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울 사람일수록 신경쓰고 해서는 안될 선을 지키는 비결
가까울 사람일수록 신경쓰고 해서는 안될 선을 지키는 비결
의심 없이 당연하게 여겼던 것인데,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면 어떨까요? 이것이 가까운 사이라서 더 크게 번지는 이유였다면 어떨까요? 한 정신분석 전문의는 많은 환자를 상당해오면서 친구든 가족이든 가까운 사람일수록 해서는 안 될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무엇일까요? 오늘은 책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에서 찾은 가까운 사람일수록 해서는 안 될 3가지. 아무리 가까워도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에 관해 말씀드릴까 합니다.
서로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가까운 사람과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가까운 사람일수록 선을 지켜야 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그런데 선은 어떻게 지키면 되는 걸까요? 선을 지킨다는 것은 다른 말로 일정한 거리를 둔다는 의미와 같습니다. 그렇다고 마음을 닫는 것은 아닙니다. 일정 거리 안으로 불쑥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한다는 의미입니다.
이에 대해 책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은 거리를 둔다는 것은 상대방이 나와 다르다는 것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책은 가까워진다는 것은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게 아니라 강조합니다. 사람이든 우정이든 두 사람이 친밀해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상대가 나와 다른 사람이란 사실을 인정하고 존중해 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 서서히 자신을 열고 상대를 이해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나 가까운 관계일수록 이를 쉽게 무시하곤 합니다. 친구나 가족 관계에서 나와 다르면 비난하거나 비판하고, 고치려 듭니다. 가까울수록 차이점에 실망하고, 이해가 안 된다는 반응을 보이면 결국 싸움만 벌어집니다.
평행선만 달리면 결국 이걸 헤어져야 하는 이유로 삼는 경우가 많습니다. 책은 가깝지 않을수록 더 친절한 경향을 보인다고 말합니다. 왜 그럴까요? 상대에게 기대하는 바가 그리 크지 않고, 서로 다르다는 것도 비교적 쉽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실망도 별로 없다고 말합니다. 가까운 사이에도 이것을 적용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가까우니 기대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모르는 사람은 모르니가 기대 자체를 안하는 것이지만, 가까운 사이에서는 상대가 잘 되거나 좋은 방향으로 기대를 합니다.
하지만 기대에 어긋난다고 상대를 비난해야 할 이유는 아닙니다. 내가 만든 기준에 상대를 맞추고 혼자 화내는 꼴과 다름없습니다. 그것이 상대를 원하는 기대였을까요? 기대에 어긋났을 때 더 힘든 사람은 당사자입니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이 되도록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기대를 하되 압박하지 않고, 기대에 어긋나면 상대보다 내 실망을 더 크게 드러내기보다 응원으로 대신하는 것이 상황을 현명하게 정리하는 것이 아닐까요? 상대의 행복을 바라는 행동이 아닐까요?
사실 기대로 인한 갈등도 상대와 나는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상당히 해소될 문제입니다. 누군가와 가까울수록 그들이 나와 같기를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이 여러분과 매우 다르더라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찾고, 자신에게도 진실하면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다르다는 걸 받아들이는 것과 가까워지는 것은 반대가 아닙니다. 존중하기 때문에 신뢰하게 되고, 신뢰하기 때문에 가깝다고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나를 인정해주고 존중해줄수록 부모님에 대한 감사함이 깊어지는 것처럼요.
상대가 모든걸 받아 줄 거라 기대하지 마라
책의 저자는 의사와 작가로 성공한 자랑스러운 딸이었지만, 하루아침에 파킨슨병을 진단받고 병마와 싸우게 되었습니다. 병세가 악화되면서 걷는 것초자 힘들어지고 혼자선 몸을 뒤척이지 못할 정도가 되자 팔순의 노모가 딸의 병 수발을 들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약의 부작용으로 줄줄 흐르는 땀을 닦아 주던 어머니가 한 말은 큰 상처였습니다. “꼬라지가 그게 뭐니” 무심결에 툭 던진 이 한마디, 힘들었을 어머니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서운함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엄마가 어떻게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다른 사람도 아닌 엄마가’
엄마이기에 딸의 아픔을 알고 있지 않느냐는 서운함일 것입니다. 엄마니까 다 이해하고 받아주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저자의 표현대로라면 자신이 아이처럼 어머니에게 매달리고 싶었던 것이죠. 원하는 건 뭐든 엄마가 해 줘야 한다고 떼쓰는 아이처럼 말이죠.
여기서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은 ‘다른 사람도 아닌 엄마가’라는 단어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상대가 모든 걸 받아 주고 채워줄 거란 기대 때문입니다. 게다가 가까운 사람에게는 그 기대가 훨씬 더 큽니다. 의무나 당연한 것으로까지 여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신이 아닌 이상 누구도 그렇게 하기 힘듭니다.
불가능한 또 다른 이유는 서로가 다른 이유는 서로가 다른 욕구를 지닌 엄연히 다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가 될 수 없는데 하나이길 바라는 것은 결국 채워질 수 없는 좌절만 안길 뿐입니다. 기대할수록 실망과 갈등만 커갑니다. 이럴 때 으레 상대방에게 책임을 돌리고, 상대방은 별로 애쓴 게 없는 것처럼 보이는 함정에 빠진다고 책을 지적합니다.
힘든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가족들이 위로해주고 응원해주길 바랍니다. 하지만 기대와 다른 모습에 욱하며 화를 내곤 합니다. 원인을 살펴보면 말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자신을 이해해주고, 모든 걸 받아 줄 거란 기대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너무 큰 기대를 하는 것 같습니다. 가까우니까 이해하는 능력이 더 뛰어나겠지만, 절대 나 자신만큼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엄마가’, ‘다른 살마도 아닌 당신이’란 단어가 떠오를 때 혹시나 상대가 모든 걸 받아줄 거란 기대를 하고 있었다면 서둘러 빠져나오시길 당부드립니다. 그것이 서로를 이해하고 감정의 골이 깊어지지 않게 하는 지름길이지 않나 싶습니다.
‘우리 사이에 이런 것까지 신경 써야 해?’라는 생각
책은 흔히 가까운 사이가 되면 “우리 사이에 이런 것까지 신경 써야 해?”하며 함부로 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합니다. 결국 그것이 기대와 말로 나타납니다. 말하지 않아도 상대가 모든 걸 받아 줄 거라 기대하고,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조심하는 말을 여과 없이 해 상처를 줍니다. 그렇다면 신경은 어디에 쓰려고 하는 걸까요?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만 쓰려고 하는 걸까요?
시간이 흐르면서 좋은 사람에게 잘해야 한다. 가족에게 정말 잘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분 중에 가깝다고 신경 쓰지 않아 후회스러워서 이렇게 말해주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신경 써야 한다는 것은 최소한의 선을 지키고, 예의를 지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좀 더 마음이 닿는다면 잘해주면 더 좋죠.
이것은 몸과 마음이 지칠 정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평온한 상태에서의 일상과 같습니다. 선과 예의에 신경 쓰지 않는 것은 친한 사이에서 흔히 보이는 듯하지만, 그들 사이에도 은연중에 선이 존재합니다. 이렇듯 오래가는 관계에는 선이 존재합니다. 진짜 친하고 오래가는 사람들은 선과 예의 등, 좋은 관계를 위해 신경 쓰는 사람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