 전 세계에 여러 가지 먹을 거리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조리하지 않고 말이죠." 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영국 저명인사들의 자국 요리에 대한 자학적인 유머는 넘칠 정도로 많습니다.

심지어 "영국인이 만들면 맥도널드 햄버거도 맛없다." 라고 흔히 말합니다.

조리법이 똑같은 패스트푸드조차 이럴 정도로 영국 음식에 대한 악평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혹 영국 출신의 고든 램지나 제이미 올리버 같은 세계적인 유명 세프의 이름을 들며 "그럴 리가 있나" 라고 하실지 모릅니다. 하지만 고든 램지는 프랑스 요리를 제이미 올리버는 이탈리아 요리 전문가이지 영국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대체로 국가가 강대해지면 요리도 따라 발전하기 마련입니다.

먹고 사는 게 풍족해지면 그 다음 단계는 맛있는 걸 찾는 게 일반적이지요. 이탈리아가 그렇고, 프랑스가 그렇고, 중국이 그렇습니다. 물론 여기엔 터키도 있지요.

 

하지만 영국만큼은 이와는 전혀 무관한 길을 걸었으니 어떤 특별한 사정이 있었던 걸까요?

사실 음식 문화가 발전하려면 다양한 식재료가 필수입니다.

그런데 영국은 연중 비가 내려 일조량이 적은데다 기온도 낮아 농작물 재배가 쉽지 않은 환경을 가진 나라죠. 채소도 기껏해야 10가지 이내이고, 밀의 품종도 좋지 않아 빵도 맛이 없습니다. 여기에 같은 섬나라인 일본과 달리 생선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고등어, 청어, 연어, 도미, 가자미 정도가 먹는 생선의 전부죠. 그 비싼 랍스터 조차 한 땐 죄수들의 식량으로나 썼을 뿐 바다에서 나는 건 대부분 찬밥 신세였습니다.

북해가 워낙 거칠어 옛날 선박 건조기술로는 어업이 쉽지 않은 것도 분명 영향을 끼쳤을 것입니다.

다만 기후 상 목초지가 풍성하고, 평지가 많아 목축은 일찌감치 발전했습니다. 영국에선 이점이 음식의 다양성을 해쳤다고 보고 있습니다. 음식이 발전하려면 프랑스처럼 왕가나 귀족들이 먼저 미식을 즐겨야 하는데, 영국 귀족들은 풍성한 소고기를 먹는 데 만족하고 말았다는 거죠.

 

고기가 흔하다보니 몸통 부위만 먹을 뿐, 내장이나 고기뼈 등을 이용한 음식도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바로 옆에 넘쳐나는 해산물을 놔두고 오직 고기만 구워 먹는다고 하여 영국인들은 오래전부터 경멸조인 'Beefeater' 라고 불려왔습니다. 영국 음식을 조롱한 사람 중엔 바람둥이의 대명사인 카사노바도 있는데, "어떻게 이런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건지 영국 사람들, 참 대단하다" 는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19세기의 빅토리아 시대 때까지만 해도 영국에서 아이들에게 먹이는 음식은 거의 아동학대 수준이었습니다.

당시 자녀교육의 교과서나 다름없었던 <어머니들이 읽어야 할 자녀양육 지침서> 를 보면 아이들에겐 말라비틀어진 빵과 감자를 주는 걸로 충분하다고 했습니다.

 

감리교를 창시한 존 웨슬리는 "아이들은 악한 존재라 그 본성을 죽이기 위해 좋은 음식을 주면 안 된다" 고 가르쳤습니다.

이렇듯 어렸을 적에 좋은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으니 어른이 되어서도 맛에 무감각한 것은 당연한다 할 것입니다. 이런 환경적 조건과 사회적 풍조를 배경으로 영국 음식이 맛없게 된 결정적 두 가지 원인은 청교도 혁명과 산업혁명입니다.

17세기 중후반 영국에선 올리버 크롬웰이 부패한 가톨릭을 몰아내고 청교도 혁명을 일으킨 후 정권을 잡았죠.

청교도 정신은 한마디로 금욕주의였습니다. 극장도, 술집도, 서커스도, 정신을 좀 먹는 향락이라고 하여 모두 폐쇄했습니다. 여기엔 음식도 포함되었습니다. 맛을 탐한다는 것은 곧 죄악이었습니다. 요리사는 범죄자 취급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이슬람 원리주의를 연상시키는 이 기독교 근본주의로 영국에서 음식 문화는 그야말로 암흑기를 맞았습니다.

영국뿐 아니라 음식이 맛없기로 손꼽히는 나라들인 독일, 네덜란드, 핀란드 등은 모두 종교 혁명 후 개신교 국가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이어 18세기의 산업혁명이 영국의 요리에 결정타를 날렸습니다.

 

영국에선 17세기 마지막 흑사병이 돌면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농사를 지을 인력이 태부족이 되면서 농부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뛰었죠. 엄청난 토지를 갖고 있던 전통 귀족들은 당연히 큰 경제적인 타격을 받았고요. 이에 대토지 소유주들은 농사를 포기하고 대신 양을 키우게 되었습니다. 마침 직조기계가 발명돼 양모 산업이 급성장하던 시기였습니다.

양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넓은 토지 곳곳에 담을 둘렀다하여 인클로저 운동(enclosure movement) 이라고 불렀죠.

 

어쨌든 졸지에 농사지을 땅을 잃은 농부들은 대거 도시로 몰려들었습니다.

이들이 저임금근로자가 되면서 산업혁명의 성공에 한몫을 하게 되죠. 하지만 이들의 생활은 비참했습니다. 하루 14~15시간의 노동은 보통이었습니다. 집에서 요리를 해먹을 시간이 없었죠. 비좁은 공동주택에서 바글바글 모여 살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집엔 아예 부엌조차 없었습니다.

설혹 있더라도 노동자 임금으로는 땔감을 살 엄두도 낼 수 없었습니다.

이 당시 법도 가혹해서 거리나 공원에서 나무를 베면 교수형이었습니다. 이 바람에 그나마 얼마 남지 않았던 영국 전통요리나 가정식이 자취를 감추게 되고 쉽고 빠르게 먹을 수 있는 음식만 남게 된 것입니다.

부유한 상유층들마저 맛없는 자국 요리 대신 프랑스와 이탈리아 요리를 주로 먹으면서, 영국 전역에 영국 요리가 설 곳이 없게 된 것이죠.

 

그럼 산업혁명가의 도시 노동자들은 무얼 먹고 살아남았을까요?

그건 바로 영국을 대표하는 음식인 '피시 앤드 칩스' 입니다. 두툼한 밀가루 반죽을 입힌 생선튀김과 감자튀김으로 이루어진 이 간단한 요리는 거리에서 아주 쉽게 살 수 있었고, 서서 먹을 수도 있어서 노동자들의 시간을 아껴 주었습니다. 게다가 칼로리까지 높아 오랫동안 배를 든든하게 해주었으니 노동자들의 음식으론 이만한 게 없었습니다.

 

세계 각국의 요리가 어떻게 발명되었는지를 재미있게 풀어 쓴 앨버트 잭의 저서 '미식가의 어원 사전(월북 출판사)에 의하면 생선튀김은 유대인 이주민에 의해 런던에 맨 처음 소개되었고, 감자튀김은 직물공업도시가 많았던 영국 북서부의 랭커셔 주에서 먹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19세기 중반 남에서 올라가던 생선 튀김과 북에서 내려오던 감자튀김이 만나 '피시 앤드 칩스' 가 탄생하게 된 것이죠.

 

감자튀김이 어떤 경로로 영국에 들어왔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이 프렌치프라이를 칩스라고 부른 건 영국 작가 찰스 디킨스의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 입니다.

 

19세기 후반에 저인망 어선이 발명되면서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생선을 잡을 수 있게 되었고, 철도의 발달로 도시로의 공급이 원활해지면서 '피시 앤드 칩스' 는 누구나 싸게 즐길 수 있는 국민음식이 되었죠.

'미식가의 어원 사전' 에 의하면 '피시 앤드 칩스' 가 영국에 더욱 빨리 퍼지게 된 것은 종교도 한 몫 했습니다.

 

영국에선 16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금요일에 고기를 먹으면 사형을 당할 수도 있었습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날이 금요일 이라는 믿음이 있어서 이날은 고기를 삼가며 속죄하는 날이었죠. 그래서 금요일은 고기 대신 생선을 먹는 풍습이 꽤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그런데 '피시 앤드 칩스' 가 생긴 후 금요일마다 이를 사기 위해 줄을 서게 되면서 전국적으로 유명해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쨌든 지금도 이 풍습이 남아, 영국에선 금요일에 판매되는 모든 포장 음식의 20퍼센트가 '피시 앤드 칩스' 입니다.

 

'동물농장' 과 '1984년' 으로 유명한 영국의 작가 조지 오웰은 '피시 앤드 칩스가 영국에서의 혁명을 막았다' 고 말했습니다.

종교적인 억압에서도, 산업혁명기의 혹독한 삶에서도, 1, 2차 세계대전의 참화 속에서도 영국인을 견디게 해준 게 바로 '피시 앤드 칩스' 가 준 포만감 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피시 앤드 칩스' 는 영국인들이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늘 곁에 있어준 고마운 음식이었죠.

박지성과 함께 뛰었던 영국의 축구 스타 웨인 루니와 영화 타이타닉의 여주인공인 케이트 윈슬렛의 결혼식 피로연에 '피시 앤드 칩스' 가 등장해 화제를 모은 적이 있습니다. 이 엄청나게 돈 많은 스타들의 피로연에 싸구려 음식인 '피시 앤드 칩스' 가 차려졌다는 건 그만큼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국민음식으로의 지위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럼 영국에 가면 '피시 앤드 칩스' 같은 단순한 음식만 있는 거 아냐" 라고 하실지 모르겠지만 당연히 그렇지 않습니다.

영국 음식은 맛없지만 영국의 맛집은 무지하게 많습니다. 영국은 해가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하면서, 세계 각국의 맛있는 요리를 마치 자국의 음식에 보복이라도 하듯 다양하게 들여왔습니다. 그래서 영국엔 영국 전통음식점은 찾기 힘들어도 태국, 인도, 중국, 베트남, 프랑스, 이탈리아의 유명 음식점들은 지천에 널려 있습니다.

 

이러다보니 영국 요리는 거의 도태되고 말았습니다.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온 맛있고, 저렴한 외국 요리가 외식산업을 점령하면서 영국 요리를 하는 전문 요리사들도 거의 대부분 설자리를 잃었습니다. 이게 영국 음식이 맛없게 된 마지막 이유입니다.

반응형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5/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