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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인들이 소형차와 수동차를 탈 수 밖에 없었던 사정
유럽에서 차를 빌릴 때마다 당황스러운 점이 한가지 있죠. 렌트카의 대부분이 수동이라 별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점입니다. 렌트 가격도 동급의 수동에 비해, 오토 차량은 훨씬 비싸게 받죠.
그나마 요즘 사정이 좀 나아졌지만, 10여 년 전만 해도 유럽의 작은 공항이나 작은 도시에선 아예 오토매틱 차량이 없는 경우도 꽤 있었습니다. 그간 수동 차량을 고집해오던 유럽에서도 최근엔 대형 승용차를 중심으로 점차 오토매틱이 증가하고 있긴 합니다.
영국에선 2020년에 처음으로 신차 판매에서 오토가 수동을 넘어섰습니다.독일에서도 오토 판매가 비약적으로 증가해 거의 30%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형차 천국인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선 여전히 수동차가 압도적으로 많죠. 유럽 전체를 보면 길에 굴러다니는 승용차의 70~80% 정도가 여전히 수동일 것으로 자동차 매체들은 보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가 워낙 오토매틱 차량이 많아서 그렇지, 대부분의 나라에선 수동차가 여전히 대세입니다. 세계 주요국 중 오토 차량이 압도적으로 많은 나라는 우릴 포함해 미국, 캐나다, 일본, 호주, 뉴질랜드 정도뿐이죠.
우리 나라에서도 아직 극소수의 수동 매니아들이 남아 있긴 합니다. 소위 ‘운전 맛’을 즐기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요즘 수동 차를 운전할 줄 아는 사람들이 워낙 적어 술 마시고 대리운전 부를 때가 제일 난감하다고 합니다.
운전 능력자를 찾느라 대기 시간도 길고 추가 비용도 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중고로 차를 팔 때도 막심한 손해를 감수해야 하고요. 어쨌든 세계에서 여전히 수동이 인기인 것은 무엇보다 차량 가격이 상대적으로 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계에서 수동 차량이 가장 많은 인도를 비롯해 경제적으로 가난한 나라일수록 자동보단 수동이 훨씬 더 많죠. 그런데 부자 나라들이 많은 유럽에선 왜 여전히 수동을 고집하는 걸까요?
이는 2차 세계대전의 전후 상황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거의 모든 나라가 전쟁터가 되었던 2차 대전은 유럽을 그야말로 쑥대밭으로 만들었죠. 전후 유럽의 목표는 오로지 복구와 재건이었습니다.
이 목표를 제외한 나머진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었죠. 사치는 꿈도 꿀 수 없는 시절이었습니다. 이게 자동차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무렵, 영국에서 가장 많이 팔렸던 “오스틴 1100” 같은 1100cc급의 값싼 소형차가 유럽 자동차의 지배층이 된 건 당연했습니다.
이 상황은 미국과 비교해보면 더욱 확연하게 이해될 수 있습니다. 당시 미국은 유럽과 정반대였죠. 전쟁도 이기고, 경제도 호황이었습니다. 세계 최강대국이라는 자부심이 하늘을 찌르면서 ‘뭐든지 크게’ 만들게 되었습니다.
“건물도 크게, 상점도 크게, 도로도 크게, 자동차도 크게” 였죠. 그래서 지금도 클래식가로 유명한 쉐보레 임팔라처럼 크고 무거운 차가 미국에선 대세가 되었습니다.
이런 전후 상황을 바탕으로 도시의 역사와 지형의 차이는 양쪽의 자동차를 더욱 다른 모습으로 만들었습니다. 유럽의 도시는 적어도 수백 년의 역사를 갖고 있죠. 복구 역시 이를 바탕으로 한 것이고요.
그래서 유럽의 도시 도로는 대부분 폭이 좁고, 구불구불합니다. 게다가 처음부터 방어를 기본 개념으로 언덕 위에 도시를 만든지라 경사가 제법 가파르기도 합니다.
소형차가 적합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죠. 반면 미국은 드넓은 평지에 계획적으로 도시가 들어섰죠. 처음부터 도로도 반듯하고 넓게 만들었고요. 그러니 유럽과 달리 큰 차도 아주 쉽게 도시를 달리고 주차할 수 있었습니다. 1980년대 후반기가 되어 이미 미국에선 오토 자동차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유럽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죠. 좁고 구불구불하고 가파른 도로에선 수동변속기가 최고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도로에서 빠르게 가속하고 높은 파워를 얻는 데는 당시 기술론 자동이 수동을 따라올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유럽의 휘발유값이 미국보다 늘 비쌌죠. 물론 나라마다 다르긴 하지만 역대 평균으로 보면 유럽의 1리터당 휘발류값은 미국과 2배 이상 차이가 났습니다. 지금도 미국이 리터당 1천 원대 초반 수준이라면 유럽은 대게 2천 원이 넘습니다.
그러니 차를 결정할 때 연비가 무엇보다 중요한 고려 사항일 수밖에 없습니다. 수동 자동차는 동종의 오토매틱에 비해 보통 30% 정도는 더 가볍습니다. 기계에게 맡기는 게 아니라 사람이 직접 변속을 하니 변속기의 구조가 좀 더 간단하고 무게에서도 차이가 나죠.
차가 가벼우면 당연히 연비도 좋아져 보통 수도이 자동보다 20%가량 연비가 높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옛날 이야기 입니다.
오토메틱 차량의 약점이 계속 개선되면서, 최근엔 수동과 자동의 연비는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더구나 수동의 경우 변속기를 완벽한 타이밍에 맞춰 조작하지 않으면 오히려 지금의 자동보다 연비가 떨어집니다.
이런 상황에서 수동을 계속 고집한다는 것은 그간의 효율성에서 비롯된 일종의 관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럽인들이 수동을 고집하는 또 다른 이유로는 낮은 유지 비용을 꼽을 수 있습니다. 수동은 자동에 비해 구조 자체가 단순해 수명이 길고, 잔고장도 훨씬 적습니다. 고장나더라도 수리 비용이 적게 나오죠. 인건비가 비싼 유럽에선 그 비용이 엄청나 웬만하면 직접 수리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들에게 복잡한 자동은 쓸데없는 돈 낭비죠. 더구나 차값이 싸면 보험료와 연관 세금도 아낄 수 있으니 유지 비용을 자동보다 더 낮출 수 있습니다. 앞서 보다는 사소한 이유지만 “자동은 여자들이나 모는 차”라는 사회적 편견도 한몫합니다.
두 손과 두 발을 모두 사용해 차를 완전히 지배하는 느낌으로 운전하게 되는 수동변속기야말로 남자들의 차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덜하지만 오랫동안 유럽에선 남자가 오토를 몰면 게이라는 비아냥도 있었고, 이런 사회적 인식 때문에 오토매틱 선택을 주저하게 된 것도 사실입니다.
여기에 하나만 더 덧붙이자면 “유럽은 왜 디지털 도어락을 쓰지 않고 열쇠를 고집할까?” 라는 글에서 말씀드렸듯이 유럽인들의 디지털에 대한 불신도 오토매틱의 보급을 가로막는 한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다시 정리하자면 전후의 근검절약 분위기에서 저렴하고, 지형과 도로 사정에도 잘 맞고 기름값과 유지비도 덜 드는 수동차는 유럽에서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인식이 남아 유럽에선 아직도 오토매틱은 사치스러운 옵션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한편 오토매틱이 일부 국가에서 급속도로 보급된 것은 ‘도시 집중화’가 가장 중요한 요인입니다. 오토 자동차가 절대 다수인 한국, 일본, 미국은 모두 고속도로보단 복잡한 도심에서의 운전이 훨씬 많은 나라들이죠.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극심한 교통체증이 일상화된 현실에선 오토 자동차의 장점이 더욱 뚜렷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만약 유럽에서도 우리만큼이나 도시 집중화가 심했다면 분명 지금보다 오토매틱의 보급은 훨씬 많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유럽에서도 앞으론 자동이 대세가 될 것입니다. 이미 유럽에서 만드는 고급차중에선 수동변속기의 단종이 시작되었습니다. 수동변속이 당연했던 스포츠카조차 이젠 자동변속기만을 달 정도입니다.
미래의 전기차나 수소차 시대에선 말할 것도 없습니다. 앞에서 본 것처럼 수동은 자동에 비해 거의 모든 면에서 비교 우위였습니다. 단 한 가지 뒤졌다면 조작의 편의성이었죠. 점차 수동이 멸종하고, 자동이 보편화 되는 것을 보면 편리함이야말로 인간의 본성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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