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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은 질서를 잘 지키고 예의가 있다 라는 이야기는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모든 문화권에 존재하는 욕도 발달되어 있지 않죠. 사실 인본욕은 우리가 듣기에 귀여운 수준입니다. 일본인들은 어쩌다 이런 이미지가 생긴것일까요? 아니 어쩌다가 예의바르게 된 것일까요?
일본인들이 살아가면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특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스미마셍이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할 것입니다. 스미마셍은 우리나라 말로 표현하자면 죄송합니다 정도이죠. 사실 스미마셍은 사과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말을 걸거나 사람이 많은 장소를 지나갈 때 심지어 고마울 때도 일본인들은 스미마셍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죠.
언어의 원래 뜻에서도 알 수 있듯이 스미마셍은 상당히 수비적이고 또 격식을 갖춘 표현입니다.
쉽게 말해서 예의를 차리는 말이죠. 실제로 일본인들은 예의가 바르다고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사회가 전체적으로 예의가 바르다는 것은 당연히 좋은 일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과하다 싶을 정도로 예의가 바른 것은 어딘가 이상해 보이죠.
중국인들이 이기적인 이유에서 나왔듯이 나라나 지역의 사람들이 가진 고유한 성격은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일본인들도 예의가 바를 수밖에 없는 역사적인 이유가 있죠. 하지만 딱잘라서 이런 이유때문에 이렇다 라고 말하기는 힘듭니다.
역사학자들이나 사회학자들의 추측이죠. 그렇다고 신빙성이 없다는 것은 아니고 말그대로 근거있는 추측입니다.
일본인들은 무조건 예의가 바르지는 않습니다. 어찌보면 당연한 것입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여가서 무조건 예의가 바르지 않다는 것은 조금 다른 말입니다. 일보에서 일을 해보았다면 혹은 일본의 영화나 만화를 좋아한다면 아실겁니다. 손님이나 상사와 같은 윗사람에게는 정말 비굴할 정도로 친절하지만 자신이 고용한 직원이나 체급이 낮은 사람에게는 한없이 무례하죠.
일반화는 아니지만 미디어에 자주 묘사될 정도로 흔한 광경입니다.
여기서 하나를 알 수 있죠. 일본인들의 천성이 예의바르고 착한 것이 아니라 일본인들의 예의는 사실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요. 일본에 친절의 가면이 생긴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유추되고 있습니다.
먼저 가장 보편적이고 널리 알려진 이야기부터 알아보죠. 과거 일본은 고대 국가들의 시대가 막을 내림녀서 군사정권의 시대를 맞이했죠. 이때 자리 잡은 군사정권은 전국시대까지 합쳐서 무려 700년 가까이 지속되었습니다. 군사정권 시대는 당연한 말이지만 군인들의 힘이 강했겠죠. 실제로 당시 군인의 역할을 했던 사무라이들은 상당히 높은 계급에 속했습니다. 확실한 지배계층이었죠.
사무라이들의 권력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했습니다.
칼을 차고다닌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완장을 차고 다니는 것과 같았죠. 사무라이들은 기분에 따라 사람을 베었습니다. 지나가다 실수로 부딪히거나 버릇이 없었다는 흔한 이유부터 시작해서 금품을 내놓지 않거나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아도 베어버렸죠. 심지어 츠지기리라는 잔인하고 기괴한 악습도 있었습니다.
'츠지기리'는 검이 잘 드는지 확인하겠다는 이유로 지나가던 행인 중 아무나 골라서 베는 짓이죠.
사소한 실수만으로도 목이 날아갈지 모른다는 공포는 수백년에 걸쳐서 문화를 형성했습니다. 어느새인가 상대방의 심기를 약간만 건드려도 바로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었죠. 살기 위해서는 한없이 비굴해질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군인들, 즉, 사무라이들이 기분에 따라서 혹은 재미로 민간인들을 해한다는 것은 어딘가 이상합니다. 일본인들이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무사도 정신에도 반하는 것 같죠. 사실 무사도 정신도 평민이나 피지배계층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은 아닙니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해 보자면 누군가를 위한 것이 아니죠.
무사도정신 이라는 것은 무사로서 갖춰야하는 덕목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결투는 일대일 단기접전으로 벌여야한다거나 도망쳐서는 안 된다는 것들이죠. 무사도 정신의 실상은 사무라이끼리 대결할 때 지켜야 할 요소 정도였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아는 무사도는 서양의 기사도처럼 시간이 흐러면서 변질된 것입니다. 일본은 내전이 길어짐녀서 무사도정신이 흐릿해져 갔습니다. 사무라이들의 단기접전은 그저 이기면 그만이 되었고, 상황에 따라서 도망가거나 뒤통수를 치는 일이 다반사가 되었죠. 그냥 자연스럽게 잊혀졌으면 좋았겠지만 결투에 대한 사항들이 대부분 사라진 무사도에는 희생과 복종에 대한 덕목이 들어오게 됩니다.
영주들은 사무라이에게 무조건적인 복종과 희생을 강요하게 되었습니다.
뭐 여기까지는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이 들지만 무사도가 결두에서 지켜야할 것들이 아닌 복종과 생활양식이 된 후에는 점점 더 기괴하게 변했습니다. 영주에게 복종하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할복까지 만들어냈죠. 여담으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제군이 미국에게 사용했던 카미카제도 병사들에게 무사도 정신을 강요하며 실행했던 전술입니다. 정작 희생되었던 사람들의 유언을 보면 무사도 정신이 아닌 어머니를 찾았지만요.
아무튼 이상해져버린 무사도 정신과 더불어 완장질에 맛이 들려버린 사무라이들은 전국시대가 끝이 나버리자 힘을 잃어갔습니다. 더 이상 칼을 쓸 곳이 없어져버린 것이죠. 직업이 사라진 것입니다. 사무라이들은 화풀이를 하며 무리를 지어 약탈과 깡패짓을 일삼았죠. 피해를 보는 것은 결국 평민들이었습니다. 전쟁의 시대는 끝이났지만 여전히 사무라이의 정신과 위상은 남아있던 시대, 사무라이들은 더이상 자신들을 찾지 않는 시대에서 정체성을 찾으려 혹은 먹고살기 위해서 일반 사람들을 베었습니다.
백성들은 살기 위해서는 고개를 바닥까지 쳐박고 손에 지문이 사라질 때까지 빌어야했죠. 이때 자리 잡은 죽음에 대한 공포는 일본인들이 예의를 차리게 만들었고 문화가 되어 아직까지 내려오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해를 가할 힘이 있는 윗사람에게만 예의를 갖추는 것이죠. 이 이야기가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이중성이 다분한 친절함은 일본의 약자 배척 문화 때문이라는 의견도 많습니다.
에도시대 일본은 전례가 없던 풍요의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평민들의 삶은 오히려 고통스러웠죠. 화려한 에도시대 이면에는 농민들을 세금으로 쥐어짜 만든 부정부패가 있었습니다. 어렵게 수확을 마무리해도 세금을 내고 나면 남는 것이 없었죠. 결국 에도시대 농민들은 납득받을 수 없는 짓을 자행했습니다. 바로 아이를 없애는 문화이죠. 당장에 쓸모도 없는 밥만 축내는 아이를 굳이 키울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었을까요? 이 끔찍한 악습은 하나의 관행으로 자리 잡으면서 기근이 끝나고 시대가 바뀐뒤에도 사라지지 않고 이어졌습니다.
완전히 뿌리가 뽑힌 것은 20세기에 들어 세계전쟁이 끝날 무렵이었습니다. 이 풍습의 영향으로 한동안 일본은 인구가 늘지 않았죠. 심지어 남자들은 결혼할 여성을 찾을 수 없었던 나머지 장남만이 결혼을 하는 지경까지 갔었습니다. 이때 일본인들의 정신 깊은 곳에는 약자에 대한 멸시가 박혔죠. 윗사람에 대한 공포와 마찬가지로 한번 몸에 베어버린 멸시는 쉽게 사라지지 못했습니다. 비록 악습은 사라졌지만 약간 다른 형태로 일본 사회에 자리잡았죠. 따돌림으로 말입니다.
강자들과 이미 함께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친절하지만 약자와 쓸모없다고 느껴지는 사람은 멸시하는 문화가 생긴것이죠. 학자들은 이상할만큼 친절한 이유를 약자를 배척하는 문화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밉보여서 약자가 된다면 어떤 짓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에 예의가 바르다는 말이죠.
마지막은 버블경제 시대의 영향 때문이라는 가설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일본 경제에 거품이 꺼지고 위기가 찾아왔을 무렵이죠. 1990년대 거품 경제의 달콤함에 취해있던 일본인들은 거품이 터지고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면접비만으로도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로 잘 살았지만 90년대 초부터는 일을 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어 허덕이는 상태가 된 것이죠. 심지어 이 시기는 인구수가 가장 많은 1970년생들이 취직을 해야하는 시기였으니 사태는 더욱 심각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당장 먹고살기도 힘든데 남에게 진심으로 신경을 쓸 여력따위 없었죠. 여기에 불을 지른 것은 일본의 블랙기업들입니다. 일자리가 얼어붙으면서 오갈 때 없는 젊은이들은 야쿠자들이 만든 블랙기업으로 유입되었죠. 참고로 블랙기업이란 더러운 일을 하는 회사라기보다는 평범한 일자리인척 취업을 희망하는 사람을 데려와서 노동력을 착취하고 버리는 기업입니다. 물론 더러운 일을 하는 회사도 많았습니다.
가뜩이나 힘들어 죽겠는데 블랙기업들까지 기승을 부렸으니 일본 사회는 더욱 서로에 대한 신뢰를 잃어만 갔습니다. 누군가 나를 이용하고 버리지는 않을지 이 사람의 말을 100% 신뢰해도 되는 것인지,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사람들은 마음을 더욱 굳게 닫아버렸죠. 취업률뿐만 아니라 사회마저 얼어붙은 것입니다.
물론 시간이 지난 현재는 많이 완화되긴 했지만 90년대에 심각한 충격을 겪은 일본은 여전히 그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중이죠. 특히 1970년생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신뢰를 잃은 사회는 사무라이들이 완장을 차고 다니던 시대나 아이를 잔혹하게 걸러내던 시대만큼 뼈아픈 시대가 되었죠. 웃는 얼굴로 사람을 상대하지만 그 이면에는 상대에 대한 불신이 담기게 되었습니다. 겉으로만 친절나 사회는 2010년대로 넘어오면서 더욱 심해졌죠. 95년대부터 사회의 분위기는 점점 나아지기 시작했지만 사람들의 가슴 깊은 곳에 생겨난 멍은 쉽게 사라지질 않았으니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일본인을 두고 겉과 속이 다르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이곳에 있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종합해보자면 일본인들의 친절은 먼저 죽음에 대한 공포로 두 번째는 약자에 대한 멸시로 마지막은 서로에 대한 불신으로 생겨난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과도하게 친절한 척하지만 약자와 강자에게 대하는 태도가 분명히 갈리고 무엇보다 속에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모르죠. 일본의 이중적인 친절은 이렇게 만들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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