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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초기 문명은 대부분 강을 끼고 발전했습니다.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이집트, 황하 문명 등이 모두 그랬습니다. 이는 강이 범람을 통해 비옥한 토지를 만들어내고, 강이 도로가 없던 시절, 사람과 물자의 왕래를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교통수단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이 강들이 신성시되진 않았습니다. 신성을 넘어 그 자체를 아예 신으로 모시는 유일한 강은 따로 있습니다. 10억 명이 넘는 힌두인들이 숭배해 마지않는 인도의 갠지스 강입니다.
갠지스에 어떤 특별함이 있는 걸까요?
이 대목에서 먼저 생각해봐야할게 왜 인더스 강이 아니라 갠지스 강이냐는 것입니다. 인더스 강은 모헨조다로와 하라파로 대표되는 세계 4대 문명이자, 인도 최초의 문명을 만들어낸 곳입니다. 한 때 나일강이나 유프라테스 티그리스 강, 황하처럼 풍부한 수량으로 비옥한 농지와 운송에 편리한 뱃길을 보장해 주던 곳이었죠.
하지만 지구의 환경 변화가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처음엔 인더스 강의 물줄기가 바뀌더니 점차 물까지 말라버린 것입니다. 이에 기원전 15세기 이 지역을 차지했던 아리아인들은 인더스 강을 버리고 갠지스 강이 있는 동쪽으로 이동했습니다. 인도와 인더스 강의 인연이 사실상 여기서 끝난 것입니다.
아리아인의 이동은 결과적으로 아주 현명한 선택이었습니다.
갠지스는 인도북부에선 매우 드물게도 1년 내내 물이 거의 일정하게 흘렀습니다. 건기와 우기에 따라 수량이 현격하게 달라지는 다른 강과는 차원이 달랐죠. 갠지스는 인도 최북단의 히말라야 4천 m 고지대인 강고르트리(Gangotri)의 빙하가 녹으면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약 2,500km를 굽이쳐 흐르다가 방글라데시를 거쳐 벵골만으로 빠져나가죠.
그런데 강고트리에서 벵골만, 이 사이가 어마어마하게 드넓은 힌두스탄 대평원입니다.
갠지스 강이 만들어준 수백 m 두께의 충적토 덕에 따로 비료를 줄 필요도 없는, 정말 비옥한 토지이죠. 게다가 개간하는데 노동력을 낭비할 필요가 없는 평지라 힌두스탄 대평원의 70%가 농사가 가능하고, 2모작도 할 수 있습니다.
이 인도 북부 최대의 곡창지대를 가진 덕에 아리아인들은 기원전 7~8세기에 갠지스 문명을 만들어내고, 인도 전역을 차지하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갠지스 강은 태곳적부터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고마운 존재였습니다. 지금도 갠지스 강은 인도의 총 수자원 중 25%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물 생산량만 따진다면 세계 3번째로 큰 강입니다. 이 유역에 인도 인구의 30%에 해당하는 4억 명 이상이 살고 있죠.
카나우지, 칸푸르, 알라하바드, 바라나시, 파트나 등 인도의 중요한 대도시들도 연중 수량이 풍부한 갠지스 강가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강이 신의 위치에 까지 오르려면 물질적 풍요만으로는 부족하죠. 여기엔 반드시 종교가 결부되어야 하고, 그 전에 신화라는 밑 작업이 있어야 합니다.
당시 인도의 아리아인들은 힌두교의 원조라 할 수 있는 부라만교를 믿고 있었습니다. 그냥 단순하게 말하면 자연숭배죠. 이건 농경사회라고 크게 다르진 않지만 특히 아리아인들을 포함한 유목민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특성입니다. 자신들의 삼을 절대적으로 지배하는 게 자연환경이기 때문이죠. 어쨌든 갠지스 강은 자신들을 풍족하게 먹여 살린다하여 점차 '어머니의 강' 으로 숭배받게 되었습니다.
갠지스가 어머니의 젖줄인 것이죠.
지금도 인도에서 갠지스는 '어머니 강가(gang-ga)라고 부릅니다. 강가는 '강의 여신' 이름이고요. 갠지스는 인도를 지배한 영국이 강가를 영어식으로 발음한 이름입니다. 갠지스가 숭배 대상이 되면서 점차 강에 대한 신화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힌두교엔 가장 중요한 3신이 있습니다.
창조의 신인 브라만, 유지의 신인 비슈누, 파괴의 신인 시바입니다. 이중 브라만은 가장 높은 신이지만 어떤 계층에도 인기가 별로 없죠. 이미 창조가 끝난 마당이니 나한테 미치는 이익도 불이익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 비슈누 신은 주로 누가 모실까요? 바로 지배계층입니다. 지배의 세계가 앞으로도 쭉 계속되길 바라는 거죠.
그럼 시바신은 누가 주로 모실까요? 당연히 일반 서민이지요. 삶의 질곡을 파괴해주길 바래서죠.
갠지스 강은 어머니가 되었고, 이어 강가라는 여신이 되었다가 곧 인도인들의 절대 다수가 모시는 시바신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 신화는 힌두교답게 버전이 너무나 많으니 그냥 내용을 단순화시키면 다음과 같습니다.
갠지스는 원래 하늘나라에서 흐르던 은하수였습니다. 한 브라만이 히말라야의 힌두신들에게 너무 가물어 살 수 없게 된 땅에 강을 내려달라고 정성스럽게 빌게 되죠. 이에 감읍한 신들이 강가에게 땅으로 내려가 강이 되라고 명령합니다. 하지만 이에 불만을 품은 강가가 심술을 부려 엄청난 대홍수가 납니다. 이를 보다 못한 시바신이 하늘의 물을 자신의 긴 머리카락으 통해 부드럽게 흘러내리게 합니다.
이게 갠지스 강이죠.
북에서 남동쪽으로 흐르던 갠지스 강은 바라나시에서 급격히 방향을 틀어 한참동안 다시 북쪽으로 향합니다.
이렇게 북으로 흐르는 강은 갠지스 뿐입니다. 시바신이 살고 있는 수미산도 마침 북쪽이죠. 그래서 힌두교도들은 시바신의 머리에 있는 반달이 이 신기한 지형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더 나아가 세상의 모든 강들이 중에서 오직 갠지스만이 시바신이 사는 천국으로 흘러간다고 굳게 믿게 되었죠.
갠지스 강가에서 수많은 화장이 이루어지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곳에서 화장을 한 다음 남은 재를 갠지스에 뿌리면 강물이 죽은 이의 영혼을 신들이 사는 천상계로 데려다 주죠. 그렇게 되면 고뇌의 원천인 윤회를 완전히 끊게 되거나 적어도 다음 생엔 더 좋은 신분으로 환생할 수 있게 되죠.
그러니 신계의 관문 역할을 하는 바라나시는 인도에서 가장 성스러운 도시이고, 천국으로 인도하는 갠지스는 말할 것도 없이 가장 신성하고 거룩한 강이 된 것입니다.
이 때문에 힌두교를 믿는 대다수 인도인들은 어디에서 태어나든 바라나시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어 합니다. 최소한 화장 후 재만이라도 이곳에 뿌리고 싶어 하죠.
마하트마 간디 역시 갠지스 강가에 뿌려졌습니다. 바라나시에서 연간 회장하는 시신이 몇 구가 되는지 따위의 통계는 인도에 없습니다. 다만 갠지스 전체를 통틀어 매년 수십 만구에 이를 것이란 건 분명합니다. 매일 1만구가 던져지거나 재로 뿌려진다는 추정도 있습니다.
바라나시의 화장터 주위론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묵는 숙소로 가득합니다.
이들의 주머니엔 자신의 몸을 태울 장작 값이 들어 있죠. 만약 장작이 부족하면 타다 만 시신 그대로 갠지스 강에 버려지게 됩니다. 오래전 바라나시 여행에서 꽤 충격적인 장면을 보았습니다. 배를 타고 화장터 건너편의 모래톱에 갔더니 늑대만큼이나 큰 개 두마리가 강가를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쏜살 같이 강으로 뛰어 들어 뭔가를 낚아챘습니다. 타다만 사람 팔뚝이었습니다.
일본의 작가 후지와라 신야는 "무릇 갠지스에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제 아무리 대단하고 제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모두 흘러간다." 고 했습니다.
그말 그대로 였습니다. 다만 순간 정신이 멍해서인지 그 모든 장면들이 엄청나게 느린 초슬로우비디오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이 신성한 갠지스 강은 지금 명백하게 죽어가고 있습니다.
인도 인구 중 절반은 화장실이 없습니다.
공장에서 내뿜는 중금속을 품은 폐수도 별다른 정화 장치 없이 강으로 흘러듭니다. 여기에 숫자를 가늠하기 힘든 시신들이 던져지고, 종교의식에 사용된 8백만 톤의 꽃도 갠지스 강에 매년 버려집니다. 최근엔 코로나로 숨진 시신들의 무단 투기도 더해졌습니다. 바라나시의 화장터 옆으론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감격에 겨워 그 물에 몸을 담그고, 그 물을 마십니다.
이것만으로도 죄를 정화하고, 윤회를 끊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라나시를 흐르는 갠지스 강물의 대장균은 세계보건기구(WHO)의 기준치보다 최소 3천 배가 더 높습니다.
갠지스 강 유역에 사는 사람들의 암 발병률이 비정상적으로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환경 운동가들이 갠지스에서 목욕을 하거나 물을 마시지 말라고 권고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신성한 강가신과 시바신이 오염되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오히려 화를 내곤 합니다. 이게 갠지스 강의 오염을 악화시키는 주요 원인 중 하나입니다.
그간 신이 인간을 권해왔겠지만, 최소한 갠지스에서 만큼은 이제 인간이 신을 구원할 차례임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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