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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율 전 세계 꼴찌, 이상한 대장을 뽑은 한국의 미래는 역사 속에 있었다!!
혹시 ‘생리 경찰’이라고 아시나요? 이름 그대로 여성의 생리를 감시하고 관리하는 경찰입니다. 이들의 주업무는 이를 통해 여성의 임신을 강제하는 것입니다. 생리 경찰은 여성이 배란기임에도 남편과 성관계를 갖지 않으면 무거운 벌금을 매기는 권한도 갖고 있습니다.
부부 사이가 좋든지 말든지, 심지어는 별거 중이든 아니든 상관없습니다. 3류 공상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말도 안되는 설정이라고 하실지 모릅니다. 이게 실제라면 우릴 포함해 웬만한 곳에선 나라가 뒤집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이 말도 안 되는 일이 1960~70년대 루마니아에서 진짜로 있었습니다. 역대 최악의 출산장려정책으로 꼽히는 소위 ‘차우셰스쿠의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루마니아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라는 독재자가 있었습니다. 1965년 공산당 당서기에 오른 차유셰스쿠는 루마니아를 강국으로 만들겠다며 두 가지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하나는 농업국가인 루마니아를 중공업국가로 전환한다는 것입니다. 급속한 공업화로 소련을 미국과 양강의 위치에 올려놓은 스탈린의 정책이 부러웠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구호만으로 공업화가 이루어지는 나라는 없습니다. 루마니아는 오랜 농업 국가였을 뿐, 공업화를 위한 아무런 준비도 되어있지 않은 나라였습니다. 루마니아 경제가 파멸로 간 것은 당연했습니다.
또 하나가 그 악명 높았던 출산장려정책입니다. 당시 루마니아의 인구는 2천3백만명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인구가 점점 더 줄어드는 추세였습니다. 먹고 살기가 어려워지자 한때 루마니아의 낙태율은 거의 80%에 이르렀습니다. 정말 믿기 힘든 수치였습니다. 그 이유가 어쨌든 차우셰스쿠는 “인구가 곧 국력”이라고 생각하는 자였습니다.
문제는 보통의 독재자들이 그렇듯 아무 실행 계획도 없이 저질러 놓고 본다는 것입니다. 차우셰스쿠는 인구 3천만 명을 목표로 우선 피임과 낙태를 금지시켰습니다. 콘돔과 같은 피임 기구를 쓰면 반역죄로 잡아갔습니다. 낙태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낙태한 여성은 국가 시책을 따르지 않는 반역자였고, 낙태한 병원은 바로 폐원이었습니다.
만약 낙태 후유증으로 병원에 왔을 경우 시술해준 의사를 불지 않으면 그냥 죽게 내버려 두었습니다. 임신한 아이가 기형아이든, 강간으로 인한 원하지 않는 임신이든 그런 건 상관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한 술 더 떠 차우셰스쿠는 아예 피임약을 생산하지 못하도록 자국의 회사를 문 닫아 버렸습니다. 피임약 수입도 물론 금지했습니다.
그리고 시중에 나와 있는 피임방법을 다룬 책과 문서를 모조리 거두어들여 국가 기밀로 분류했습니다. 따라서 피임 방법을 알아보는 것도 반역죄였습니다. 이렇게 되자 낙태 시술 비용은 천정부지로 치솟아 3~4개월 치 월급에 해당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루마니아의 임산부들은 국경을 넘어 헝가리로 갔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 차우셰스쿠는 국경을 봉쇄했습니다. 허락 없이 국경을 넘나드는 자에겐 이유 불문 사격을 가했습니다. 그래서 루마니아에선 소위 야매들의 불임시술과 낙태가 성행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루마니아의 산모 사망률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습니다. 1989년에는 한해에만 1만 명 이상이 낙태 과정에서 숨졌습니다. 이렇듯 높은 낙태율로 인구가 기대만큼 늘지 않자 차우셰스쿠는 더 극단적인 정책을 꺼내 들었습니다.
여성의 나이가 45세가 될 때까지 4명 이상의 출산을 의무화한 것입니다. 선천적인 불임이나 장애도 예외는 없었습니다. 이들이 어쩌라는 건지 입양으로 4명을 채우는 것도 불법이었습니다. 게다가 인구 증가에 방해가 된다면 이혼까지 금기시켰습니다. 학교에서 성교육을 금하는 대신 중학생 정도만 되어도 임신을 권유 받았습니다.
차우셰스쿠는 이를 강제하기 위해 듣고 보도 못한 ‘생리 경찰’을 만들었습니다. 이들은 각 사업장을 돌며 여성들의 피임과 임신, 낙태 여부를 검사했습니다. 임신한 여성은 국가의 특별한 관리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한 두 달에 한 번씩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아야 했는데 낙태를 막기 위한 감시가 주목적이었습니다.
의사와 의료 시설의 부족으로 루마니아 여성들은 4명이 한 조로 완전히 발가벗고 남자 의사들의 진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이런 인권 침해 쯤은 눈 한 번 꿈쩍 않는 차우셰스쿠 정권이었습니다. 일정 시간이 지나도 아기가 없는 부부는 생리 경찰의 집중적인 조사를 받아야 했습니다.
이들은 피임 유무는 물론 주 단위로 몇 회의 부부관계를 갖는 지까지 답해야 했습니다. 국가가 국민의 성생활까지 관여한 것입니다. 임신을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다고 판단되면 생리 경찰은 ‘금욕세’라는 황당한 세금을 매겼습니다. 무려 연 소득의 30%나 되는 엄청난 액수였습니다.
이 덕에 시행 첫해엔 반짝 신생아 수가 27만 명에서 53만 명으로 거의 두 배 가까이 올랐습니다. 하지만 이 억지 출산은 루마니아를 곧 지옥으로 만들었습니다. 무리한 공업화로 루마니아의 경제는 곤두박질치기 시작했습니다. 이로 인해 국가 채무가 계속 치솟자 차우셰스쿠는 모든 물자의 수입을 금지하고, 루마니아에서 생산되는 모든 농산물을 수출하도록 명령했습니다.
수입을 안하고 수출만 하면 곧 나라가 부강해진다는 정말 신박한 논리였습니다. 그러자 동유럽 최대의 농업국가에서 굶어죽는 사람이 속출했습니다. 동유럽 최대의 산유국에서 전기공급이 끊어지기도 했습니다. 도저히 아이를 키울 수 없게 된 루마니아인들은 아기를 낳자마자 내다 버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숫자가 너무 많아 처벌하는 것 조차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차우셰스쿠는 출산을 계속 독려했습니다. 고아원을 세워 국가에서 아이를 키우면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말뿐이었습니다. 고아원은 태부족이어서 아이들을 마치 짐처럼 몇 겹으로 포개 키워야 했습니다. 밑에 깔린 아이들은 압사하기도 했습니다.
아기들을 돌볼 인력도 태부족이어서 젖병을 침대가에 매달아 놓고 알아서 빨아 먹게 해야 했습니다. 이 바람에 신생아의 사망이 급증해 거의 절반이 1년 내에 죽었습니다. 아이들을 건강하게 한다며 잘못 수혈하는 바람에 수백 명의 아이들이 에이즈로 죽기도 했습니다.
요행히 살아남은 아이들은 거리의 부랑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러시아를 포함한 동구의 마피아들이 아이들을 아동 포르노에 팔아넘기거나 장기를 떼어 팔았습니다. 하지만 차우셰스쿠는 이 모든 걸 무시하고 오히려 아이들을 세뇌시켜 자신에 대한 우상화에 나섰습니다. 차우셰스쿠는 1971년 북한을 방문한 바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김일성과 의형제를 맺을 정도로 차우셰스쿠는 북한체제에 깊은 감명을 받았던 모양입니다.
그는 마치 북한처럼 소년소녀 선동대를 만들고, 자신을 찬양하는 대규모 매스게임을 즐겼습니다. 서구에선 이들을 ‘차우셰스쿠의 아이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차우셰스쿠는 건강한 10대들을 뽑아 군사학교에 보낸 다음 세큐리타트라는 비밀경찰을 만들었습니다. 이 숫자가 많을 땐 10만 명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특별대우를 받은 극히 일부의 세큐리타트를 제외한 대부분의 ‘차우셰스쿠의 아이들’은 빈곤과 질병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차우셰스쿠는 자신의 철권통치를 유지하기 위해 부인과 자식, 일가친척 등 40여 명에게 군 경찰 정보 기관 방송국 등 국가의 모든 요직을 맡겼습니다.
이도 불안했던지 전국의 사업장, 식당, 가정에 무려 3백만 개의 도청기를 설치하고 세큐리타트가 운영하는 1천 개의 도청 센터에서 국민을 감시하게 했습니다. 24년간 루마니아인들을 지옥에 빠뜨렸던 차우셰스쿠의 최후는 허무할 정도로 갑작스럽게 왔습니다. 1989년 12월 17일, 루마니아 서부에 있는 도시 티미쇼아라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군의 발포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이란을 방문중이던 차우셰스쿠가 급히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자신이 직접 연설을 하면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12월 20일, 수도인 부쿠레슈티의 인민궁전 앞에 10만 군중이 모였습니다. 늘 해오던 관제 집회였습니다.
차우셰스쿠가 발코니에 나타나 연설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오전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각 사업장에서 열렬 지지자들을 선발해 보낼 예정이었는데 갑자기 취소가 되었다는 통보가 왔습니다. 뒤늦게 집회 재개를 알려 왔지만 열렬 지지자들은 퇴근한 뒤였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인원 동원을 맡은 각 사업장에선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그야말로 아무나 보냈습니다.
차우셰스쿠가 연설하는 도중에 젊은 군중들이 얼마 전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던 도시인 “티미쇼아라! 티미쇼아라!”를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차우셰스쿠가 당황해 “조용하라”고 맞받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 장면이 전국에 생중계된 화면에 고스란히 잡혔습니다. 그리고 차우셰스쿠의 부인이 “저것들을 다 쏴버리라!”고 말하는 다급한 소리도 마이크로 흘러나왔습니다.
이에 흥분한 관제 군중이 진짜 시위대로 돌변했습니다. 그래서 차우셰스크 부부는 인민궁전에 갇힌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다음 날인 12월 21일, 차우셰스쿠는 즉시 군에 발포를 명령했습니다. 하지만 평소 비밀경찰인 세큐리타트에 비해 푸대접을 받던 군이 이를 거부했습니다. 일부 군인들은 시위대에 가담까지 했습니다.
다급해진 차우셰스쿠는 인민궁전을 탈출하기로 하고 헬기를 부르지만 4인승 딱 한 대만 오고, 나머지는 중간에 돌아가 버렸습니다. TV로 전국에 생중계되는 가운데 차우셰스쿠는 할 수 없이 부인과 경호원 딱 2명만을 태우고 도망쳤습니다. 차우셰스쿠를 태운 헬기 조종사는 이륙 후 “혁명이 일어났으니 귀관이 알아서 하라”는 무전을 받았습니다. 이에 대공사격을 받고 있다고 속이고 차우셰스쿠를 한 농가에 내려준 다음 그냥 떠나버렸습니다. 얻어 탄 자동차의 주인도 고장났다고 속이고 그를 중간에 내리게 했습니다. 차우셰스쿠와 경호원은 한 농업박물관 건물로 피신해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이곳의 연구원들이 이들을 방에 가두고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그리고 농가 인근의 한 학교에서 약식 재판을 거쳐 세큐리타트가 구하러 오기 전에 서둘러 총살형에 처해 버렸습니다. 무려 90발이 발사된 이 처형 장면은 곧바로 루마니아 전역은 물론 전세계의 TV로 방영되었습니다.
이게 1989년 12월 25일입니다. 루마니아인들에게 생각지도 못한 크리스마스 선물이 온 것입니다. 공교롭게도 “티미쇼아라!”라고 맨 처음 외쳐 혁명의 도화선이 된 사람들은 “차우셰스쿠의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밤새 인민궁전을 포위한 사람들도 10~20대의 분노한 “차우셰스쿠의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총살형에 자원한 3명의 젊은 군인들도 “차우셰스쿠의 아이들”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24년 간 6만4천 명의 국민을 죽게 한 차우셰스쿠의 독재는 끝났습니다. 하지만 “차우셰스쿠의 아이들”의 삶은 계속 되었습니다. 차우셰스쿠가 죽은 후 루마니아는 그간의 쇄국정책을 풀고 서방에 국가를 개방했습니다. 초대된 서방의 언론인들이 한 고아원을 방문했습니다. 고아원에 수용된 “차우셰스쿠의 아이들”이 무려 17만 명이나 되었습니다. 고아원은 소변냄새로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무거운 침묵만이 흘렀습니다. 아이들은 아무도 울지 않았습니다. 자기들 방에 들어온 이방인들과 눈을 마주치는 아이들조차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한 침대에 2~3명씩 누워 아무 표정의 변화도 없이 그저 멍하니 천장만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마지막 “차우셰스쿠의 아이들”은 얼마 후 서방으로 입양되어 나갔습니다.
어느 덧 성년이 된 초기의 “차우셰스쿠의 아이들”은 대부분 실업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고, 가정과 국가에서 버림받은 세대라 폭력적이었고, 범죄율도 높았습니다. 한 단순무식한 독재자가 만든 “차우셰스쿠의 아이들”은 역대 최악의 출산장려정책을 넘어 인류에 대한 범죄였습니다.
여전히 이 후유증을 겪고 있는 루마니아는 아직 동유럽의 빈국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차우셰스쿠를 24년간이나 독재하게 허용한 대가를 치루고 있는 중입니다. 마지막으로 차우셰스쿠가 죽은 지 30년 이상이 지난 2021년 기준, 루마니아의 인구는 1,913만 명입니다.
- 유튜브 "지식 브런치" 채널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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