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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경제가 피사의 사탑처럼 간당간당하다는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탈리아에 대한 흔한 이미지가 하나 있습니다. “조상 잘 둔 덕에 관광으로 먹고 사는 나라”라는 것입니다. 우리 언론조차 자주 이런 식으로 이탈리아를 표현하죠. 이게 사실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조금만 생각해봐도 관광 하나만으로 G7이 된다는 건 상식적이지 않습니다. 그럼 이탈리아는 무엇으로 먹고 사는 나라일까요?
이탈리아에서 관광업이 매우 중요한 산업인 건 분명합니다. 코로나 전인 2019년엔 이탈리아 여행이 정점을 이뤄 관광업이 GDP의 13.2%를 차지했습니다. 호텔, 여행사, 렌터카 등 관광 관련 직간접 일자리가 320만 개나 되었죠. 그리스의 20.6%, 스페인의 14.6%보단 낮으나 상당한 비중인 건 사실입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이탈리아는 한해 6천200만 며의 여행자가 찾는 관광 대국입니다.
자신들의 6,000만 인구보다도 더 많죠. 세계에선 프랑스, 스페인, 미국, 중국에 이어 5번째이고요. 그렇다고 이 산업 하나만으로 세계 8위 규모의 경제 강국이 될 수는 없습니다. 잘 나가던 1990년대에는 한 때 영국을 제치고 세계 5위 경제 대국에 올랐던 이탈리아입니다.
그 비결은 조금 뜻밖이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제조업입니다. 이탈리아는 우리가 가진 선입견과 달리, 그것도 분야별로 골고루 발달된 제조업을 가진 나라입니다. 이탈리아는 유럽에선 독일에 이어, 2번째의 제조업 강국입니다. 영국이나 프랑스보다도 더 위죠. 유엔 통계국이 발표한 데이터에 따르면 이탈리아는 2019년 세계 제조업 생산량의 2.1%를 차지해 세계 7위입니다. 우리는 3%로 6위죠.
동시에 이탈리아 GDP의 24%가 제조업에서 나오고, 국민의 30% 정도가 제조업에서 일하죠. 우리의 제조업 취업자수가 국민 전체의 10%미만이니 얼마나 많은 이탈리아 사람들이 제조업으로 먹고 사는지 비교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탈리아는 물리, 화학, 생리, 의학 등, 과학 관련 노벨상 수상자만 13명을 배출한 나라입니다.
그만큼 기초과학 분야가 꽤 강하죠. 이를 바탕으로 이탈리아는 기계 화학 자동차 항공, 금속, 자전거, 악기, 패션, 식품, 가구, 세라믹, 신발 등, 중공업과 경공업을 가리지 않고 정말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의 기술력을 갖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 구찌, 프라다, 아르마니 등, 수많은 명품브랜드를 갖고 있는 패션 산업은 압도적으로 세계 1위죠.
근래 들어서 의약 부문에서도 강세를 보여 알츠하이머와 암 치료제 등, 제약 생산 유럽 1위국이 이탈리아입니다. 사실 우리와 이탈리아는 서로의 경제 위상에 비해 그다지 교역이 활발한 사이는 아닙니다. 수출과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모두 1%언저리죠. 때문에 이탈리아의 경제에 대해선 낯설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뿐만도 아닙니다. 이탈리아는 중국과도 그다지 교역량이 많지 않습니다.
이탈리아 수출입의 상당 부분은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땅에서도 바다에서도 유럽의 중심부에 있다는, 지리적 위치의 유리함을 적극 살리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이탈리아하면 떠오르는 대기업이 있나요? 아마 자동차 회사인 피아트나 의류 회사인 베네통 정도 아닐까요?
바로 이 점이 이탈리아 제조업의 독특함입니다. 이탈리아는 그야말로 초미니 기업들의 천국입니다. 중소기업이 국가 경제를 지탱하는 대표적인 나라들을 꼽자면 독일, 이탈리아, 대만 등입니다. 이 중 이탈리아는 기업 규모가 그 어느 나라보다도 작습니다. 그리고 역사도 가장 오래 되었고, 오랜 축적으로 인해 기술력이 뛰어난 중소기업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이탈리아엔 약 440만 개의 기업이 있습니다. 이 중 직원 250명이 넘는 대기업의 수가 고작 3,800개 정도입니다. 그리고 전체 기업의 95%가 10명 미만인 초소형 사업체입니다. 직원이 5명도 안 되는 기업은 300만 개나 됩니다. 그러니까 이탈리아 사람들의 대다수가 이런 작은 업체에서 일한다고 보면 됩니다.
대한민국의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되어 있습니다.
반면, 이탈리아 헌법 제1조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탈리아 공화국은 노동에 기초를 두는 민주공화국이다.” 그만큼 이탈리아는 노동자의 권익을 굉장히 중시하는 나라입니다. 기업은 늘 강력한 노조를 피하고 싶어 하죠. 그런데 이탈리아 노동법은 15명 이사인 사업체엔 굉장히 관대합니다. 물론 세금 혜택도 있죠.
이게 이탈리아에 초미니 기업이 많은 이유입니다. 러시아의 푸틴도 사용한다는 최고급 가구업체 치테리오도 직원이 공교롭게 12명뿐이라고 합니다. 이탈리아 경제가 직원 10명 미만의 소위 ‘마이크로 기업’이 중심이 된 것은 역사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이탈리아는 통일된 지, 이제 고작 160년 정도 되었습니다. 로마 제국 멸망 후 1500년 이상이나 이탈리아는 많은 도시국가로 분열되어 있었습니다. 각 도시국가는 자급자족을 위해 옷과 신발, 가구, 가죽, 도자기, 금은세공품들을 자체적으로 생산해야 했죠. 가내수공업처럼 작은 규모로 물건을 만들던 이 업체들이 통일 후에도 고스란히 남아 마이크로 기업이 된 것입니다.
하지만 중소기업이 많다고 이탈리아처럼 모든 국가가 부강해지는 건 절대 아니죠. 여기에 이탈리아만의 또 다른 비결이 숨어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작은 기업들은 동종업체들끼리 클러스터를 이루고 있습니다. 즉, 같은 일을 하는 마이크로 기업들을 지역별로 특화해 거미줄처럼 연결했죠.
예를 들어 이탈리아 북부의 작은 도시 발렌차는 귀금속으로 특화된 마을입니다. 4~5명이 일하는 수백 개의 공방이 힘을 합쳐 제품을 만들죠. 2만여 명의 마을 인구 중 거의 절반이 같은 일을 하며 노하우를 공유하고, 공동으로 마케팅을 합니다. 이런 역사가 130년이나 되었죠. 이탈리아 중북부의 중세 도시, 크레모나도 비슷합니다.
수백 개의 작은 공방들이 수평적인 분업을 통해 스트라디바리우스, 과르네리, 아마티 등, 최고의 현악기 명품들을 만들죠. 이게 300년이나 되었습니다. 이런 클러스터가 이탈리아 전역에 200개 넘게 있습니다. 자동차의 토리노, 패션의 밀라노, 기계의 볼로냐, 구두의 베로나, 조선의 제노바가 대표적인 클러스터들이죠.
이렇게 클러스터 내에서 협력하면 중소기업에 쉽지 않은 연구개발과 ‘규모의 경제’도 가능하고, 공동생산으로 생산원가도 낮출 수 있죠. 이 덕에 이탈리아의 마이크로 기업들은 강소기업이 되어 분야에서 메이트 인 이테리 명품들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클러스터형 강소기업들은 2000년대 들어 그 한계점을 뚜렷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아무리 협업을 한다고 해도 대기업만큼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긴 어렵죠. 그래서 이탈리아 기업들은 세계화라는 무한경쟁 속에서 점차 가격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장인들이 한땀 한땀 정성을 들여 물건을 만들다 보니, 품질은 뛰어나지만 글로벌 스탠다드에서도 자꾸만 뒤떨어지죠.
때론 이 장인정신이 시장변화에 따른 신속한 대응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하고요. 이탈리아의 마이크로 기업들이 대부분 가족 사업이라 생산성은 EU 최하위 수준입니다. 물려받을 가족 사업이 없는 젊은이들은 취직이 하늘의 별따기이고, 가족 사업을 물려받는 젊은이들의 대학 진학률은 거의 바닥입니다.
오죽하면 이탈리아에선 명함의 이름 앞에 Dott.”라고 붙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졸이란 뜻입니다. 이런 문제들로 인해 이탈리아 경제는 2000년대 들어 성장이 멈춘 상태입니다. 급기야 코로나 직격탄을 맞으면서 이탈리아는 1인당 GDP에서 우리에게도 약간 뒤지게 됐죠. 2021년 1월의 IMF 발표에 따르면 이탈리아는 31,052달러 이고, 대한민국은 31,366 달러 입니다. 10월 발표에선 근소하게 다시 역전되었지만 우리가 일시적으로나마 1인당 GDP에서 G7 국가를 추월한 건 이게 처음이었습니다.
사실 이탈리아는 정말 G7 국가가 맞나 싶을 정도로 여러 면에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행정이 엉망인 것이야 워낙 유명하고, 탈세와 부정부패는 너무나 광범위하며, 마피아를 비롯한 지하경제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12%를 차지합니다. 국가 부채는 150%가 넘어가고 있고, 청년실업률은 심할 땐, 거의 35%까지 치솟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낮은 교육 수준, 유럽 바닥권의 외국인 투자와 노동생산성, 국가를 분열시키는 심각한 남북간 경제 격차 등, 앞날도 어두워 보입니다.
그런데 이탈리아의 경제위기는 한두 해 전의 얘기가 아닙니다. 30년 전에도 국제 언론에선 이탈리아가 위험하다는 보도를 쏟아냈습니다. 하지만 보란 듯이 지금도 굳건히 G7의 자리를 지키고 있죠. 이를 피사의 사탑 경제라고도 합니다. 13세기 건축할 때부터 기울어지기 시작한 피사의 사탑은 곧 무너질듯 위태로워 보이면서도 지금까지 잘 버티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경제와 비슷하죠.
결국 머지않아 우리에게 따라잡히게 될지, 아니면 앞으로도 피사의 사탑처럼 이탈리아 경제가 버티게 될지 두고 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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