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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어마어마하게 큰 땅을 갖게 된 계기와 동쪽 끝까지 간 이유

지난 2월,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습니다. 서방 세계에선 즉각 러시아의 팽창주의가 다시 또 시작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의 소리를 쏟아냈습니다. 전 세계가 경계 태세에 들어간 것입니다

 

러시아가 1,200여 년에 걸쳐 틈만 나면 전방위적으로 영토를 넓혀온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주변국들의 피해야 더 말할 것도 없죠. 러시아의 영토는 무려 1,713만제곱킬로미터로 지구상에서 압도적으로 가장 넓습니다.

 

어떻게 얘기해야 이 크기가 실감 날까요? 러시아는 우선 지구 육지면적의 11.4%를 혼자 갖고 있습니다. 그다음 순위인 캐나다, 미국, 중국보다도 거의 2배 이상 크죠. 한반도에 비해 78배의 크기고, 남한에 비해선 무려 170배나 됩니다. 러시아의 끝에서 끝까지 직선거리는 8,000킬로미터로 서쪽의 모스크바에서 동쪽의 블라디보스톡까지, 기차로 가면 밤낮을 달려도 일주일이 걸리죠.

 

비행기로 가면 모스크바에서 한국 오는 것보다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톡까지 가는 게 1시간이 더 많은 9시간 걸립니다. 이마저도 1991년 소련 붕괴로 15개의 공화국이 독립 국가로 쪼개져 나가면서 면적이 23%나 줄어든 결과입니다. 어떻게 러시아는 이처럼 거대한 영토를 가진 나라가 될 수 있었을까요?

 

거기에는 3가지의 동인이 있는데 그 중 가장 강력한 것은 러시아의 숙명적인 지정학입니다.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러시아도 처음부터 대제국은 아니었습니다. 고만고만한 도시 국가들이 난립해 그야말로 난세를 이루고 있었죠. 이들의 뿌리는 모두 우크라이나 수도인 키이우를 근거지로 하는 키예프 공국입니다.

 

이를 빌미로 푸틴이 지금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원래 같은 나라”라며 침공을 정당화하고 있죠. 13세기부터는 그마저도 몽골의 지배를 받는 암흑기였습니다. 멸망한 키예프 공국을 대신해, 몽골은 모스크바 공국에게 이 지역의 공물을 걷는 역할을 맡기죠.

 

러시아 전체를 다스리기 위한 꼭두각시가, 그 출발점인 셈입니다. 하지만 모스크바 공국은 이 덕에 러시아의 최강자가 되죠. 공물을 걷고 바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떡고물을 챙긴 덕에 경제적으로 부유해진 덕입니다.

마침내 15세기가 되어선 러시아를 옥죄던 몽골이 급격히 쇠퇴하면서 모스크바 공국은 드디어 이 일대를 통합하게 됩니다. 하지만 러시아에겐 치명적인 약점이 있죠. 토지는 비옥하지만 적의 공격을 쉽게 막을 수 있는 자연적 방어벽이 없다는 것입니다. 

 

모스크바에서 산을 가고 싶으면 차 타고 3박 4일은 달려야 한다고 할 정도로 이 일대는 완벽한 평원이죠. 적이 건너기 어려운 거대한 강도 없고요. 때문에 약소국에 불과했던 초기의 러시아는 주변 강대국들의 동네북이었습니다. 남쪽에선 중앙아시아 초원을 타고 몰려온 몽골에 의해 약 250년 간 노예 생활을 해야 했고, 서쪽에선 동유럽 대평원을 타고 순식간에 나타난 독일의 튜턴 기사단이나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왕국으로 쏙대밭이 되어야 했습니다.

 

북쪽에선 북유럽 대평원을 타고 건너온 스웨덴에게도 영토가 초토화되었죠. 19세기 이후 강성해진 시기에도 마찬가지여서 나폴레옹과 히틀러도 이 평원을 타고 모스크바까지 쉽게 진격할 수 있었습니다. 러시아로선 자연 방어벽을 마련하는 게 국가 존망을 다투는 문제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거대한 산맥이나 강을 인위적으로 만들 수는 없는 노릇, 러시아는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바로 영토확장입니다. 어디까지? 자연 방어벽이 있는 곳까지입니다. 그래서 러시아가 주목한 게 서쪽으로는 카르파티아산맥이고 남쪽으로는 캅카스산맥입니다.

 

루마니아, 우크라이나, 폴란드, 슬로바키아, 체코에 갈고리 모양으로 걸쳐 있는 카르파티아산맥은 러시아가 가장 중요시하는 곳이죠. 이곳만 가질 수 있다면 서유럽의 강국들은 폴란드에서만 지키면 되니 방어선이 훨씬 짧아지게 됩니다. 그래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폴란드를 그 어느 나라보다도 탐내왔습니다. 한때는 실제로 지배해 이곳에 국경을 둠으로써 러시아의 숙원을 풀기도 했죠.

 

남쪽의 캅카스산맥은 14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전 유럽을 벌벌 떨게 했던 오스만투르크 제국을 막기 위해선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할 요충지였습니다. 잠재적인 적국 중 하나인 이란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도 없고요. 그래서 이 지역의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등, 캅카스 3국까지 손을 뻗치게 된 것입니다.

러시아가 오랜 세월 팽창 일변도의 정책으로 밀고 나간 또 다른 이유로는 부동항 문제도 있습니다. 러시아를 유럽 열강의 반열에 올린 17~18세기의 표트르 대제는 해군 없는 대국은 있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신분을 숨긴 채 네덜란드에 가서 조선술을 직접 배울 정도로 열성이었죠.

 

그에 의해 러시아 함대가 처음 만들어졌지만, 문제는 겨울만 되면 바다가 얼어붙어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때부터 러시아는 1년 내내 얼지 않는 항구를 찾아 나섰습니다. 자연 방어벽 찾기와 마찬가지로 부동항이 나올 때까지 영토를 넓혀나갔죠. 

 

수백 년간 북대서양과 지중해, 태평양을 뒤진 끝에 3개의 부동항을 얻기는 했습니다. 발트해의 칼리닌그라드와 흑해 크림반도의 세바스토폴, 그리고 극동의 블라디보스톡이죠. 하지만 칼리닌그라드는 스웨덴에, 세바스토플은 튀르키예에, 블라디보스톡은 일본에 쉽게 봉쇄될 수 있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러시아의 부동항 찾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1979년의 아프가니스탄 침공도 실상은 파키스탄을 통해 아라비아해로 통하는 완벽한 부동항을 얻기 위한 사전작업이었다는 설이 설득력 있는 이유입니다. 러시아가 자연 방어벽과 부동항을 얻기 위해 서쪽과 남쪽에서 좌충우돌했지만, 동쪽의 시베리아를 얻지 못했다면 결코 이런 큰 나라를 만들진 못했을 겁니다.

 

지금도 러시아 전체 영토에서 시베리아는 77%나 차지합니다. 러시아는 16세기 후반부터 우랄산맥 너머의 시베리아로 눈을 돌렸습니다. 주변의 공국들을 모두 정복해 평원지대가 안정된 덕이죠. 그리고 100년도 안 돼, 그 넓은 시베리아 땅을 모두 영토로 두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경이적인 정복 속도가 가능했을까요? 그건 무엇보다 경쟁 상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서구 열강들은 이 춥기만 한 불모지에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시베리아에서도 몇몇 몽골제국의 잔존 국가들 외엔 이렇다 할 토착 세력이 없었습니다. 여전히 칼과 활을 사용하는 이들이 총과 대포로 무장한 러시아의 적수가 될 수는 없었죠.

 

이 시기 시베리아의 토착 부족을 다 합쳐봐야 고작 30만 명 정도였습니다. 이들은 주로 수렵과 유목 생활을 했죠. 더구나 러시아인들이 가져온 천연두로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시름시름 앓다 죽었습니다. 마치 중남미에 간 스페인의 정복자들을 연상시키죠.

 

상황이 이랬으니 러시아는 사실상 시베리아를 거저 주운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정복 속도가 이처럼 빨랐던 건 모피 덕이기도 합니다. 당시 시베리아산 모피는 유럽과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귀족 여인이라면 한 개쯤은 가져야 할 명품 중위 명품이었습니다.

 

담비나 여우 털로 만든 모피가 얼마나 비쌌던지 한때 모피 무역은 국가 수익의 30%를 차지했습니다. 그래서 모피는 ‘털이 달린 황금’이라고 불렸죠. 얼마나 많이 잡아댔던지 담비, 여우, 수달, 밍크 등은 금방 씨가 말랐습니다. 그러면 러시아인들은 곧바로 시베리아의 더 동쪽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엔 농민과 유배자 등을 이주시켜 정착촌을 만드는 방식을 반복했습니다. 토착민들에겐 모피를 조공하는 조건으로 물자도 지원하고 생활방식도 유지할 수 있게 했습니다. 그 덕에 시베리아의 정복 속도는 더 빨라졌습니다. 물론 거부하는 부족은 몰살시키는 제국주의의 잔혹함도 서슴치않았죠.

 

러시아인들이 베링해협을 건너 알래스카에 진출한 것도 모피때문이었습니다. 나중에 알래스카를 미국에 720만 달러에 팔아넘긴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가 미국의 캘리포니아와 하와이를 소유할 뻔했던 얘기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습니다.

 

알래스카에 이주민이 늘어나자 식량을 공급할 땅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찾아낸 곳이 지금의 샌프란시스코 근방입니다. 러시아는 여의도의 약 7배되는 면적에 농사도 짓고, 군사 요새도 운영했습니다. 나중에 재정 악화로 멕시코 사업가에게 3만 달러에 팔아넘겼죠.

 

이 와중에 러시아는 하와이에도 진출해 역시 군사 요새를 두었습니다. 하지만 실익이 적다는 본국의 판단에 따라 금방 철수하고 말았습니다. 오랫동안 서구세계에선 러시아가 시베리아 같은 쓸모없는 땅만 잔뜩 갖고 있다고 조롱했습니다. 하지만 시베리아는 러시아에게 자연 방어벽과 함께 모피라는 막대한 수익도 안겨 주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석유와 천연가스로 러시아의 경제를 떠받치고 있으니 시베리아는 러시아의 엘도라도인 셈입니다.

 

- 유튜브 "지식 브런치" 채널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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