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왜 더운 여름에도 뜨뜨미지근한 물을 마시는가!!

중국은 왜 더운 여름에도 뜨뜨미지근한 물을 마시는가!!

우린 한겨울에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세계 유일의 민족입니다. 외국인들은 이것만으로도 기겁하지만, 우린 남은 얼음을 씹기까지 하죠. 한여름이라면 말할 것도 없습니다. 물이든, 맥주든, 음료수든 늘 얼음처럼 차갑게 준비되어 있어야 하죠. 하지만 차갑게 마신다는 건, 세계적으로 일반적인 현상은 아닙니다.

 

중국사람들은 미지근하기는커녕 아예 한여름에도 뜨겁게 마십니다. 중국만큼은 아니지만 인도를 비롯한 대부분의 아시아 사람들도 비슷합니다. 왜 이들은 우리보다 더 무더운 데도 찬물을 마시지 않는 걸까요?

 

중국에선 지금도 로컬 식당에서 맥주를 주문하면 대부분 미지근한 걸 가져다줍니다. 조금 고급 식당에서나 “차가운 걸로 줄까요?”라고 물어보는 정도죠. 물론 중국어로요. 알아듣지 못하고 멍하니 앉아 있으면 십중팔구는 그냥 밍밍한 맥주입니다. 

 

생수를 사려고 마트에 들어가 봐도 대개는 상온보관되어 있죠. 그것도 냉장고 바로 옆에 말입니다. 작은 도시의 가게에선 콜라를 사면 땡볕에 달궈진 따끈한 것을 주기도 합니다.

 

당연히 중국 사람들이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지요. 중국인들 자체가 차가운 것에 대한 거부감이 워낙 크다 보니, 외국인들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중국 사람들의 인식은 한마디로 “배는 무조건 따뜻해야 하고, 차가운 게 들어가면 병이 난다”입니다.

명나라의 한 대신은 일찍 죽기 위해 아침마다 일부러 찬물을 마셨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중국 전통 의학에서 차가운 물은 만병의 근원입니다. 우선 찬물은 위장의 기운을 상하게 해, 소화 장애를 가죠오죠. 내장의 온도가 낮아지면 감기에 걸리기 쉽고, 변비가 생기며, 근육 수축에 따른 피로와 통증도 가져온다고 오래전부터 가르쳐 왔습니다.

 

반면 따뜻한 물은 만병통치약이죠. 혈액 순환과 소화를 돕고, 해독 작용과 노화 방지까지 가져온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중국에선 몸이 아플 때는 물론 기분이 안 좋을 때도 무조건 뜨거운 물을 더 많이 마시라고 합니다.

 

전통 의학의 권고대로 중국에서 따뜻한 물을 마시기 시작한 건 대략 한나라 때인 기원전 2세기경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배층들은 뜨거운 물에 찻잎을 넣어 차를 만들어 마셨죠. 하지만 일반 백성들에겐 차는커녕 뜨거운 물조차 사치였습니다.

 

마른 풀과 지푸라기로 간신히 밥만 지을 뿐, 물을 끓여 먹을 형편이 안됐죠. 비싼 땔감은 임산부나 노약자, 병자를 위해 야껴야 했습니다. 이렇듯 전통 의학 덕에 따뜻한 물이 건강에 좋다는 것은 알았지만 끓인 물은 늘 귀해서 오랫동안 백성들은 그냥 강물이나 샘물을 마셔야 했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물은 석회질과 황토로 인해 늘 수질이 좋지 않았죠. 그로 인해 평소에도 많은 전염병이 돌았고요. 그러다 오늘날처럼 중국인들이 일상적으로 뜨거운 물을 마시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19세기 말에 만들어지게 됩니다.

 

당시 중국은 태평천국의 난으로 곳곳이 전쟁터였습니다. 이를 패해 150만 명이 상해로 몰려들었죠. 과밀화와 열악한 위생 환경으로 콜레라가 퍼지기 시작했고, 심한 날은 상해에서만 하루에 3,000명이 죽어 나갔습니다. 콜라레는 무서운 속도로 상해 남부로 퍼져, 수도인 북경에서도 사망자가 속출했죠.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중국 남부의 광동성 일대에선 콜레라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차이라곤 중국 남부에선 물을 끓여 마시는 사람이 많다는 점뿐이었습니다. 광동성 일대는 비교적 부유한 지역이라 물을 끓일 정도의 땔감은 마련할 수 있었던 덕이죠.

 

이 소식은 콜레라 전염 속도보다도 더 빨리 중국 전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뜨거운 물은 이제 생사가 달린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 소문은 “따뜻한 물이 건강에 좋다”는 중국 전통 의학과 결합돼 중국에서 뜨거운 물이 만병통치약이 되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런 중국인들의 믿음을 국가정책으로 격상시킨 건 당시 국민당을 이끌던 장개석이었습니다. 1934년 국민당 정부는 국민 계몽의 일환으로 소위 ‘신생활운동’을 벌였죠. 복장, 식습관, 교통법규 등 95개의 행동 규칙 가운데 ‘끓인 물 마시기’가 위생 부문에서 강조되었죠.

당시 서양의 세균학이 중국에도 알려졌던 터라 물을 끓여 박테리아와 질병의 확신을 막자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계속된 전쟁과 무능으로 ‘신생활운동’은 그다지 큰 효과를 보진 못했습니다. 특히 ‘전국민의 뜨거운 물 마시기 운동’을 완성한 건 얼마 후의 모택동이었죠. 장개석과 모택동은 숙적이었지만 국민이 생수 대신 뜨거운 물을 마셔야 한다는 데에는 정확히 의견이 일치했습니다.

 

사실 중국 공산당은 장개석의 ‘신생활운동’전부터 군인들에게 끓인 물을 마시도록 해왔습니다. 뜨거운 물을 제공하지 못하는 지휘관은 문책 되었고, 찬물을 마신 병사들은 질책을 받았습니다. 그러다 1952년 모택동의 공산당 정부는 ‘애국 건강 운동’을 벌이면서 학교 벽마다 “아이들은 하루 세 번 끓인 물을 마시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는 포스터를 붙여 놓았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보온병도 지급했죠. 이후 아이들은 등교하면 커다란 보온병을 들고 학교에서 주는 뜨거운 물을 받기 위해 줄부터 서는 것이 하나의 풍경이 되었습니다. 점차 뜨거운 물 보급은 학교를 넘어 정부기관, 행정기관 등 공공장소로 확대되었고, 급기야 각 기업에가지 의무화되었습니다.

 

중국 전역에서 수억 명의 사람들이 보온병을 들고 물 보급소 앞에서 장사진을 쳤죠. 이렇게 해서 찬물이 아닌, 뜨거운 물을 마시는 습관이 이때부터 완전히 정착되었습니다. “영국은 보온병 기술을 발명했고 독일인은 상업화했지만 중국인은 완성했다” 는 말도 만들어졌습니다.

 

인도 역시 찬물은 건강에 좋지 않다는 굳은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인도 전통 의학인 ‘아유르베다’의 가르침을 따른 것이죠. 아유르베다(Ayurveda)에 의하면 “찬물을 마시면 몸이 물의 온도를 높이기 위해 무리를 해야 해서 몸의 균형이 깨지게 된다”며 “최소한 미지근한 물을 자주. 마셔야 소화불량을 막고, 몸의 독기를 해소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런 현상은 인도 남부로 갈수록 더 뚜렷합니다. 날씨가 더 더운데도 인도 남부에선 북부보다도 물을 뜨겁게 마십니다. 인도의 영향을 많이 받는 스리랑카와 네팔도 비슷합니다. 이들 역시 아유르베다의 가르침대로 최소한 체온과 비슷한 온도의 물을 마십니다. 아랍세계에선 우리의 이열치열과 비슷한 방식이 있습니다.

 

불은 불로 다스린다는 것입니다. 사막의 한 여름에도 뜨거운 차로 땀을 냄으로써 몸의 화기를 밖으로 빼낸다는 것이죠.

 

이 외에도 베트남, 말레이시아, 태국, 미얀마, 몰디브, 아프가니스탄 등도 찬물을 피하는 나라들입니다. 한국에 일하러 온 아시아 노동자들이 적응하기 힘들어하는 것 중 하나가 종일 마셔야 하는 차가운 물입니다. 대개 배탈과 설사로 곤욕을 치르죠.

 

찬물과 뜨거운 물 중 어떤 것이 건강에 더 좋은지에 대해선 설이 분분합니다. 찬물을 즐기는 나라들에선 뜨거운 물이야말로 신체의 면역력을 약화시키니 오히려 해롭다고 말합니다. 찬물을 마시게 되면 신체 지구력도 상승하고, 스트레스 해소에도 도움이 되다고 주장하죠.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찬물과 더운물의 선택은 환경의 산물일 뿐입니다.

 

우선 물을 끓여 마시는 나라들은 대개 수질이 좋지 않습니다. 높은 기온은 모든 걸 쉽게 부패시키죠. 때문에 뜨거운 나라에서 뜨거운 물은 생존에 유리한 아주 현명한 선택입니다. 반면 찬물을 좋아하는 나라들은 수질이 좋다는 공통점이 있죠. 우리는 전국 어디서나 우물을 파서 바로 퍼마셔도 별 문제가 없습니다. 이건 당연한 게 아닙니다.

세계에서 한국, 일본, 영국, 북유럽, 뉴질랜드, 캐나다 정도에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이런 나라에선 수질이나 건강을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그저 더 맛있도록 시원하게 마시는 것이죠.

 

다만 유럽과 미국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석회질이 많아 수질이 좋다고 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이들 나라에선 기막힌 걸 발명했죠. 바로 상수도입니다. 산업화로 도시가 발달하기 시작한 19세기 초반 영국에서 처음으로 정수한 물을 각 가정에 보급하는 방법을 개발해냈죠.

 

20세기 최고의 공학적 업적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이 상수도 덕에 유럽과 미국에선 물을 끓이지 않아도 오염되지 않은 물을 마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반면 중국과 인도 같은 나라들은 상수도를 만들 기술도, 경제적인 여력도 없었죠. 그래서 선택한 게, 물을 끓여 살균하는 것입니다. 어쨌든 이 덕에 많은 병을 막을 수 있었으니 나름 주어진 환경에서 할 수 있는 선택을 한 셈입니다. 이제 시대와 세대가 변하면서 각 나라의 찬물, 더운물 선호도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서구에선 탄산음료를 마시는 사람이 급격히 줄면서 상온의 물을 마시는 사람이 뚜렷하게 늘고 있습니다. 반대로 뜨거운 차를 마시던 베트남과 태국의 젊은이들은 아예 얼음이 가득한 잔에 맥주를 부어 마십니다.

 

중국에선 1990년대 경제 자유화가 되면서 치즈, 맥주, 커피 등, 서구의 식생활과 함께 찬물도 들어왔죠. 상해와 북경의 젊은이들은 이전 세대와 달리 얼음처럼 차가운 생수와 맥주를 마시는데 조금도 거리낄 게 없습니다. 이들의 소비로 지금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생수 시장이 되었죠.

 

이제 커다란 보온병을 든 중국의 중년 세대 모습은 구시대의 상징 중 하나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