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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도 원래는 제목이 없었다?! 현대 예술 작품에 무제가 많은 이유

현대인들은 참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전시 공간에 화장실에서 쓰던 변기 하나를 덩그러니 올려놓거나, 미술관 벽에 노란 바나나 하나를 테이프로 붙여 놓고 이걸 작품이라고 합니다.

아이들의 짓궂은 장난 같아 보이지만 전자인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샘’은 미술사에 큰 획을 그은 작품이고, 후자인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의 ‘코미디언’은 이 다 썩어가는 바나나에 수억 원의 가격표가 붙어 있습니다. 이 작품들은 그나마 낫습니다. 제목이라도 있어서 작가의 의도를 유추라도 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많은 현대미술 작품들은 “도대체 이게 뭐냐” 싶어 제목을 찾아보면 <Untitled>, 즉 무제라고 붙어 있기 십상입니다.

 

미국의 미술을 오늘날의 지위로 끌어올린 추상표현주의의 거장 잭슨 폴록의 이 작품 역시 제목이 없습니다.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은 검은 물감을 붓으로 마구 뿌려댄 이 작품을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그래서 <무제>라고 되어 있는 작품을 만나게 되면 개인적으론 작가들이 참 불친절하거나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한 연구에 의하면 제목이 무제일 경우 관람자의 작품에 대한 이해도가 확연히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만큼 미술 작품을 감상할 때 많은 사람이 제목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뜻입니다.

 

게다가 무제는 관람자의 관심도를 떨어뜨리는 주요한 요인으로 드러났습니다. 즉, 작품을 팔아야 하는 화가들에게 <무제>는 결코 현명한 선택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많은 화가는 여전히 작품에 제목을 달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작가들이 드는 이유는 여러 가지 입니다. 작품은 다 만들었는데 적당한 제목이 떠오르지 않거나, 처음부터 특별한 의도가 없는 작업이라서 무제를 달기도 합니다. 때론 작가가 게을러서이기도 하고, 때론 자기가 뭘 하는지 몰라서 제목을 생략하기도 합니다. 이게 어이없을 수도 있지만 현대미술에선 이 모든 게 허용됩니다.

 

남성용 소변기를 엎어 놓은 뒤샹의 ‘샘’이 유명한 것은 작가가 만들지도 않은 사물이 작가의 선택과 주장만으로도 미술이 될 수 있다는 첫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무제는 자신의 신변보호와 저항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어떤 나라건 독재 정권하에서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탄압의 대상이 되기 쉽습니다. 권력에 반하는 작품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는 경우, 작가들은 아예 제목을 달지 않는 방법으로 위험도 피하고, 항의도 하는 거죠.

 

하지만 작가들이 작품에 제목을 달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관람객의 상상과 해석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이 문제적 인물인 뒤샹은 ‘샘’이라는 유명 작품과 함께 “제목은 보이지 않는 책”이라는 유명한 말도 남겼습니다.

 

파블로 피카소는 “화가는 작품으로 소통할 뿐, 제목에 관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모두 작가가 제목을 달게 되면 대중의 자유로운 상상과 해석을 막아 버리게 됨을 경계한 말입니다.

 

작가들이 왜 이런 걱정을 하게 되었는지는 예술 사조의 변화를 통해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실 자신의 작품에 제목을 달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18세기 이전에 유럽에서 그려진 대부분의 명작은 제목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가 지금 현대미술의 무제는 조금도 유별난 현상이 아니란 얘기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도,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이 소장한 최고의 걸작인 디에고 벨라스게스의 <시녀들>도 처음엔 이름이 없었습니다.

 

지금의 제목은 작가가 아니라 후대의 미술사가나 화상, 큐레이트들이 분류와 보관의 편의상 지은 거죠.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18세기 이전의 그림들은 성경의 내용을 그린 성상화, 친숙한 신화나 사건을 그린 역사화, 왕족과 귀족의 인물을 그린 초상화, 주변의 자연을 담은 풍경화나 정물화 등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제목이 아닌, 그림만 봐도 누구나 금방 내용을 알 수 있었죠.

 

그리고 대게는 교회 혹은 후원자의 주문을 받아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제목은 누구에게도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교회나 궁전, 귀족의 저택에 그림이 위치할 뿐, 전시라는 개념이 없었으니 관라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제목에 신경 쓸 이유 자체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18세기 중반이 되면서 예술계에 여러 가지 시장 변화가 생깁니다. 우선 이 시대에 전쟁이 잦아지면서 그림은 전리품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약탈한 작품들을 보관하기 위해 유럽 전역에 박물관과 미술관이 들어서게 되죠. 비슷한 시기에 소더비와 크리스티 등, 경매소가 생기면서 미술 시장도 발달하게 되고요.

 

이렇게 되자 분류를 위해서도, 거래를 위해서도 작품명이 꼭 필요했습니다. 뒤늦게 고전 명작들의 이름을 미술사가나 화상, 큐레이터들이 짓게 된 거죠.

 

한편, 카메라의 발명은 19세기 화가들을 심각한 고민 속에 빠지게 합니다. 사진이 나오기 전까지 그림의 속성은 기본적으로 현실의 제현, 혹은 기록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사실처럼 그려도 사진을 따라갈 수는 없었습니다. 갑자기 미술이 설 자리를 잃게 된 거죠. 

 

이런 상황에서 화가들은 미술만이 할 수 있는 것을 고민해야 했습니다. 그 결과, 화가들은 카메라론 찍을 수 없는,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폴 세잔과 빈센트 반 고흐 등으로 대표되는 후기인상파가 그들입니다.

 

그래서 논란거리이긴 하지만 이들로부터 현대미술이 시작되었다고 하기도 합니다. 물론 프랑스혁명과 산업혁명을 겪으면서 보게 된 인간성의 혼란도 영향을 끼쳤죠.

 

어쨌든 이제 화가들은 후원자의 돈을 받고 그림을 그려주는 하청업자가 아니라 자의식과 욕망으로 가득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글미을 창작해낸 창조주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소중한 창조물에 이름을 지어주고, 서명까지 남기게 되었죠. 당시 미술의 중심지는 단연 프랑스 파리였습니다. 화가들의 등용문이라 할 살롱전에서도 출품하려면 반드시 작품명을 요구했기 때문에 제목 짓기는 순식간에 널리 퍼졌습니다.

작가의 내면을 미술에 표현하려던 이 뚜렷한 경향성은 급기야 추상미술을 등장시켰습니다. 이는 1차 세계대전의 영향이 컸습니다. 예술가들은 전례 없는 대규모 살육을 보고 인간의 이성에 대해 환멸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간 이성으로 만들어온 회화의 모든 요소를 배제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풍경화나 정물화 같은 예술의 장르도 버리고, 전통 회화 기법이나 그림에 등장하는 사물도 없앴습니다.

 

이제 남은 건 캔버스의 평면과 선과 색뿐이었습니다. 이들은 이 3가지를 가장 순수한 예술적 요소로 보았습니다. 이 3가지만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야말로 이성의 완성이라며 추상미술 혹은 순수미술이라고 불렀죠.

 

이 추상미술의 세계엔 잘 그렸다거나 잘 만들었다는 기준이 없습니다. 그보단 선과 색을 자유롭게 표현해내는 독창성이 더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작가의 생각과 감증을 드러내는 데 도움이 된다면 비디오나 무용, 심지어 과학도 접목하게 되었죠.

 

문제는 작품이 복잡미묘해질수록 창작자조차도 하나의 제목으로 자신의 작품을 아우르기가 어려워졌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목은 오히려 작가의 의도를 왜곡할 가능성이 더 컸습니다. 이를 우려한 예술가들은 아예 제목이라는 걸림돌을 없애 관림자가 맘껏 상상하고, 맘껏 해석하게 놔두는 게 더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게 현대미술에서 <Untitled>, 즉 무제가 많은 이유이죠. 정리하자면 작가가 무제라는 타이틀을 달았다는 건 작품에 이름 붙일 권리를 관객에게 넘겼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현대미술을 만나면 내 마음대로 작가의 의도를 생각해보고, 내 입맛대로 제목도 붙여 보는 즐거움을 기꺼이 누리면 될 것 같습니다.

 

작가의 의도를 받아들여 “내 권한을 행사할 기회다”라고 생각하면 현대미술의 어려움이 조금은 덜해질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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