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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식민지들이 영국 연방에 모두 가입하려는 이유는?!
영국이 등장하는 모든 컨텐츠에 반드시 따라붙는 댓글이 있습니다. “모든 세계사의 문제 뒤엔 영국이 있다”거나 심지어 ‘영국은 만악의 근원’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영국은 우리나라에서 혐오국 취급을 받지만 정작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던 나라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나라들은 영국을 중심으로 한 영연방을 만들어 뭉치고 있습니다. 얼핏 이는 일본이 과거 식민지들을 모아 연방을 만든 것과 같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라면 이런 연방에 가입할까요?
국민 감정상 절대 그러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영연방은 어떤 매력이 있길래, 혹은 어떤 이득이 있길래 식민지들이 너도나도 자발적으로 가입하는 걸까요? 19세기 초 빅토리아 여왕 시절부터 본격 건설된 대영제국은 인류 역사상 최대 영토의 국가였습니다. 세계 육지의 4분의 1과 세계 인구의 5분의 1이 영국 것이었습니다.
진실로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유일한 제국이었죠. 이렇듯 역사와의 접촉면이 워낙 넓다보니 온갖 것이 영국과 관련되어 있죠. 실제로 이 광활한 영토를 지배하면서 영국은 정말 나쁜 짓도 많이 했습니다.
중국에서 무역 적자를 메운다고 아편전쟁을 일으켰고, 아일랜드에선 착취로 2백만 명 이상을 굶어 죽게 했습니다. 남아공에선 네덜란드계 백인인 보어인을 수만 명 학살했고, 중동에선 수십만 명의 쿠르트족을, 인도 벵골에선 대기근을 일으켜 3백만 이상을 아사케 했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측면도 있죠. 무엇보다 영국은 산업혁명과 의회민주주의를 만들고 전파해 현시대의 양대 지배 이념인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세계에 전수했죠. 그 외에도 경제, 문화, 철학, 과학, 군사, 정치, 언어 등, 세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은 분야가 없습니다.
하다못해 세계 최고의 인기 스포츠인 축구도 영국이 보급했죠. 다지고 보면 이 시대에 우리가 누리고 있는 수많은 문물의 원조가 영국입니다. 그래서 현대인이라면 누구라도 영국에 빚지지 않은 사람은 없다는 말도 나오는 거죠.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영국이 세계를 주도하던 시절은 분명 끝났습니다. 대영제국에서 독립한 나라만 해도 53개국에서 60개국 정도나 되죠. 독립 후 합쳐지기도 하고, 분열하기도 해서 숫자를 정확히 할 순 없지만, 이것만 봐도 대영제국의 위용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때부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독립한 나라들이 자발적으로 다시 영연방으로 모여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1931년 영국, 아일랜드, 캐나다, 남아공, 뉴펀들랜드(추후 캐나다로 통합)등의 5개국으로 조촐하게 시작하더니 지금 영연방은 무려 56개국이나 됩니다. 영국의 식민지 중에선 미국과 이슬람을 믿는 중동 국가들을 제외하곤 거의 전부인 셈입니다.
이 중엔 희안하게도 영국의 식민지가 아니었던 나라들도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나미비아는 독일 식민지였고, 르완다는 벨기에, 모잠비크는 포트투갈, 가봉과 토고는 프랑스 식민지였습니다. 그럼에도 영연방에 가입한 것이죠. 지금 영연방의 전체 규모는 인구가 거의 25억 명으로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1을, 토지는 4분의 1을, 경제 규모는 전세계 GDP의 1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대영제국 시절보다 오히려 더 커졌죠.
이는 영국의 식민지배에 큰 반감이 없거나, 반감이 있더라도 상쇄할만한 큰 이득이 있다는 뜻일 겁니다. 식민지라면 대개 지배국과 피지배국 사이에 차별과 수탈이 벌어지고, 문화와 역사는 물론 언어 말살까지 이루어지면서 원한이 깊어지게 되죠. 무엇보다 독립 과정에서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 양국 사이가 돌이킬 수 없는 원수지간이 되는 게 보통입니다.
영국이 프랑스나 스페인, 포르투갈 등의 서구 열강과 다른 지점이 있다면 바로 이부분 입니다. 영국이 인도처럼 직접 지배한 식민지도 있지만, 대개는 현지인을 전면에 내세우는 간접 통치 방식을 택했습니다. 관리의 대부분을 토호 세력에 맡기고 자치권을 부여했죠.
물론 영국은 배후조종을 맡았고요. 이 방식으로 영국과 식민지인들의 접촉면을 최소화시켰습니다. 그만큼 반감도 줄일 수 있었죠. 물론 미얀마의 로힝야처럼 소수 부족을 지배세력으로 키워 두고두고 분열에 시달리도록 하는 악질적인 통치 수법을 쓰기도 했지만 말입니다.
식민지가 독립하는 과정도 다른 서구 열강과 좀 달랐습니다. 미국과의 독립전쟁에서 뜨거운 맛을 본 영국은 이후 식민지들이 독립을 원하면 전쟁을 피하고, 타협을 통해 적당히 이익을 챙기는 선에서 물러났습니다. 이 덕에 식민지들의 희생이 줄어 상대적으로 원한을 덜 살 수 있었죠.
반면 다른 서구 열강들은 본국에서 파견된 많은 인원을 통해 대부분 직접 지배에 나섰습니다. 영토적 야욕은 물론 단시일 내에 최대한 많은 것을 수탈하기 위해서죠. 그러니 식민지가 독립을 원해도 순순히 물러나는 법이 없었죠.
식민지의 독립을 막기 위해 매번 격렬한 전쟁을 치르는 바람에 지금도 그 앙금이 상당합니다. 영국과 다른 열강과의 식민 지배 방식이 다른 건 식민지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달랐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차이는 프랑스와 스페인이 식민지를 영토로 본 반면, 영국은 시장으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영국은 무엇보다 산업혁명의 성공으로 물건을 내다 팔 시장이 필요했습니다. 상업 활동만 보장된다면 지배 형태는 뭐가 되든 상관없었죠. 영국의 지배를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토착 세력의 권력을 인정해주는 선에서 마무리 짓고, 재빨리 다른 땅으로 옮겨 시장을 넓히는 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식민지를 관리할 인력 부족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습니다. 19세기 영국 인구는 약 2,000만 명 정도였습니다. 이 인구로 그 넓은 땅을 직접 지배하려야 할 수도 없었죠. 어쨌든 이 덕에 영국은 영토 정복이 우선인 기존 제국들과는 성격이 다른, 해상 무역을 통한 상업 제국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과거 식민지들이 영연방으로 다시 모인다는 건 영국이 문화적인 지배에 성공했다는 걸 뜻하기도 합니다. 영국은 식민지마다 영국의 제도와 문화를 이식했습니다. 영국은 식민지에 비해 압도적인 군사력과 경제력, 의회민주주의라는 첨단의 정치제도를 가진 나라였습니다.
영국이 가져온 민주주의라는 정치 체제는 각 식민지 국민에게 꽤 매력적이었습니다. 엘리트들 역시 영국이 지원한 런던 유학을 마치면 자신의 나라에서 고위직에 앉을 수 있으니, 대영제국에 감사하는 사람들이 많았죠. 이렇듯 영국이 식민지를 정신과 문화적으로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식민지인들 스스로가 영국의 우월성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국이 롤모델이었던 일본은 이를 고스란히 조선에 적용했지만 실패했죠.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조선이 오히려 일본을 낮게 보았기 때문에 통하지 않았던 거죠. 하지만 아무리 이렇더라도 현실적인 이득이 없다면 독립하자마자 바로 식민지가 영연방으로 돌아오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우선 식민지들이 영연방에 가입하면 영국이나 캐나다, 호주 같은 선진국들로부터 경제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양한 기술협력기금 등이 마련되어 있어서 연방 내의 가난 퇴치를 돕죠. 게다가 가입 즉시 무려 25억 명의 무역 시장이 열립니다. 연방 내 무역은 각종 관세 혜택 등으로 약 20%의 비용을 절감할 수도 있고요.
경제적인 혜택뿐이 아닙니다. 영연방은 안보에서도 큰 역할을 합니다. 영연방은 물론 방위조약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회원국 간엔 위기 상황에서 서로를 돕는다는 암묵적인 합의가 있죠. 그래서 인구 1만 2,000명의 투발루 같은 나라도 안심할 수 있는 겁니다.
매년 800명을 뽑아 아직도 런던 유학을 시켜주니 가난한 나라들에선 이것도 만만치 않은 혜택입니다. 영국으로의 이민도 상대적으로 쉬워진다는 매력도 있고요. 모든 나라에 대사관을 둘 수 없는 작은 나라들에선 세계 어디서든 영국대사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큰 이점입니다.
인도 같은 큰 나라들에선 UN에서 국제적인 지지를 얻는 데, 영연방이 큰 도움이 됩니다. 상임이사국 진출이나 주변국과의 갈등에서 56개국의 지지를 늘 확보하고 있는 셈이니 큰 힘이 되죠. 영연방에 대한 평가는 엇갈립니다. 일부에선 영국이 브렉시트한 이유가 영연방이라는 뒷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경제 규모면에서 EU와 영연방은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대체적으로 영연방이 영국에 가져다주는 이익은 매우 적다는 게 주된 평가입니다. 식민지였다는 걸 빼면 공동의 정체성도 없다는 지적이 영국 언론에서 자주 제기되죠. 영국 역시 그간 꾸준히 연방에 주는 혜택을 줄여온 것도 사실입니다. 더구나 지금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서거하면 연방도 해체될 것이란 전망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이 영연방을 고수하는 것은 대영제국에 대한 일종의 향수라는 비판도 있습니다. 어쩌면 영연방은 대영제국의 긴 황혼녘 같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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