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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사태로 본 현 한국 정부와의 데자부
이란이 요즘 심상치가 않습니다. 1979년 호메이니의 이슬람 혁명 이래, 최대 시위가 연일 벌어지고 있습니다. 발단은 히잡입니다.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도덕 경찰에 체포된 한 젊은 여성이 의문사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그간 쌓인 분노가 폭발한 것이죠. 이 시위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우선 여성이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늘 여성이 수동적인 입장인 이슬람 국가에선 드문 일이죠.
여성이 주축을 이룬 시위에 남성들이 대거 합세했다는 점도 특이합니다. 심지어 월드컵 평가전에 나선 이란축구대표팀마저 시위 지지 의사를 노골적으로 드러내 더욱 화제입니다. 벌써 한 달째, 수백 개의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이 시위로 벌써 200명 이상이 숨졌고, 수천 명이 체포되었습니다.
하지만 시위는 팽창일로입니다. 급기야 에너지 산업 노조까지 동조 시위에 나섰습니다. 이란의 최대 단체입니다. 1979년 팔레비 왕조가 무너진 것도 에너지 산업 노조가 이슬람 혁명 편에 선 것이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이 때문에 이란에 또 다른 혁명이 일어나는 것 아닌가 하는 조심스러운 관측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간에도 이란에선 히잡 강제 착용에 반대하는 여성단체들의 시위가 간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작년부터 집권한 검찰총장 출신의 강경 보수 대통령 에브라힘 라이시가 이를 탄압하면서 사태가 악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머리카락을 가리기 위한 작은 천 조각에 불과한 히잡이 대체 뭐길래 시아파의 종주국인 이란 전체가 이렇게 들썩이는 걸까요?
이란은 물론 이슬람 세계를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선 히잡에 대한 핵심 4가지를 알아두는 게 좋겠습니다.
첫째, 히잡은 종교적인 유물이 아닙니다. 아랍어로 ‘가리다’는 뜻을 가진 히잡은 보통 이슬람의 교리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히잡은 이슬람이 탄생하기 훨씬 이전부터 중동에 존재했던 일종의 전통 복장입니다.
중동의 뜨거운 태양과 모래바람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아주 오래전부터 메소포타미아에서 베일을 쓰기 시작한 게 그 기원이죠. 여자는 물론 남자에게도 베일은 생존을 위한 필수품이었습니다. 그뿐 이슬람 경전인 코란 어디를 보아도 히잡을 반드시 써야 한다거나 히잡으로 몸을 얼만큼 가려야 하는지 명확한 내용이 없습니다.
다만 “남성을 유혹하지 않기 위해 여성은 아름다운 곳을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라고 두루뭉술하게 언급된 부분이 있을 뿐입니다. 이슬람이 발흥한 7세기는 무법천지나 다름없었습니다. 유목 부족들 간의 끊임없는 전쟁으로 여성들은 성적으로 유린당하거나 노예로 팔려나가기 일쑤였습니다.
이 때문에 당시 환경은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성적 매력이 드러나지 않도록 옷을 입는 게 좀 더 유리했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이슬람 학자들은 베일이 아니라 여성의 정숙한 의상 자체를 히잡이라고 해석했습니다. 물론 각 지역마다 정숙한 의상의 기준은 제각각이었죠.
그래서 지역에 따라 머리카락과 가슴을 가리는 히잡, 얼굴을 남기고 전신을 가리는 차도르, 눈을 제외한 전부를 가리는 니캅, 눈까지 망사로 가리는 부르카 등을 입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후대로 갈수록 이슬람 율법학자들은 “남성을 유혹하지 않기 위해 여성은 아름다운 곳을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는 애매한 구절을 확대해석해서 여성들에게 히잡을 강요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결정적으로 히잡을 이슬람의 정체성으로 만든 건 비교적 최근인 20세기 중엽 이후입니다.
이 시기 들어 이슬람에 근본주의가 본격 득세하면서부터이죠. 아랍은 이스라엘과 4차례에 걸쳐 중동전쟁을 벌였습니다. 연전연패였죠. 당시 아랍에선 많은 나라에 세속주의 정권이 들어서 있었습니다. 충격을 받은 무슬림들은 패배의 책임을 세속정권에 돌렸죠.
전쟁 패배의 원인을 신앙심 부족에서 찾으면서 이슬람. 세계는 속속 강경 원리주의 정권으로 교체되고 있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국가가 아랍은 아니지만 시아파 이슬람의 종주국인 이란이고, 그 하이라이트가 이슬람 혁명이죠.
당시 정권을 잡은 호메이니 정부의 한 각료는 여성의 히잡 착용 의무화를 선언하면서 “여자의 머리카락은 빛을 내어 남자들을 흥분시킨다. 그게 여자가 베일로 머리를 가려야 하는 이유이다.”라고 밝혔습니다. 1300년 전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논리로 히잡을 강요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둘째, 히잡은 이슬람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히잡하면 무슬림 여성부터 떠올리지만 무슬림 남성들도 마찬가지로 하얀 모자로 머리카락을 가리고, 헐렁한 옷으로 온몸을 감싸고 있으니 히잡을 입은 것과 같습니다. 또한 히잡은 따지고 보면 이슬람뿐 아니라 거의 모든 종교가 따르는 관습입니다.
유대교, 기독교, 힌두교, 조로아스터교, 시크교 등에서 종교 의례시 사용하는 모자는 머리카락을 가린다는 점에서 히잡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여성의 성적 매력을 숨기는 히잡의 용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비잔틴 여성도 베일을 쓰고 있었고, 근세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여성들도 지금의 후드티 형태의 모자를 착용했으며, 우리도 일제 강점기까지 장옷을 걸쳐 여성의 매력을 감춰왔습니다.
이렇듯 국가 차원에서 여성의 성적 매력을 통제하는 건 이슬람만이 아니라 과거엔 세계적으로 흔한 일이었습니다. 지금의 가톨릭 미사포와 수녀들의 복장 역시 용도를 비교해보면 무슬림의 히잡과 사실상 다른 점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셋째, 히잡이 이슬람 여성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이지만 서구 세계에서 히잡은 무조건 여성억압의 상징이라고 여겨버리곤 합니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들이 여성들에게 히잡의 극단적인 형태인 부르카를 강요하면서 이런 이미지가 각인되어 버렸죠.
하지만 이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습니다. 부르카를 입는 지역도 극히 일부 지역에 불과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중동에서 히잡의 역사는 굉장히 오래되었습니다. 오랜 세월 익숙해진 터라 히잡이 전혀 불편하지도 않을뿐더러 억압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서구 세계의 편견과 달리 무슬림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선 히잡이 여성의 자유를 박탈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늘 더 많습니다. 오히려 히잡으로 몸을 가림으로써 남성의 성적인 시선에서 벗어나 더 주체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20세기에 히잡은 서구 세계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사실상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이집트는 꼭두각시 정부가 여성을 해방한다는 명목으로 히잡을 금지하자 이에 대한 반발로 오히려 히잡 입기 운동을 벌인 게 여대생들이었습니다. 당시 이집트에서 히잡은 독립운동의 상징이었습니다.
튀르키예의 국부라고 불리는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도 국가를 근대화한다면서 히잡 전면 금지령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이슬람의 전통을 지킨다며 히잡 쓰기 운동을 일으킨 건 여성들이었습니다. 결국 아타튀르크가 물러설 수밖에 없었죠.
알제리에서 히잡은 더 극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알제리만큼은 끝까지 식민지로 삼으려던 프랑스는 특히 독립운동에 대해 혹독한 탄압으로 일관했습니다. 이에 맞서 알제리 여성들은 히잡 속에 무기와 비밀문서를 숨겨 운반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실제로 알제리 독립에 지대한 공을 세운 알제리의 히잡은 식민주의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었습니다.
이렇듯 히잡이 여성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서구의 시각은 무슬림 여성들의 주체성을 무시하는, 그리고 중동의 역사 흐름을 이해하지 못한 편견일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란 여성이 진정 원하는 것은 히잡을 벗는 것이 아닙니다.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기 전의 팔레비 왕조 시절, 이란 여성들은 미니스커트도 입을 수 있었고, 비키니도 입을 수 있었습니다.
대신 왕조 초기인 1936년엔 히잡 착용을 강제로 금지시켰죠. 이란 여성들이 좋아했을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란 여성들은 상당수가 히잡을 쓰지 않고 밖에 나가는 걸 수치스러워했습니다. 마치 발가벗은 느낌이었죠. 여성들이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어찌나 극심했던지 팔레비 왕조는 히잡 금지를 철회해야 했습니다.
팔레비의 세속왕조를 무너뜨린 호메이니의 이슬람 혁명 정부는 이번엔 반대로 히잡보다 더 한 차도르의 착용을 의무화했습니다. 안 쓰면 74대의 태형으로 다스렸습니다. 지금도 히잡을 단속하는 도덕 경찰은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은 여성들에게 그 자리에서 매질을 할 수 있습니다.
팔레비 왕조의 금지든, 이슬람 정권의 의무든 국가 차원의 히잡 정책에 대해선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히잡을 쓰든 벗든 당사자는 여성이건만 법안의 결정은 남성들이 내렸다는 것입니다. 팔레비 왕조든 이슬람 정권이든 이란 여성들이 반발하는 데도 일관된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히잡을 쓰든 벗든 그 선택권을 여성에게 달라는 것입니다. 현재 이슬람 국가 57개국 가운데 히잡 착용을 이슬람 율법으로 의무화한 나라는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두 나라뿐입니다. 사회 분위기상 쓸 수밖에 없는 나라들도 꽤 있지만 어쨌든 나머지 이슬람 국가들은 히잡 착용이 개인의 자유의사에 맡겨져 있습니다. “이 얇은 가리개 하나 때문에 정말 사람이 죽어야 하는가? 내 복장 하나 선택할 수 없는 나라가 어떻게 국민을 위한 나라인가?” 지금 거리 시위에 나선 이란 여성들의 외침입니다.
이란 여성들은 히잡 자체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정부가 빼앗아간 개인의 기본권을 되찾기 위해 죽음을 무릅쓴 싸움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즉, 이란 사태의 핵심은 히잡이 아니라 여성의 자기 결정권입니다.
- 유튜브 "지식 브런치" 채널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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