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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립국이 되고자 하는 나라는 많습니다.

지금 당장도 다른 나라가 인정하든 말든 중립국임을 주장하는 나라들도 여럿입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의 미래 모습으로 중립국을 그려보는 사람들도 꽤 있습니다. 하지만 원한다고 중립국이 되지 않습니다. 중립국이 되는 길은 생각보다 훨씬 까다롭고, 어렵습니다.

 

많은 나라들이 중립국이 되려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그 어떤 편도 들지 않음으로써 전쟁으로부터 내 나라의 안전을 보장받자는 것입니다. 하지만 중립국이 되려면 우선 기본 조건을 채워야 합니다. 1907년의 헤이그 제2차 국제평화회의를 비롯해 여러 국제회의에서 논의된 사항입니다.

이에 따르면 중립국이 되기 위해선 첫째,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어 잦은 침략을 겪은 역사가 있다. 둘째, 국민은 물론 지도자까지 확고한 중립국의 의지가 있어야 한다. 셋째, 지역의 세력 균형을 맞출 수 있도록 완충 역할을 할 수 있는 국가여야 한다. 넷째, 주변의 강대국들이 중립국을 침범하지 않는다는 국제 협정을 맺어야 한다. 등입니다.

중립국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스위스를 보면 이 4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스위스는 국경을 맞대고 있는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로부터 오린 기간 침입을 받아왔습니다. 동네북 신세였던 스위스는 16세기 초부터 전 국민이 힘을 합쳐 부단히 중립국을 추진해 왔습니다. 그 결과 강대국 사이에 낀 스위스가 완충 역할을 함으로써 이 지역의 전쟁 위험을 낮추고 있는 점이 인정되었습니다.

 

그래서 19세기 초에 주변국들이 조약을 맺어 중립국임을 인정한 것입니다.

이처럼 스위스는 무려 300년이 걸렸습니다. 이 점만 봐도 중립국이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위 조건에서 보듯이 중립국이 된다는 것은 그 지역에서 가장 약한 나라라는 뜻입니다.

 

과연 협정서 하나만으로 이 약소국의 안전이 보장될까요?

역사를 보면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소위 베네룩스 3국이라 불리는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는 모두 중립국이었습니다. 영국, 프랑스, 독일 사이에 끼어 있는 이 나라들은 스위스 같은 완충지대 역할을 기대 받으며 유럽 다수가 사인한 중립국이 되었습니다. 아마 이 정도의 협정이면 평상시거나 국지전 수준의 전쟁이라면 무난하게 지켜졌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1, 2차 대전처럼 세계급 규모의 전쟁이 벌어지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더구나 히틀러 같은 그 누구도 제어할 수 없는 미치광이가 등장하면 말할 것도 없습니다.

실제로 히틀러는 협정서를 종잇장 취급하고 어린 아이 손목 비틀 듯, 바로 베네룩스 3국을 점령해 버렸습니다. 이러한 뼈아픈 경험 때문에 이들 나라들은 더 이상 중립국을 추진하지 않고 있습니다. 전 유럽이 전쟁터가 되자 북유럽 4개국도 전쟁에 간여하지 않겠다며 급히 중립국을 선포했습니다.

 

모든 전쟁에서 영구적인 중립을 표방하는 스위스의 영세중립국과 달리 이런 일시적인 중립국이 존중받을 리가 없습니다. 더구나 베네룩스 3국과 달리 주변 강대국들의 승인을 받지도 않은 일방적인 중립 선언이라 그 결과는 뻔했습니다. 히틀러는 이들 국가들을 가볍게 무시하고 아주 손쉽게 점령해 버렸습니다. 단지 히틀러에 적극 협력했던 스웨덴만이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스웨덴은 전쟁에 꼭 필요한 물자들인 철강과 구리를 몰래 지원했습니다.

그러면 스위스는 어떻게 살아남았던 걸까요?

스위스의 악전고투를 보면 대규모 전쟁이 벌어졌을 때 실제로 중립국의 지휘를 지키기위해 협정서 말고도 또 무엇이 필요한지 알게 됩니다. 그 첫 번째가 물리력입니다. 스위스의 용병이 얼마나 용맨한지는 이미 알려진 바 있습니다. 스위스는 중립국을 추구하면서도 꾸준히 군사력을 길러왔습니다. 2차 세계 대전이 터지자 스위스는 상비군과 예비군을 합해 43만 명의 병력으로 독일의 침공에 대비했습니다.

 

보통 침략의 시작은 "그 너머 나라를 치러가야 하니 길을 내달라" 는 것입니다.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독일의 나치 역시 프랑스를 치거나 같은 추축국인 이탈리아를 연결하는데 스위스의 길이 필요했습니다. 이 점을 간파한 스위스가 이를 역이용했습니다. 스위스는 산을 관통하는 터널과 계곡을 건너는 교각에 폭탄부터 설치했습니다. 그리고 독일이 한발자국이라도 스위스 영토에 발을 들여 놓을 경우 이 폭탄을 터트리는 것은 물론 모든 병력이 요새화된 알프스 산속에서 게릴라전을 펼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이렇게 되자 히틀러의 참모들이 스위스 침략을 만류하고 나섰습니다. 예상되는 희생에 비해 얻을 게 적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스위스가 터널과 다리를 파괴할 경우 게릴라들이 곳곳에 매복해 있을 알프스 고개를 대군이 넘는 다는 것은 상당한 희생을 각오해야 했습니다.

 

반면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는 이 정도의 엄포를 놓을 군사력이 없었습니다.

산악이 아닌 평야라 침략도 쉬웠습니다. 북유럽 국가들도 별반 다를 것 없었습니다. 어쨌든 이는 스스로를 지킬 군사력이 없는 중립국은 실전에선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말해 줍니다.

 

하지만 이 정도로 충분할까요?

사실 마음만 먹었다면 독일이 별 다른 희생 없이 스위스를 삼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 스위스는 산악국가라 많은 부분에서 자급자족이 안 되는 나라입니다. 특히 식량이나 석탄 같은 에너지는 원래부터 독일과 프랑스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독일이 동맹인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비시 정권의 프랑스와 함께 포위만 하고 가만히 있어도 1년 이상 버티는 건 힘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독일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냥 스위스를 놔두는 게 더 이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건 스위스 프랑 때문입니다. 전쟁을 수행하려면 많은 물자가 필요합니다. 특히 석유, 고무, 철강, 석탄 등은 전쟁의 필수품입니다. 이를 전쟁과 동떨어진 제3국에서 모두 수입해 와야 하는데 문제는 아무도 독일의 마르크를 받지 않으려한다는 점입니다. 패전국이 될 경우 그 돈이 휴지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독일은 유럽 점령지와 유태인에게서 빼앗은 금을 스위스에 팔고, 그 대신 받은 스위스 프랑으로 물건 값을 지불했습니다.

 

만약 스위스가 없었다면 독일은 당장 전쟁 물자를 조달하는데 아주 큰 어려움을 겪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스위스는 히틀러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밝혀진 바이지만 스위스는 히틀러에게 대공포 등 각종 무기를 공급했고, 스위스 은행에 거금을 맡긴 유태인이 망명해오자 이들을 체포해 다시 독일로 넘겨주는 비정한 짓을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또 퇴각하기 위해 스위스 영토로 들어온 프랑스 부대를 억류하는가 하면 스위스 영공으로 들어온 영국과 미군기를 격추시키기도 했습니다. 격분한 연합군은 댈리기 위해 때론 독일기도 격추시켰으니 스위스는 양측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느라 늘 살얼음판을 걸어야 했습니다. 스위스는 중립국의 모범사례로 불리는 나라입니다. 과정이야 어찌됐든 스위스는 두 차례의 엄청난 전쟁 속에서 중립국을 지켜낸 유일무이한 성공사례입니다.

 

암튼 위에서 보는 것처럼 중립국이 되는 것도, 중립국의 지위를 유지하는 것도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다시 정리하면 중립국이 되기 위해선 국민과 지도자간에 일치된 의지를 가져야하고, 주변국을 포함한 다수국의 동의를 얻어야 하며, 스스로 지킬 군사력도 있어야 하고, 이에 더해 주변국들에게 아주 매력적인 이득도 있어야 합니다.

이런 조건을 모두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나라가 과연 몇이나 될까요?

러시아와 중국사이에 낀 몽골처럼 지금 현재 자칭 중립국이라 부르는 나라는 여럿 있습니다. 하지만 국제적인 협정으로 중립국임을 인정받고 있는 나라는 스위스를 포함해 6개국입니다.

 

오스트리아는 2차 대전후 분할통치 국가들인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이 철수하는 과정에서 중립국이 되었지만 오랜 역사적 갈등 때문에 주변국의 감정이 좋지 않습니다. 바티칸의 협정대상국은 이탈리아뿐이지만 많은 나라들이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중립국입니다. 하지만 다른 종교를 빋는 국가들이 이를 인정할지는 알 수 없습니다.

 

태국, 프랑스, 베트남 등 끊임없이 외세에 시달렸던 라오스는 1962년 14개국이 사인한 중립국이지만 공산화를 염려한 미국의 반대와 내홍으로 사실상 중립국을 포기했습니다. 중앙아시아의 투르크메니스탄은 1991년 구소련으로부터 독립한지 얼마 후 유엔이 승인한 유일한 영세중립국이 되었습니다. 중남미의 코스타리카는 특이하게도 평화를위해 군대를 해산한 비무장 중립국입니다. 이랬든 저랬든, 이 나라들이 정말 중립국으로서 안전을 부장받을 수 있는지 여부는 셰계 대전급의 전쟁이 터지고 나서야 확인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우리도 중립국이 될 뻔하였습니다. 1953년 휴전 협정 당시,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닉슨 부통령, 델레스 국무장관 등이 한반도의 중립화 방안을 만들어 UN 총회의 승인을 얻으려 했습니다. 소련을 포함한 각국에 이 방안을 이미 회람시켰기 때문에 미합참과 이승만 정권의 반대가 아니었으면 성사되었을 가능성이 꽤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 후로도 미국에선 정계와 학계에서 꾸준히 4대 강국의 한반도 중립화 보장을 주장해왔습니다.

한반도가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이 만나는 지점이고, 이들 사이에서 완충지대 역할을 충분히 해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최근엔 북한의 비핵화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으로 국내의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 한반도 중립화가 연구되고 있습니다. 중립국을 장기적인 목표로 비핵화는 물론 군비축소에 먼저 나서자는 것입니다.

 

북한의 김일성도 1987년 군비 축소를 골자로 하는 한번도의 중립화 방안을 당시 레이건 미국 대통령에게 전한 바 있어 남북의 합의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글쎄요. 개인적으론 한반도의 중립화론에 회의적이긴 합니다. 하지만 한반도의 영구 평화를 모색할 수 있는 길이라면 공론화를 마다할 이유는 없을 것 같습니다. 집단 지성의 힘이 지금까지의 상식을 완전히 뒤집는, 그 어떤 신박한 아이디어를 도출해 낼 수 있을지 알 수 없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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