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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이 오르면 소비는 줄어듭니다. 반대로 가격이 내리면 소비는 증가합니다.
이건 경제의 가장 기본적인 법칙입니다. 그렇지만 명품만큼은 이 '수요의 법칙' 이라는 중력을 제멋데로 거스릅니다. 오히려 비싸면 비쌀수록 잘 팔리는 게 명품의 특징이죠.
하지만 각종 정보로 무장한 지금의 소비자들이 무조건 비싸다고 지갑을 열리가 없습니다. 그러니 명품의 가격에는 사람을 홀리는 어떤 마법이 분명 있을 겁니다.
도대체 명품은 왜 비산 걸까요?
첫째, 명품 자체가 원래 사치품이기 때문입니다.
명품의 국어 사전적 뜻은 '뛰어나거나 이름난 물건' 입니다.
그런데 이를 영어로 하면 '럭셔리(Luxury)' 입니다. 한마디로 사치품이란 얘기입니다. 해외 유명 브랜드가 막 쏟아져 들어오던 1990년대의 마케팅 전문가들이 '사치품' 이란 부정적 용어 대신 보다 신뢰감이 가는 '명품' 으로 네이밍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명품 브랜드가 잘 팔리는 것은 네이밍의 승리가 한몫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겐 명품, 본토에선 Luxury 라 불리는 이 유명 제품은 본래부터 사치를 위해 탄생했습니다.
그 시조는 보통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를 꼽습니다. 하지만 엄밀하게 얘기하자면 17세기 초 루이 13세의 재상 리슐리외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게 맞는 듯합니다.
그는 왕실의 사치가 국내외의 존경을 받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루이 13세가 9살이란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당시 프랑스는 국내외로 불안정한 상황이었습니다. 리슐리외는 이를 왕실의 화려함으로 극복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 뒤를 이은 루이 14세의 사치는 두말 할 것도 없습니다.
그는 역사상 최초의 셀럽이었습니다.
그가 입고 사용하는 옷과 가발, 장신구들은 곧바로 전 유럽의 귀족과 왕실의 유행이 되었습니다. 이 스타를 이용해 프랑스의 사치품을 산업으로 발전시킨 게 재상 롤베르입니다. 이 브르봉 왕가의 사치가 나중에 프랑스 혁명을 불러오는 한 요인이 되었지만, 오늘날 프랑스를 '패선과 명품의 나라' 로 만들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 중 하나가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기류가 계속 이어지다가 19세기 나폴레옹3세 때 상표제도가 처음 도입되면서 왕실 납품 업체이던 향수의 겔랑(Guerlain), 시계와 보석의 카르티에(Cartier), 가죽제품의 에르메스(Hermes), 토탈 패션의 루이비통(Louis vuitton)등이 이때부터 명품 브랜드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명품은 왕실과 귀족들이 사용하던 사치품이었으니 태생부터 비싼 물건인 셈입니다.
두 번째는 생산 원가 자체가 비싸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명품하면 좋은 재료에 한 땀 한 땀 정성을 다하는 장인들의 모습이 연상됩니다. 예를 들어 최고의 가죽만을 사용하는 것으로 정평 난 에르메스는 가죽의 품질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몇 년이고 아예 해당 제품을 만들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가죽을 만지려면 에르메스에서 운영하는 가죽전문학교에서 3년을 공부해야 하고, 도제수업을 또 2년 간 받아야 합니다.
이렇게 어렵게 길러진 장인이 수작업으로 만들 수 있는 가방은 일주일에 두 개가 고작입니다.
그러니 안 비쌀 도리가 없습니다. 물론 모든 명품이 그렇진 않습니다. 명품계의 G2라 할 수 있는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선 요즘 구인난이 심각합니다. 어디든 마찬가지이지만 힘든 일을 하지 않으려는 것이죠.
게다가 가족끼리의 가내수공업이 점차 기업화되면서 가격 경쟁을 위해 프랑스와 이탈리아 내의 중국인 공장에서 제품을 만드는 경우도 많습니다. 심지어는 아예 인건비가 싼 루마니아, 터키, 인도, 베트남 등지에서 노골적으로 완제품을 만들기도 하죠.
많은 명품들이 이미 장인의 한 땀 한 땀 같은 건 없음에도 여전히 비싼 걸 보면 가격에 거품이 있음도 분명한 것 같습니다.
세 번째는 예술적인 가치입니다.
명품이 귀족의 전유물이었던 시대가 한참 지났듯 명품이 부자들만 소유하는 시절도 진작에 지났습니다. 명품백을 사기 위한 계모임도 있고, 여친에게 선물하기 위해 알바하는 대학생들도 있습니다. 명품을 둘러싼 여러 특이한 소비 행태를 분석하기 위해 전문가들은 온갖 경제용어와 심리용어를 동원하기도 합니다. 주로 명품을 사는 이유에 대한 것들입니다.
여기엔 명품을 소유하면 상위계층에 속한다고 느끼는 '파노폴리 효과(Panoplie Effect)' 도 있고, 과시욕과 허영심으로 인해 비싸면 비쌀수록 더 잘 팔리는 '베블런 효과(Veblen Effect)' 도 있습니다. 또 유명 셀럽을 따라 소비하는 밴드웨건 효과(Bandwagon Effect, 편승효과) 도 있고, 대중화 되면 더 이상 그 상품을 사지 않는 '스놉 효과(Snob Effect, 속물 효과)도 있습니다.
이를 요약하면 명품을 사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자기 과시와 자기 만족, 자기 과시는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명품' 이고, 자기 만족은 '나 혼자만 봐도 아름다운 명품' 이죠. 이런 자기 만족형의 경우 명품은 예술 작품과 같습니다. 그런데 예술작품에는 정가란 게 없죠. 거기엔 원가+이윤을 넘어서는 창작자의 열정과 독창성, 그리고 예술혼에 대한 가치 평가가 들어있습니다.
명품브랜드의 경우 여기에 파노플리, 베블런, 밴드웨건 효과가 더해지면서 그 비싼 가격이 대중들에게까지 정당화되는 것입니다. 만약 이런 게 아니라면 사람들이 그 많은 돈을 주고 포르쉐나 페라리, 마세라티 같은 이탈리아 차를 사진 않을 것입니다. 문짝이 잘 맞으면 마세라티가 아니라는 말이 있듯이 이탈리아산들이 기술적으로 여러 결함을 갖고 있다는 게 정설입니다.
하지만 이탈리아 자동차엔 기술적으로 완벽한 독일차를 갖고 있지 않은, 그 특유의 감성과 디자인이 있습니다. 마치 예술작품 같은 것이고, 거기에 돈을 아낌없이 지불하는 것이죠.
네 번째는 명품이 위치재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가격을 결정하는가?' 라는 책을 보면 이 세상의 물건에는 물적재(Meterial Gllds)와 위치재(Positional Goods)가 있습니다. TV나 컴퓨터, 핸드폰 등 대부분의 물건은 물적재로 절대가치를 갖고 있죠. 즉, 가격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세일을 하면 갑자기 잘 팔립니다.
그런데 어떤 물건은 절대 가치가 아니라 상대 가치 혹은 사회적 가치를 갖기도 합니다. 이게 위치재인데 명풍 브랜드가 대표죠. 위치재가 상대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가지려면 절대로 흔해선 안 됩니다.
그래서 이 물건들은 구매 문턱을 높이기 위해 처음부터 가격을 아주 높게 책정하거나, 많이 팔리면 팔릴수록 물건값을 계속 올리게 됩니다. 에르메스에 버킨백(Birkin Bag)이란 게 있습니다. 설러브리티를 포함한 많은 여성들의 로망이죠. 수천만 원 하는 이 가방은 돈이 있다고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워낙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 한 때는 5~6년씩 웨이팅을 걸어 놓아야 했습니다. 장인이 일주일에 겨우 2개 정도 만드는 버킨백은 이제 웨이팅도 없이 그저 운이 좋은 사람만이 살 수 있습니다. 에르메스 매장을 부지런히 드나들다 우연히 버킨백이 들어오면 마치 산삼 보듯 "심봤다" 를 외치며 그 자리서 돈을 지불해야 합니다.
명품 시계의 끝판왕인 스위스의 파텍필립은 손님이 물건을 고르는 게 아니라 회사가 손님을 고릅니다. 보통 수억 원대에 달하는 파텍필립의 고가품 라인을 사려면 그간 자신이 소유했던 시계의 이력서 제출과 함께 면접이 필수입니다. 이 품위 있는 명품을 가질 자격이 있는지 심사를 통과해야만 그때 비로소 내 돈 내고 시계를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에르메스나 파텍필립의 이런 마케팅은 모두 위치재의 특성인 희귀성을 유지해 계속해서 상품의 가격을 높게 가져가려는 전략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사람들의 소비 심리를 교묘하게 자극하는 앵커링 효과(Anchoring Effect, 닻 내림 효과) 때문입니다.
배는 일단 닻을 내리면 여기저기 움직여봤자 닻 주변을 맴돌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가격의 닻을 내리면 어떻게 될까요? 예를 들어 눈에 가장 잘 띄는 매장 가운데에 1억 원짜리 가방을 화려하게 전시해 놓습니다. 그럼 이게 닻으로 작용합니다.
즉, 자기도 모르게 1억 원을 중심으로 다른 물건의 가치를 평가하게 되는 것입니다. 5천만 원짜리 핸드백이 갑자기 합리적인 가격으로 보이게 되는 거죠. 매장에서도 1억 원짜리 가방을 팔 생각은 애초부터 없습니다. 이건 미끼입니다. 이들이 정작 팔려는 물건은 1억 짜리 닻 덕택에 갑자기 세일처럼 보이는 2~3천만 원 짜리 핸드백입니다.
그리고 헐값으로 보이는 수백만 원짜리 지갑이나 벨트, 거저처럼 보이는 수십만 원짜리 스카프나 악세서리가 처음부터 팔려던 물건이죠.
사실 사람들은 명품의 가치가 정확히 얼마인지 따질 도리가 없습니다.
지갑 하나에 수백만 원, 핸드백 하나에 수천만 원의 가격표를 눈 하나 꿈쩍 않고 매기는 명품 업체에선 "그래! 비싸니까 명품인거야" 라고 끊임없이 말합니다. 가격이 높을수록 가치도 높은 것이라고 고객을 믿게 만드는 것이죠.
그리고 그 속에는 앵커링 효과를 이용해 소비자가 높은 가격에 무디어지게 하는 일관된 전략이 숨어 있습니다. 명품이란 생각해보면 인간이 갖고 있는 열 욕망의 결정체입니다. 즉, 과시, 차별, 인정, 소유, 자기만족 등 여러 욕망 덩어리가 명품이죠.
그런데 지금의 문명은 이런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 위에 만들어져왔습니다. 명품을 두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한 부자들의 전리품이라든지, 상대적 박탈감을 조장한다든지 등의 여러 비난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문명사적 관점으로 길게 본다면 좀 더 당당하게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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