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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의 술문화, 서양에선 술과 함께 먹는 안주가 없는 이유

 

술은 누가 만들었을까요? 그리스 로마에선 포도주의 신인 디오니소스라고 하고, 이집트에선 죽음의 신인 오시리스가, 성경에선 하느님이 ‘노아의 방주’ 주인공인 노아에게 가르쳐주었다고 합니다.

 

프랑스의 문호 빅토르 위고는 역시 휴머니스트답게 이에 반론을 제기하며 “물은 신이 만들었지만, 술만큼은 인간이 만들었다”고 했죠. 하지만 요즘 연구에 의하면 술은 신도 인간도 아닌 원숭이가 맨 처음 만들었을 가능성이 제일 큽니다.

움푹 팬 바위에 원숭이가 숨겨놓은 과일이 발효된 것을 우연히 인간이 맛보게 되고, 이것이 술로 발전했다는 설이죠. 이후 술은 선사 시대 이래 거의 모든 곳에서 인간과 희노애락을 함께 해 왔습니다. 물론 몇몇 예외지역은 있죠.

 

에스키모인들이 사는 알래스카나, 아메리카 인디언드로가 호주의 원주민인 애버리진이 살던 건조지역 같은 곳 말입니다. 자연 발효가 일어날 수 없는 극한의 환경을 가진 곳들이죠.

 

어쨌든 수많은 사람이 각기 다른 환경 속에서 오랜 세월 술을 마셔왔으니 다양한 술 문화가 만들어지는 건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이에 관해 가장 특징적인 것 중의 하나가 술과 함께하는 안주죠. 동양, 엄밀히 말하자면 한국, 중국, 일본의 동북아시아지만 서양과 대비 상 동양이라고 그냥 칭하겠습니다.

 

암튼 이곳에선 안주 없는 술은 상상하기 어렵죠. 반면, 대부분의 서구권에선 아예 안주라는 개념이 없어서 대개는 그냥 술만 들이킵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긴 걸까요?

 

술은 고대 사회 어디든 제사 의식에서 사용되던 성스러운 음료였습니다. 원래는 제물로 고기와 피가 주로 바쳐졌죠. 그러던 게 사회 경제 문화적으로 인류의 발전이 거듭되면서 제물의 성격이 바뀌어 갔습니다. 희생물로 바치던 짐승이나 인간은 각종 음식이, 피는 쉽게 그리고 언제든 대량주조가 가능한 술로 대체 되었죠.

 

특히 이런 현상은 동양에서 두드러졌습니다. 신에게분 아니라 조상에게까지 풍요와 안녕을 비는 제사 의식이 발전해나갔기 때문입니다. 제사 후에는 제사상의 음식과 술을 모든 사람이 골고루 나눠 먹었죠. 이때부터 동양에서 술은 여러 음식의 하나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동북아에 유독 이런 문화가 정착된 건 농경 사회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농경문화와 유목문화는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지나”라는 영상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농경 사회는 함께 모여 일하는 것이 파종, 추수, 관개 등 모든 면에서 절대 유리했기 때무에 집단주의를 형성하게 마련입니다.

그러기에 술은 이미 만들어진 ‘우리’라는 집단의식을 더욱 공고히 하는 친교의 매개체 역할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마시면서 흔히 하는 말인 “오가는 술잔 속에 쌓이는 우정”같은 게 바로 그런 거죠. 그리고 이게 확대돼 술이 잘 모르는 사이를 이어주는 교량 역할도 하게 된 것입니다.

 

술자리가 친교의 의미가 강해지면서 서로 술을 권하는 권주문화가 만들어졌습니다. 이는 서로 따라주고 받아 마시는 대작문화로 발전하고, 이러다 보니 마시게 되는 술의 양은 점점 더 많아지게 되었죠.

 

친교에는 접대의 의미도 있어서 술과 함께 하는 거한 음식을 차리게 되고, 이게 자연스럽게 안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안주 없이 많은 양의 술을 마시게 되면, 속이 부대끼게 마른이죠. 안주라는 이름도 그래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안주에서 한문 누를 자는 안마를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즉, 술과 함께 음식을 먹음으로써 술기운을 지그시 누른다는 뜻입니다. 술이 음식의 일종이고, 한 자리서 많은 양을 마시다 보니 서양과 달리 동양의 술은 알코올 도시가 훨씬 약한 편입니다. 곡주나 과일주 등 발효주가 많은 편이죠.

 

물론 중국의 독주들이 꽤 있기는 하지만 한중일이 대체적으로 그렇다는 것입니다. 또 한 동양에서 술은 강력한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의 기능을 하기도 합니다. 즉, 술자리에 초대된다는 것은 한 조직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진다는 뜻이고, 그 반대는 조직에서 배제된다는 뜻입니다.

 

술이 갖는 이런 강력한 비언어적 뜻을 알기에 직장인들이 회식 자리를 마냥 피할 수만은 없는 거죠. 그렇다면 서양은 어떨까요? 물론 서양에서 안주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특히 외국 관광객이 많이 찾는 런던이나 파리, 로마 같은 대도시의 술집에선 간단한 과자나 감자튀김, 견과류 등을 내어주기도 합니다.

 

스페인의 핀초스(타파스)처럼 간단히 집어 먹을 수 있는 여러 핑거푸두도 있고요. 시간이 오래 걸리는 홈파티 등에선 술과 함께 샌드위치나 핫윙 같은 간단한 임식이 차려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유럽의 펍이나 주점에선 술만 파는 게 보통이죠. 특히 위스키, 코냑, 스카치 같은 독한 술일수록 더 깡술로 마십니다.

 

안주가 나오더라도 동양의 푸짐한 요리하고는 거리가 한참 멉니다. 실제로 안주라는 단어를 영어로 검색해보면 마땅한 단어가 없습니다. 기껏해야 snack, side dish 정도인데 우리가 생각하는 안주하고는 역시 딱 맞지 않습니다.

이렇게 단어가 없다는 건 서양에 안주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는 뜻입니다. 보통 동양에선 술이 음식의 하나지만 서양에선 기호식품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서양에서도 음식과 함께 발달한 술이 있습니다. 바로 포도주와 맥주입니다.

 

동양처럼 알코올 도수가 약한 발효주들이죠. 하지만 동서양의 술은 태생부터 용도가 달랐습니다. 석회수는 유럽 대부분 나라의 고민입니다. 석회질이 가득한 이 물을 그냥 마실 수 없었기에 맥주가 만들어졌죠. 맥주는 이뇨작용으로 인해 석회질이 몸 안에서 쉽게 배출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맥주가 서민의 음료수라면 포도주는 귀족의 음료수였습니다. 와인은 순수하게 포도로만 발효시켜 만든 술이기 때문에 석회질이 들어갈 여지가 없습니다. 포도주는 벽돌처럼 딱딱한 빵을 부드럽게 적셔 먹기 위한 용도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이렇듯 맥주와 포도주는 술이 아닌 물의 대용품이니 안주와 함께 마실 필요가 없습니다.

 

즉, 맥주와 포도주는 반주로 식사와 함께 먹는지라 따로 안주를 준비하는 문화 자체가 생길 여지가 없었던 셈입니다. 맥주와 포도주가 음료수라면 유럽에서 비로소 술대접을 제대로 받은 건 위스키, 코냑 같은 증류주였습니다.

 

유럽에서 증류주의 역사는 술 전체의 역사에 비해선 무척 짧습니다. 증류하는 기술 자체가 십자군 전쟁 와중에 이슬람 세계로부터 배워온 것이죠. 하지만 증류주 역시 동양처럼 교류를 위해 여럿이 모여 함께 마실 일은 없었습니다. 유럽은 사실상 많은 지역이 반농반목 상태였습니다.

농사도 벼농사와는 노동력 밀집도가 한참 떨어지는 밀농사 위주였죠. 무엇보다 현실적ㅇ니 이유도 있었습니다. 14세기 중반 페스트가 퍼지면서 유럽은 그야말로 이비규환이었습니다. 인구의 3분의 1이 목숨을 잃으면서 수백년간 유럽전역이 공포 속에 빠져 지내야 했죠.

 

페스트에 대한 아무 치료제가 없었던 이때, 알코올이 병균으로부터 보호해 준다는 막연한 소문이 나돌았습니다. 그러면서 증류주가 유럽 전체에 본격 유행하게 되죠. 전염병의 특성상 모임을 회피했기 때문에 증류주 역시 혼자 조용히 즐기는 술이 되어 갔습니다.

 

혼자 이 독한 술을 아무 데서나 한두 잔만 하면 되었기 때문에 증류주 역시 안주가 필요 없었죠. 이후 증류주는 발전을 거듭하면서 개인의 취향에 따라 알코올 도수와 향을 선택해 마실 수 있는 기호식품이 되었습니다. 위스키와 코냑은 이처럼 향을 함께 즐기는 술이죠.

 

그래서 서양인들은 안주를 함께 먹으면 향이 지워져 오히려 피하는 게 낫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유럽의 펍에 가면 서서 돌아다니며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제법 많습니다. TMI지만 이건 유럽에 안주가 없어서 가능한 술 문화 중 하나입니다.

 

개인적으론 유럽의 술집들은 안주 없이 술만 팔아서 어떻게 운영이 가능한 지 궁금합니다. 그것도 많은 사람이 겨우 맥주 한잔 놓고 한두 시간씩 떠드는데 말입니다. 이에 관한 자료는 없더군요.

 

출처 -유튜브채널 지식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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