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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캐릭터 중 하나가 샤일록입니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 상인' 에 나오는 악덕 고리대금업자이지요. 살 1파운드를 담보로 돈을 빌려준 샤일록의 무자비함은 당시의 유대인이 얼마나 많이 고리대음업을 했는지, 그리고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미움을 받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현대에도 세계의 금융계는 유대인이 꽉 잡고 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셰계의 경제대통령이라 불리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의장도 미국 재무장관도 거의 대부분 유대인입니다. 여기에 로스차일드와 골드만삭스가 유대계고 '20세기 금융의 연금술사' 라 불리는 조지 소로스도 유대인입니다.
이렇듯 예로부터 지금까지 돈이 있는 곳엔 유대인이 있었습니다.
오랜 기간 유럽 전역에서 받아온 혹독한 박해를 생각할 때 이런 일관성은 참 놀랍기만 합니다. 어떻게 이게 가능했을까요? 그건 이미 앞에 답이 나와있습니다. 바로 백해입니다.
유대인들은 금융업만 해야 한다는 박해를 받아왔기 때문입니다.
이게 특혜가 아니고 어떻게 박해냐고 의아해 하실 수 있습니다. 만약 오늘날 특정인에게만 은행을 할 수 있게 한다면 난리가 날 것입니다. 하지만 유대인에 대한 차별과 탄압이 본겨화된 중세에는 지금과 모든 것이 달랐습니다. 즉, 당시 고리대금업은 저주 받은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고리대금업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높은 이자를 받는 것이니 금융업과 다르다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옛날엔 이 둘의 구분이 없었습니다.
고리대금을 뜻하는 영어 단어인 usury는 usura라는 라틴어에서 나왔습니다.
"준 것보다 더 많이 되돌려 받는다." 는 뜻입니다. 즉, 공짜가 아니라면 얼마의 이자라도 모두 usury, 고리대금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유럽에선 아주 오래전부터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것은 인간이 저질러선 안 되는 추악한 행위로 여겼습니다.
유럽 지배층의 사고를 지배해 온 BC 4세기의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소와 돈을 비교해가며 이를 설명했습니다. 즉, "소는 젖을 짜낼 수 있기 때문에 빌려주고 그 대가를 받을 수 있지만, 돈은 그 자체로 아무 것도 생산해 내지 못하기 때문에 이자를 받으면 안 된다" 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그대로 받아 들였습니다. "창조는 하느님만이 해야 할 일인데 대금업은 돈으로 돈을 만드는 것이니 신성모독" 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풍조가 가장 강했던 11~12세기에 고리대금업자들은 포도주와 빵을 통해 예수와 한 몸이 되는 교회의 영성체에 참석할 수 없었습니다. 더 무서운 것은 죽어서 교회의 묘지에 묻힐 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그건 천국에 갈 수 없다는 뜻입니다. 모든 것이 교회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에선 정말 절망적인 처벌입니다. 그래서 많은 고리대금업자들은 이런 처벌을 피하기 위해 죽기 전 이자를 받은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돈을 돌려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유대인들은 어떻게 고리대금업이 가능했을까요?
그건 이들이 기독교인이 아니라 유대교인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교회가 엄격하더라도 대금업은 실생활에서 꼭 필요한 업종이었습니다. 일반인들뿐 아니라 왕이나 귀족들도 잦은 전쟁과 사치스런 생활을 위해 급전이 필요했습니다. 심지어 교회도 건물 증축을 위해 때론 돈을 빌려야 했습니다. 중세 중반으로 갈수록 상업의 교모가 커지자 대금업의 필요성도 점점 더 커져갔습니다. 누군가는 이 일을 맡아 해야 했습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유럽에서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죽인 종족으로 멸시를 받아왔습니다. 기독교에서 보기에 이들은 어차피 지옥에 갈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니 유대인들에게 대금업을 허용하는 게 죄 짓는 일이 아닌 거죠. 악역을 떠맡은 유대인 입장에선 달리 선택의 길이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유대인의 토지 소유가 금기되었기 때문에 중세 봉건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산업인 농사를 지을 수가 없었습니다. 기능인 조합인 길드에도 끼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기술자가 될 수도 없었습니다. 공직이야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살아남기 위해선 일반 기독교인들이 하지 않는 험한 일을 해야 했습니다. 그게 고리대금업입니다. 마침 유대교에서도 같은 유대인끼리의 이자는 금기 되었지만 이종교에는 허용되었기 때문에 종교적인 문제도 없었습니다. 사실 중세 초기만 해도 유대인들은 고리대금업보단 상업을 더 많이 했습니다. 5세기에 로마가 무너지면서 상업과 교역망도 함께 붕괴되었습니다. 그나마 유일하게 남은 게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등 지중해변을 따라 퍼져 있던 유대인들의 공동체였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한 무역으로 유대인들은 대금업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로마에 예루살렘이 함락되기 전부터 유대인들은 초등교육을 의무화했습니다. 지중해변의 유대 공동체도 이 전통에 따라 유대교회당에서 아이들을 일찌감치 교육시켰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대부분 글을 읽고 쓸 줄 알았습니다. 왕조차 문맹인 경우가 많았으니 글을 아는 유대인들은 당시의 크고 작은 왕국에 쓸모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왕국의 행정, 그 중에서 특히 세금이나 소작료 징수 관련 업무를 맡아 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런 일은 당사자의 불만을 살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이게 유럽에서 유대인들이 두고두고 미움을 받게 되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중세 사회가 안정화되면서 글을 아는 사람도 늘어 국가의 행정직은 점차 기독교인들의 차지가 되어 갔습니다. 돈이 되는 상업 분야에서도 유대인들은 당연히 속속 밀려났습니다. 그렇게 되면서 유대인들이 더욱 고리대금업에 쏠리게 된 것입니다. 본의 아니게 대금업을 독점하게 된 유대인들은 날이 갈수록 금융전문가들이 되어갔습니다. 하지만 대금업은 아주 위험한 사업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돈을 벌면 벌수록 이들에 대한 시기와 불만이 더욱 커져 갔습니다. 한 조사에 의하면 중세의 고리대금업 이자는 보통 7~20% 사이를 오갔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위험부담이 커지면 이자도 커져 간혹 30%가 넘기도 했습니다. 언제 터질지 모를 불안감이 팽배한 가운데 10세기말 십자군 결성을 계기로 유대인들에 대한 집단적인 탄압과 학살이 유럽 곳곳에서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1096년 첫 출발한 십자군 사이에 "유대인을 죽여 영혼을 구원하라" 는 운동이 벌어집니다.
이슬람을 치러가기 전에 베시아를 죽인 반기독교 세력인 유대인을 청소해 유럽부터 정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무자비한 살육전엔 종교적인 이유 말고도 또 다른 진실이 숨어 있었습니다. 당시의 법은 채무자와 채권자 중 한명이 죽으면 그걸로 채무관계가 끝이었습니다. 일반인들도, 귀족들도, 영주들도 유대인들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었습니다. 그 전에 유럽 전역에 퍼졌던 지구 종말론으로 생활이 방탕해진 영향이 컸습니다. 종교적 광기가 이성을 압도한 십자군은 이를 청산할 좋은 기회였습니다. 그래서 고리대금업을 하는 유대 금융가들이 집중적인 타깃이 된 것입니다.
유대인에 대한 혹독한 탄압은 머지않아 국가적인 차원으로 커져갔습니다.
왕과 귀족들도 유대인들에게 많은 돈을 빌렸고, 이를 해결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이들을 죽이거나 추방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우선 영국은 유대인들에게 노란색 별 딱지를 붙였습니다. 나중에 독일의 나치가 이를 흉내 내 유대인들을 격리하기 위해 사용했던 바로 그 '다윗의 별' 입니다.
그리고 13세기말 금융업을 하는 유대인을 중심으로 대거 영국에서 추방령이 떨어졌습니다.
14세기엔 프랑스와 독일이 영국과 같은 짓을 했고, 15세기엔 스페인이 아예 유대인 전체를 쫓아 내버렸습니다. 유럽 전역의 유대인 탄압은 14세기에 극심했던 흑사병도 한몫했습니다. 평소 위생관념이 철저했던 유대인들은 유럽인들에 비해 흑사병 사망자가 훨씬 적었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우물에 병균을 퍼뜨렸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한편에선 유대인의 고리대금업 때문에 신이 흑사병이란 형벌을 내렸다는 소문도 돌았습니다. 이 때문에 유대인들이 얼마나 많이 죽었던지 교황이 별도로 유대인 보호령을 발동해야 할 정도였습니다.
더 이상 서유럽에서 살 수 없게 된 유대인들은 비교적 호의적이었던 폴란드, 헝가리, 루마니아, 러시아 등 동유럽으로 대거 이주해 갔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후손들은 20세기 히틀러에 의해 가장 큰 희생을 당하게 되지요. 이렇게 보면 홀로코스트는 히틀러가 주범이지만 유럽 전체가 역사적인 공범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유대인을 쫒아낸 영국과 프랑스에선 얼마 후 유대인 복귀 청원이라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금융을 대신 맡게 된 유럽 기독교인들의 이자가 유대인들보다도 훨씬 더 셌기 때문입니다.
스페인의 몰락이 유대인 추방에서 시작되었다는 연구가 있듯이 스페인 역시 엄청난 후유증을 앓았습니다.
이처럼 대금업 때문에 겪는 온갖 고초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결코 돈을 놓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나마 돈이 있을 때가 좀 더 안전하다는 경험이 자꾸만 쌓여갔기 때문입니다. 수없이 반복된 위기 때마다 돈을 뇌물삼아 목숨을 구하는 일이 반복되자 유대인에게 '돈은 곧 생명줄' 이라는 믿음이 굳게 생긴 것입니다. 더구나 추방이 잦았기 때문에 급한 상황에서도 언제든 챙겨갈 수 있는 현금을 절대 선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예 재산을 몰수당하고 나라 밖으로 쫓겨나는 일이 잦아지자 유대인들은 점차 국제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보석사업에도 뛰어 들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유대인들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보석이라는 다이아몬드에 집중, 지금도 전 세계 거래량의 절반이 유대인의 손을 거치고 있습니다. 한 때 다이아몬드 시장의 90%를 장악했던 드비어스도 유대인 것이고, 다이아몬드 가격을 사실상 결정하는 '다이아몬드 딜러스 클럽' 의 정회원들도 거의 모두 유대인들입니다. 반유대주의는 역사상 가장 오래된 증오입니다. 그만큼이나 '돈이 생명' 이라는 신념은 유대인들에겐 자신들의 종교만큼이나 가장 오래된 믿음입니다.
이 때문에 유대인들은 악덕고리대금업자라는 꼬리표를 달았습니다. 샤일록처럼 말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유대인이 대금업을 하게 된 것은 중세 봉건제에서 철저하게 배제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원하든 원치 않든 유대인들의 고리대금업은 근대 자본주의를 가져왔습니다. 대금업은 은행으로 발전했고, 오늘날 은행 없는 자본주의를 상상하기는 어려우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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