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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의 일입니다. 한 경제 사절단이 이란을 방문했습니다.

환대에 기분이 좋아진 한 기업가가 환영 리셉션에서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이번에 아랍을 처음 방문했는데 인상이 아주 좋았습니다." 화기애애하던 분위기가 일순간 싸해졌습니다. 그 비즈니스가 그 후 어찌되었는지는 모릅니다만 분명 애 깨나 먹었을 것입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란은 아랍이 아닙니다.

이란은 이란이고 아랍은 아랍이죠. 이란 사람들이 가장 기분 나빠하는 게 자신들을 아랍인 취급하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나라에 와서 "중국을 처음 방문했는데 인상이 아주 좋았습니다." 라고 말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란을 아랍으로 착각하는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는 합니다. 이란은 아랍과 같은 중동에 속해 있죠. 게다가 우리가 보기엔 소위 지렁이체라고 하는 꼬부랑 글자도 똑같아 보입니다. 무엇보다 이슬람이라는 같은 종교를 믿기 때문에 우리는 이란과 아랍을 잘 구분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란과 아랍은 정말 여러 가지 면에서 많이 다릅니다.

우선 민족 자체가 다릅니다. 이란은 아리안 족입니다. 생김새나 골격이 유럽인과 가깝죠. 이란이라는 국명 자체가 '아리안족의 나라' 라는 뜻입니다.

반면 아랍은 옛날에 사막에서 주로 유목생활을 하던 서남아시아의 셈(Sam)족과 북아프리카 계열의 햄(Ham)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란인들은 오래전부터 농경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유목민들과는 사고방식이나 생활문화가 완전히 다릅니다.

 

이와 비슷한 국가가 터키입니다.

중동에 속해 있고, 이슬람을 믿는 다른 이유로 터키 역시 간혹 아랍으로 오해받지만 이들은 족보가 완전히 다른 투르크족입니다. 우리와 역사적으로 가까웠던 돌궐이 그들의 선조죠.

 

이란과 아랍은 언어도 다릅니다.

아랍은 아랍어를 사용하고, 이란은 파르시(Farsi)라는 고유 언어를 사용합니다. 고대 페르시아 제국 때부터 사용했으니 25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언어입니다. 두 언어의 글자 모양은 얼핏 보면 비슷합니다. 이란이 오랜 세월 아랍의 지배를 받으며 그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똑같진 않습니다. 알파벳 개수도 이란이 4개 더 많아 32개입니다.

 

무엇보다 두 언어는 문법 구조가 완전히 달라 서로 의사소통이 불가능합니다.

이란어는 어순이 '주어+술어+목적어' 라 오히려 영어와 가깝습니다.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와 같은 인도유럽어에 속하죠. 발음도 달라서 아랍어가 조금 딱딱하게 들린다면 이란어는 마치 불어처럼 부드럽게 통통 튑니다. 현재 이란어는 이란 외에도 아프가니스탄과 타지키스탄에서 국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라크, 바레인, 우즈베키스탄,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체첸공화국, 인도, 파키스탄의 일부에서도 사용될 정도로 꽤 영향력이 있는 큰 언어입니다.

 

심지어 이란과 아랍은 종교도 다릅니다.

같은 이슬람이지만 철천지원수처럼 지내는 시아파와 수니파로 나눠져 있습니다. 아랍세계는 대부분의 이슬람 국가처럼 수니파들이고, 이란은 이슬람의 15% 정도를 차지하는 시아파의 종주국입니다. 수니파와 시아파는 이슬람의 창시자인 무함마드의 후계자를 누구로 할 것이냐를 두고 갈려졌습니다. 누구든지 후계자가 될 수 있다는 입장이 수니파이고, 무함마드 혈통만 그 자릴 이을 수 있다는 게 시아파입니다.

 

이란은 늘 강경 이슬람 국가로 뉴스에 부각됩니다.

핵 문제를 두고 미국과 오랫동안 충돌하고 있고, 우린 대개 미국의 시각이 반영된 뉴스에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란의 이슬람은 다른 아랍 국가들에 비해 무척 자유로운 편입니다.

1979년 호메이니에 의해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여성들이 미니스커트를 입고 다니던 나라가 이란입니다. 히잡도 이란 여성들은 최대한 대충 씁니다. 색깔도 화려하고 살짝 머리카락만 가려 사실상 스카프 역할으 하는 정도입니다.

아랍과 달리 이란의 여성들은 자동차는 물론이고 비행기도 몰 수 있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이란과 아랍은 사이가 아주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란을 아랍 취급하면 이란 사람들은 더 억울해 하는 것입니다. 마치 누군가 우릴 일본인이라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수준입니다.

 

이란과 아랍이 사이가 좋지 않는 건 표면적으론 시아판와 수니파로 대표되는 종교적 이유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들 사이의 충돌은 아주 오래된 역사적인 문제입니다.

이란은 찬란한 역사를 가진 나라입니다. 2~7세기의 사산조 페르시아까지만 해도 이란은 유럽을 위협하던 동방의 대표국가였습니다. 영토만 해도 이란을 중심으로, 서쪽의 터키부터 동쪽의 인도 북부까지 아랍의 중심부를 장악했던 거대 제국이었습니다. 그 시절 아랍인들은 황무지에서 양이나 치던 보잘 것 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던 아랍인들이 종교로 뭉쳐 이슬람 제국을 세우면서 전세가 역전되고 말았습니다.

이후 이란과 아랍은 단 한 번도 사이가 좋아본 적이 없습니다. 이란은 늘 페르시아 제국의 부활을 꿈꿉니다. 옛 선조들의 영광과 너무나 다른, 지금의 어려운 현실은 이란인들에겐 무척 자존심 상하는 일입니다.

이는 아랍도 마찬가지 입니다.

아랍은 유목시절만 해도 여러 부족 단위로 생할하고 있었습니다. 근데에 들어 영국과 프랑스가 이 지역을 갈기갈기 찢어 분할 통치했습니다. 그리고 그 상태로 독립을 해 지금과 같이 많은 국가로 나누어지게 된 것입니다. 아랍국가는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이라크, 요르단, 모로코, 리비아 등 22개국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서로 형제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자신들을 우리처럼 분단국가로 여기고 언젠가는 모두 통일해 이슬람 제국의 영광을 재현하려 합니다.

 

페르시아 제국의 부활과 이슬람 제국의 부활, 이 동상이몽이 이란과 아랍이 오랜 세월 동안 충돌하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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