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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도시와 한국의 도시는 무엇이 다를까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도시 구조상 가장 크게 다른 건 광장의 존재와 쓰임새일 것입니다. 유럽의 도시는 한 마디로 광장을 중심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반면 우리는 줄곧 길이 도시의 중심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광장의 역사가 굉장히 짧을 뿐더러 사용하는 방식도 많이 다릅니다.

유럽 광장의 원류는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에 있었던 아고라입니다. 산 위의 아크로폴리스가 신을 중심으로 한 세계라면 산 아래의 아고라는 인간 세계의 중심지였죠. 죽은 사람은 산 위에서 살고, 산 사람은 산 아래에서 사는 우리와 비슷하다고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어쨌든 '모이다' 라는 뜻을 가진 단어답게 아고라엔 온갖 사람들이 모여 정보를 교환하고, 토론을 하고, 민회도 열었습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이니 당연히 시장도 이곳에 열려 상거래의 중심지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스의 아고라는 로마시대가 되어선 포럼으로 이어졌습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고 할 정도로 로마인들은 수많은 길을 냈는데 길이 좌우로 교차되는 지점마다 대개 포럼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화려한 열주를 세워 포럼의 경계선을 표시했지요.

그리스의 아고라와 로마 초기의 포럼은 대부분 네모반듯한 사각형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광장을 Square(스퀘어)라고 부릅니다. 물론 역사가 진행되면서 광장은 점차 부채꼴, 마름모꼴, 삼각형, 타원형 등 온갖 모양으로 변화해갔지요.

 

하지만 유럽의 도시에 광장이 본격적으로 들어선 것은 중세 때부터입니다. 이는 기독교의 확장과 맞물려 있습니다. 11세기에 들어서 십자군 전쟁 등으로 사람들의 대규모 이동이 잦아지게 되었고 상업이 발달하면서 경제력도 커져갔지요. 그러면서 유럽 전역에 많은 도시가 생기게 되었고, 따라서 광장도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도시가 광장을 중심으로 발달했다지만 엄밀히 말해서 광장은 교회가 중심이었으니, 많은 경우 사실상 교회가 되시의 출발점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선 홍익대 건축학과 유현준 교수의 설명이 가장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것 같습니다. 우선 누군가가 사람 통행이 많은 곳에 교회를 짓기로 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유현준 교수에 의하면 성당 같은 대건축은 주로 돌로 짓게 됩니다. 그러려면 돌을 다듬고 건축자재를 쌓아둘 별도의 공간이 필요합니다.

 

그건 주로 성당 앞의 드넓은 빈터입니다. 돌로 큰 성당을 짓는 건 수백 년이 걸리는 대공사입니다. 따라서 성당 주변으로 인부들을 위한 숙소와 식당 등도 들어서게 됩니다. 마침내 공사가 끝나면 숙소와 음식점 건물은 그대로 남게 되고, 대신 작업장은 비워져 자연스럽게 광장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좀 더 덧붙이자면 성당은 신의 권위가 잘 드러나야 하므로 그 앞을 비워 어디에서든 잘 보이게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성당은 완공전이라도 실내 예배당만 만들어지면 마을 사람들이 일주일에 한 번은 모여야 하는 장소였습니다. 게다가 광장엔 동네에서 유일한 작은 분수나 우물을 두었습니다. 물을 기르기 위해서라도 마을 사람들은 광장에 가야 했습니다.

 

이곳에서 마치 우리의 옛 우물가가 그랬듯, 동네 사람들에 대한 뒷담화를 포함한 온갖 정보가 교환되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이니 상업시설이 광장 주변에 만들어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그래서 광장마다 시장이 들어섰습니다. 게다가 지배층들이 이 요지를 놓칠리가 없지요.

 

광장을 둘러싸고 시청이 들어서고, 길드조합이 자리하고, 가족들의 저택까지 한 모퉁이를 차지했습니다.

이렇게 교회가 완성되기까지 수백 년에 걸쳐 광장이 있는 중심지역은 지배층이 차지하고 그 뒷편으론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일반인들의 집들이 자리하면서 자연스럽게 도시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방어를 위한 성벽을 빙 둘러 세워 도시를 완성시켰습니다. 나중엔 유럽도시 주변의 성벽은 중세가 끝나고 르네상스 시대가 되면서 더 이상 쓸모가 없게 됩니다. 유럽에 화약이 전해졌기 때문이죠. 그래서 점차 이 성벽을 철거하게 되는데 그 덕에 오히려 도시가 더 커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치 복제하듯 또 다른 블록에서 수백 년에 걸쳐 교회를 세우고 돌작업터가 광장이 되고, 그 주변으로 시장이 들어서고 관공서가 자리하는 과정을 거쳐 도시가 확대되었습니다.

 

광장과 광장은 여러 갈래의 골목으로 이어졌고, 골목을 사이에 두고 집들이 빽빽하게 빈 공간을 채웠죠.

그런데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를 거치면서 유럽의 광장은 좀 더 커지고, 좀 더 화려해졌습니다. 피렌체의 시뇨리아 광장이 그 대표인데, 기념비와 통치자의 동상이 세워지고, 예술적인 분수와 조각품이 광장을 장식했습니다. 이는 대부분 그 지역 명문세가의 헌납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늘 이들을 옥죄는 성경 구절이 하나 있었으니 "부자가 천당에 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보다 어렵다." 입니다. 교회는 이 구절을 적절히 이용해 부자들에게 교회 종탑은 물론 도서관이나 미술관을 지어 시민들에게 기부하도록 유도했습니다. 유럽의 도시에 광장이 있을 수 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그건 굉장히 폐쇄적인 건축 방식입니다.

유럽의 오래 된 집들은 거의 대부분 골목의 경계선에 바짝 붙여지었습니다. 외부로는 창을 가급적 작게 내고 큰 창은 주로 건물 내부의 중정방향으로 냈지요. 이런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으니 마치 전체가 거대한 담장처럼 보였습니다. 이는 일부 지역에선 창문에 붙는 세금 때문에, 어떤 곳에선 지진에 대비하기 위해서 입니다.

 

하지만 대개는 적의 침략에 대비해 도시를 마치 요새처럼 만들려는 이유가 큽니다. 도시 전체가 이런 집들로 가득하면 도시인들은 숨 쉴 공간도 없고 함께 쓸 공적 공간도 없게 됩니다. 그래서 마련된 게 광장입니다. 숨 막힐 것 같은 도시의 폐쇄성을 그나마 광장을 통해 완화한 것이죠. 어쨌든 유럽의 역사에서 광장은 결코 빼 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중요한 공간이었습니다.

이곳에서 경제활동도 하고, 의견도 교환하고, 축제도 즐겼습니다. 격동의 시대엔 혁명의 무대였고 단두대로 목을 자른 한풀이 장소였고, 때론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민주주의를 꽃피운 곳도 광장이지요.

반면  우리는 어떨까요?

우리의 전통 집은 길을 따라 집을 짓되, 길의 경계까지가 아니라 대지 안쪽으로 물러나 집을 앉혔습니다. 집에서 길까지의 공간은 마당으로 삼았죠. 이 마당으로 이웃이 쉽게 드나들면서 마당이 광장의 역할을 일부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웃이 생기면서 자기 땅을 구분 짓기 위해 마당과 길이 만나는 지점에 담이나 울타리를 쳤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밖에서 안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대개 낮았죠.

 

이는 집안에서 집밖을 내다보는 시선을 중시했던 차경(借景)문화의 영향일 것입니다. 어쨌든 폐쇄적인 유럽의 집들과 달리 우리의 집들은 이런 식으로 타인에게 시각적으로 물리적으로 개방감을 주었습니다.

그만큼 우리는 유럽의 도시에 비해 광장의 필요성이 적었다는 얘기입니다. 거기에 우리는 오랫동안 인구밀도가 낮은 농경사회였지요. 중앙집권제가 일찌감치 정착한 덕에 유럽에 비해 내부 전쟁도 거의 없었고, 그만큼 방어를 위한 성벽도시를 만들 필요가 없었으니 그에 따른 광장도 발전할 여지가 적었던 셈입니다.

 

우리나라에 광장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사실상 20세기 후반이 되어서 입니다. 지금은 여의도공원이 된 5.16광장이지요. 수백 년의 기간 동안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유럽의 광장과 달리 권력자의 명령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든 전형적인 '관처 광장'이었습니다. 사실상 5.16 광장의 쓰임새는 박정희 정권의 권위를 드러내기 위한 군사퍼레이드 뿐이었습니다.

 

이후 차도를 막아 서울 광장과 광화문 광장을 만들었지만 유럽과 같은 일상공간이나 문화공간이라고 하기엔 거리가 먼 게 사실입니다. 건축학적으로 왕복 4차선 이상의 도로가 있으면 사람들은 잘 건너려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서울광장도, 광화문 광장도 6차선 이상의 도로에 둘러싸인 섬 같은 곳이죠.

무엇보다 광장을 둘러싸고 기념품 가게나 술집, 카페, 식당 등이 있어야 사람들이 오래 머무를 텐데, 우리의 광장은 앉아 있을 벤치조차 없는 참 심심한 장소입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의 광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정치 집회나 시위뿐입니다.

그렇다면 유럽 광장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긴 역사를 볼 때 광장의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역할은 '시장'과 '공론의 장' 입니다.

하지만 유럽인들도 더 이상 광장의 시장에서 장을 보지 않습니다. 의견을 나누기 위해 더 이상 광장에서 직접 만나는 일도 없습니다. 마트나 온라인 몰,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이미 광장을 대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월이 더 흐르면 광장이 야외주차장으로 전락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습니다. 사실상 유럽의 역사를 써온 광장이 앞으론 어떻게 변하게 될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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