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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교회는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친교 모임이었습니다. 그 후 교회는 그리스로 가서 철학이 되었고, 로마로 가서는 제도가 되었습니다. 그 다음은 유럽으로 가선 문화가 되었습니다. 마침내 미국으로 왔을 때, 교회는 기업이 되었습니다."
미국 상원의 채플목사를 지낸 리처드 핼버슨이 1984년 미국장로교총회에서 행한 아주 유명한 설교입니다. 미국 교회의 현실을 통렬하게 비판한 이 연설은 많은 사회적 반향을 얻은 바 있습니다.
그런데 기업이 된 미국의 교회가 한국에 와선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에 대해선 한국교회의 민낯을 드러낸 영화라는 평을 받았던 김재환 감독의 2014년 작 '쿼바디스'에서 이렇게 답을 했습니다. "기업이 된 미국의 교회는 한국에 와선 대기업이 되었다."
한국의 교회가 미국과 다른 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일부 초대형 교회의 담임목사가 신도들과 함께 키워온 교회를 사유화한 다음 자식들에게 세습한다는 점입니다. 대다수의 뜻 있는 기독교인들은 교회의 세습이 곧 한국 기독교의 위기라고 보고 있습니다.
교회의 세습은 중세의 유럽에서도 큰 골칫거리였습니다. 4세기에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교회는 유럽 전역으로 급팽창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5세기 로마가 멸망하고 유럽에 힘의 공백이 생기자 점차 기독교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교회는 급격히 부유해졌습니다. 불과 한 세기전만해도 탄압의 대상이었던 교회는 돈과 명예와 권력을 모두 갖게 되면서 바로 타락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 가장 심각한 게 바로 성직과 교회의 세습이었습니다.
로마교황청에서도 이를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였습니다. 정직과 교회의 세습이 부패의 온상이라는 건 누가 봐도 명확했습니다. 기독교가 세계로 뻗어나가는 바로 그 시적에서, 이런 도덕적인 결함은 본격적인 교세 확장에 치명타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교회의 사유화가 진행될수록 교황청의 수입이 줄어든다는 현실적인 경계심도 분명 한몫했을 것입니다. 이런 영향으로 5세기부턴 독신제가 강조되기 시작했습니다. 6세기 들어선 결혼한 성직자가 자녀들에게 교회 재산을 상속하지 못하도록 교회법도 만들었습니다.
물론 초기교회부터 사제들의 결혼과 자녀 출산은 가급적 자제하자는 분위기였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헌신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5세기 이후부터는 부패 방지 차원에서 이런 권유가 교황청 차원에서 내려졌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 시기만 해도 로마 교황을 중심으로 한 피라미드식 교회 조직이 완벽할 때가 아니었습니다. 아니, 그보단 교회의 팽창 속도를 교회 조직이 따라가지 못했다는 게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교회의 이러한 권유와 법 제정은 말단의 교회까지 미치지 못하면서 유명무실해졌습니다. 이미 결혼을 한 사제가 너무 많아 제대로 된 법 적용을 기대하기도 사실상 힘들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교회는 더욱 더 부자가 되어 갔습니다. 중세 봉건사회가 되면서 와과 영주들이 잇따라 교회에 막대한 토지를 증여했습니다. 그러면서 교회는 중세 시대에 가장 많은 땅을 소유한 지주가 되었습니다. 가진 게 많아질수록 교회의 사유화와 세습도 기승을 부렸습니다.
특히 8세기, 프랑스 왕국의 샤를마뉴 대제에 의해 교인들의 십일조 납부가 의무화되자 교회는 정말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었습니다. 이에 잇따라 영주들이 자기 땅에 개인교회를 세웠고, 덩달아 성직자들도 자기 교회를 세웠습니다. 이 교회들은 바티칸과 상관없이 십일조가 모두 개인 수입이 되었기 때문에 성직자들에겐 화수분과 다름없었습니다. 일부 부패 성직자들은 이런 교회를 전국에 여러 개 세워 관리하였고, 뇌물로 산 성직과 함께 이 교회들을 자식들에게 유산으로 남겨 주었습니다.
교회의 타락은 끝도 없었습니다.
사유화와 세습으로 막대한 부를 쌓은 일부 성직자들은 결혼을 넘어 첩을 두기까지 했습니다. 종교개혁 무렵에는 성직자의 30%가 첩을 두었을 정도입니다. 여기서 생긴 자녀들에게도 상속을 해주어야 하니 교회는 세습을 비롯한 부정부패가 더 극성을 부렸던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의 타락이 극에 달하자 11세기에는 로마 교황들이 대책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레오 9세(Leone IX)는 성직자의 독신제 강화와 성직매매를 금했고, 그레고리 7세(Gregorio VII)는 성직자들의 결혼과 축첩을 못하도록 했으며, 우르바노 2세(Urbano II)는 "여자와 성직 중 하나만을 선택하라" 고 압박했습니다.
왜 이런 비슷비슷한 대책들이 반복됐을까요?
그건 교황들이 내놓은 여러 대책이 아무 실효성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이 방안들은 사실상 강제성이 없어서 편법으로 빠져 나갈 틈이 많았고, 아니면 뇌물로 간단히 벗어났습니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법은 오래전부터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그건 교회와 성직, 그리고 그에 딸린 모든 재산을 물려받을 자식을 두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결혼은 물론 모든 여성과의 성관계를 아예 금지시키면 되었습니다.
당시 많은 성직자들이 부인은 물론 첩까지 두고 있었던 터라 정말 극단적인 실행방안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간 교황청에서 만든 금지 방안들은 극심한 반발을 감안해 여러 예외 규정을 두었고, 이 바람에 결과적으로 유명무실해진 것입니다.
그런데 12세기에 중세 기독교는 정말 이 어려운 일을 해냈습니다.
1123년 로마의 라테라노 대성당에서 공의회를 열어 우선 전면적인 사제 독신제를 도입하기로 합의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139년의 2차 라테라노 공의회에서 예외 없는 독신제를 교회법으로 확실하게 못을 박아 버렸습니다. 이제 사제들의 결혼은 불법이 되었고, 처벌까지 받게 된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이 모든 것이 곧바로 완벽하게 지켜진 것은 아닙니다. 13세기에 여러 수녀들을 첩으로 두었던 벨기에 리에주 주교의 예에서 보듯이 이 교회법이 유럽 전역에 정착되는 데는 수백 년이 걸렸습니다.
이게 금방 다 지켜졌다면 16세기의 종교개혁이 일어나지도 않았을 테지요. 하지만 2차 라테라노 공의 회 이후 교회의 세습만큼은 확연하게 줄어들었습니다. 그리고 1천여 년이 지난 지금, 가톨릭교회에서 자식에 대한 세습 문제는 더 이상 없습니다. 이 덕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님 이 탓이라고 해야 할까요? 지금의 가톨릭 신부들은 과거 선배 사제들이 저지른 부도덕 때문에 여전히 결혼을 할 수 없지요. 1천 년의 세월 동안 '성행위 금지' 라는 고행을 강요받고, 그걸 힘겹게 감수하고 있는 중입니다.
한 번 더 정리하자면 탄압받던 교회가 갑자기 명예는 물론 돈과 권력까지 한 손에 쥐게 되면서 타락과 부패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자식에 대한 교회와 성직의 세습이 있었습니다. 중세교회는 이 고리를 끊기 위해 결혼 금지, 즉 성행위 금지라는 초강수를 두었고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중세 교회의 세습을 보노라면 지금 한국 교회의 세습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배경은 조금 다르더라도 성직자들의 탐욕이라는 본질에선 같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과연 한국 교회가 자신들이 멸시했던 중세 교회 정도라도 개혁하려 노력했는지 스스로 되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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