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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이 전쟁을 계속 원하면 지도상에서 러시아가 사라질 수 밖에 없는 이유

 

러시아가 위기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이 러시아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단지 푸틴의 실패가 아닙니다. 러시아가 수백 년간 공들여온 지정학의 또 다른 실패죠.

 

때문에 만약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진다면 러시아 연방이 다시 해체되는 역사를 우리가 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엇보다 이 점을 두려워하는 푸틴이 과연 러시아 연방을 지킬 수 있을까요?

사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미 일찌감치 예견된 일입니다. 첫 징조는 체첸입니다. 체첸은 험준한 캅카스산맥에 위치한 인구 150만 명의 작은 공화국입니다. 물론 러시아 연방의 일원이죠. 체첸의 독립을 막기 위해 러시아는 1994년부터 2009년까지 정말 집요하게 전쟁을 벌였습니다.

 

끈질기게 저항하자 러시아는 체첸의 수도인 그로즈니를 아예 콩가루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인구의 3분의 1인 50만 명 이상이 사망했죠. 러시아군 역시 3만 명 가끼이가 전사했고요.

 

체첸의 독립을 막기 위해 러시아는 막대한 피해를 기꺼이 감수했습니다. 두 번째 징조는 조지아입니다. 캅카스산맥 너머의 옛 소련 영토죠. 조지아는 2008년 4월 나토 가입을 선언했습니다. 그러자 같은 해 8월 러시아는 바로 조지아로 쳐들어갔습니다.

 

아이 손목 비틀 듯 불과 3일 만에 항복을 받아냈죠. 조지아와 함께 같은 날 나토 가입을 선언한 또 다른 나라가 있습니다. 그게 바로 우크라이나입니다. 조지아와 함께 일찌감치 손을 보고 싶었지만, 우크라이나는 체급이 달랐기 때문에 준비 기간이 좀 더 필요했죠.

사실 러시아는 2014년에 우크라이나의 영토였던 크림반도를 전격 합병하면서 좀더 직접적인 경고를 날린바 있습니다. 그래도 우크라이나가 나토 가입을 고집하자, 드디어 준비를 마친 푸틴이 칼을 뽑아든 게 우크라이나 전쟁이죠. 그럼 체첸과 조지아, 우크라이나는 어떤 공통점이 있길래 러시아가 전쟁까지 불사하는 걸까요? 바로 지정학입니다.

 

러시아가 수백 년간 병적으로 집착해온 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자연 장벽이고, 또 하나는 완충 지대입니다. 영토의 일부인 체첸은 물론, 조지아와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입장에선 자연 장벽과 완충 지대를 동시에 가진 나라들입니다. 러시아의 핵심안보전략은 아주 오래전부터 초지일관 수도인 모스크바에서 국경선을 최대한 멀리 두는 것입니다.

 

모스크바 일대는 땅은 비옥하지만 적의 침입을 마땅히 막을 만한 곳이 없는, 완벽한 평원지대라는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러시아는 수백 년에 걸쳐 자연 장벽이 나올 때까지 영토 면적을 넓혀나갔습니다.

 

러시아는 천신만고 끝에 북으로는 북극해, 동으로는 시베리아, 남으로는 캅카스산맥, 서로는 카르파타아산맥이라는 이상적인 국경선을 소련 공산주의 시절에 가질 수 있었습니다. 가장 위험한 서남쪽으로는 발트해에서 카스피해에 이르는 거대한 방어선을 드디어 완성시킨 것이죠.

 

피해국들은 억울하겠지만 이를 ‘방어적인 팽창주의’라고도 부릅니다. 그런데 러시아는 이걸로도 불안해했습니다. 무엇보다 걱정인 건 역시 전통의 강국들이 많은 서쪽이죠. 나폴레옹이나 히틀러 같은 인물이 언제 또 나올지 알 수 없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인공 장벽인 카르파티아산맥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그 앞에 방패를 여러 개 더 세웠습니다. 불가리아, 루마니아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동독 등을 위성국가화한 것이죠. 러시아로선 2중, 3중의 안전장치를 한 셈입니다. 만약 적이 위성국가를 뚫더라도 모스크바까지 가려면 어마어마하게 긴 보급로를 두어야 합니다. 여기에 혹독한 겨울이라도 만나면 정말 최악이죠.

나폴레옹과 히틀러도 이것 때문에 실패했죠. 이걸 똑똑히 기억하는 러시아는 이 국경선과 완충 지대를 두는데 강박증을 갖고 있습니다. 남쪽 역시 언제 다시 또 칭기스칸 같은 인물이 중앙아시아 초원을 건너와 침공할지 모르니 안심할 수 없죠. 그래서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을 완충 지대로 두었습니다.

 

또 오스만투르크 제국이나 이란이 부활할지도 알 수 없으니 캅카스산맥을 자연 장벽으로 삼은 다음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을 완충 지대로 한 겹 더 방어선을 둘렸죠. 그런데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33년마다 전쟁을 치르며 공들여 쌓은 탑이 한꺼번에 무너졌습니다.

 

동유럽의 위성 국가들이 모조리 독립하는 바람에 자연 장벽과 완충 지대가 다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남쪽의 중앙아시아와 캅카스 3국은 간신히 무력과 외교로 무마했지만, 문제는 역시 서쪽이죠.

 

더구나 완충 지대 역할을 하던 나라들이 이젠 나토가입국이 되어 오히려 자신을 겨누게 되었으니 러시아로선 이게 늘 불안하죠. 마치 앞문을 활짝 열어 놓은 상태, 이게 푸틴이 느끼는 지금의 러시아입니다. 진작에 앞문을 걸어 닫고 싶었지만, 그간 경제적으로도, 군사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여유가 없었죠.

 

그러다가 푸틴이 장기집권을 하면서 나름 확고한 국민적 지지를 얻었고, 에너지 가격의 상승으로 부를 축척하면서 부랴부랴 문닫기에 나선 지금의 우크라이나 사태입니다. 그럼 왜 하필 우크라이나일까요? 표면적인 이유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희망입니다.

 

사실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한다는 건 러시아로선 정말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입니다. 우크라이나 동부의 하르키우 같은 곳에 중거리탄도미사일을 배치하면 모스크바가 사정권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러시아 최대의 공업지대인 우랄산맥 부근의 도시들까지 미국 레이더의 감시가 뻗치게 되죠. 게다가 볼가강가의 유서 깊은 도시인 볼고그라드까지는 전차로 겨우 반나절입니다.

 

우크라이나에서 볼고그라드까지 아무 장애물도 없으니 여차하면 반나절 만에 러시아의 중요 도시가 함락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이런 직접적인 이유도 있지만, 보다 심층적인 이유는 역시 지정학입니다. 그 어떤 나라보다 러시아에겐 우크라이나를 얻었을 때의 지정학적 유리함이 가장 큽니다.

 

이는 우크라이나의 국경선을 보면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일찌감치 우크라이나의 중요성을 깨달은 러시아는 레닌과 스탈린 시절에 우크라이나에게 파격적인 퍼주기를 해주었습니다. 우선 러시아 영토였던 돈바스 지역과, 크림반도를 우크라이나에게 떼어주었습니다.

 

러시아가 일찌감치 크림반도를 병합하고 지금 전쟁에서 돈바스의 영유권을 주장하는게 바로 이런 이유에서죠. 그런데 이보다 우크라이나에 더 중요한 지역이 있습니다. 바로 카르파티아 산맥이죠. 보통 국경선은 산맥이나 큰 강을 딸 그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지도를 보면 러시아가 그 어느 곳보다 애지중지하는 카르파티아산맥 살짝 너머에가지 우크라이나 국경선이 있습니다. 이곳 역시 한 번도 우크라이나 땅인 적이 없었습니다. 역사적으로 같은 뿌리인 우크라이나를 철석같이 믿었기에 소련의 스탈린이 이 땅을 점령해 우크라이나에게 준 것입니다.

 

이 땅은 러시아에게 요충지 중 요충지이고, 동유럽에게는 목에 걸린 가시 같은 곳입니다. 이 땅을 통해 러시아는 여차하면 판노니아 대평원을 통해 헝가리, 루마니아, 세르비아, 오스트리아, 체코 등을 순식간에 덮칠 수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지역이 또 한군데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남서쪽과 흑해가 만나는 몰도바 남쪽 지역입니다. 도나우강 하구에 있는 도나우 대평원의 일부죠. 앞의 판노니아처럼 러시아가 선물한 땅입니다. 이곳을 가지면 러시아로선 카르파티아산맥을 우회해서 들어오는 적을 쉽게 막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평원을 거침없이 내달려 루마니아, 불가리아, 튀르키예로 남하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땅을 떼어줄 만큼 엄청나게 정성을 들여왔습니다. 때문에 나토에 가입하려는 우크라이나에 느끼는 푸틴의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이 기회에 지정학 문제도 해결하고, 본때도 보이기 위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이죠.

 

반면 오랜 세월 러시아의 간섭에 진절머리가 난 우크라이나는 의외의 선전으로 러시아를 곤경에 빠뜨렸습니다. 여기에 러시아의 딜레마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러시아의 일관된 핵심안보전략은 온통 편지에 있는 모스크바를 국경선에서 최대한 멀리 두는 것입니다.

 

그래서 팽창을 거듭, 지금 세계에서 압도적으로 가장 큰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팽창에는 주변국과의 마찰이 반드시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는 굉장히 많은 돈과 외교적 에너지가 소모되죠. 인명피해 역시 따를 수밖에 없고요.

 

팽창뿐 아니라 이 큰 땅을 유지하는 것 자체도 어마어마한 비용이 듭니다. 러시아는 이 드넓은 땅을 지키기 위해 현역 100만 명과 예비군 250만 명, 총 350만 명의 대군을 운영해야 합니다. 거기에 무기 개발 등, 군사비 지출이 상당하죠.

 

1991년의 러시아 연방 해체도 천문학적인 군비 지출이 큰 요인 중 하나였습니다. 러시아에 대한 경제 체재 강화는 앞으로 정해진 수순입니다. 러시아의 거의 유일한 돈줄이나 다름없는 에너지 가격은 미국이 언제든 인위적으로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러시아의 경제위기가 눈앞에 있다는 얘기입니다. 여기에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패한다면 이젠 지정학이 아니라 러시아 연방의 2차 해체를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될 것입니다. 특히 체첸을 비롯해 그간 독립을 원하던 러시아 남부의 여러 공화국이 떨어져 나간다면 이젠 앞문뿐 아니라 뒷문까지 걱정해야 할 판입니다. 이렇듯 러시아는 안보를 위해선 영토를 팽창시켜야 하고, 팽창된 영토는 안보와 경제의 불안을 가져오는 마치 시지프스 같은 숙명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각에선 러시아의 지리를 ‘저주받은 지정학’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누구보다 이를 잘 알고 있는 푸틴이 우크라이나에서 그냥 물러날 리가 없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 어떤 일이 더 벌어질지 참 조마조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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