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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은 왜 중국처럼 하나의 나라가 아닌 여러 나라로 쪼개져 있을까?

유럽은 작은 대륙입니다. 1,018만km2의 넓이로 가장 작은 대륙인 호주보다 조금 더 큰 정도죠. 이 안에 국가를 보는 기준에 따라 적게는 45개국, 많게는 57개국이 있습니다.

 

가장 큰 대륙이자, 유럽보다 4.5배나 큰 아시아와도 큰 차이가 없죠. 이곳엔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 1, 2위인 인구 1,000명의 바티칸도 있고, 인구가 4만 명도 되지 않는 모나코도 있습니다.

 

유럽에는 왜 이렇게 많은 나라가 있는 걸까요?

사실 유럽은 역사적으로 단 한 번도 통일된 적이 없습니다. 1,00년 제국 로마조차도 현재 유럽의 절반 이상을 가진 적이 없습니다. 로마 멸망 후 유럽을 통일하겠다는 야심가들의 도전은 계속되었습니다. 로마의 후계자를 자처했던 8세기 프랑크 왕국의 샤를마뉴도 있었고, 19세기의 나폴레옹과 20세기의 히틀러도 그런 사람이죠.

 

하지만 도전은 늘 실패했습니다. 통일은 커녕 이들의 지배가 끝날 때마다 유럽은 여지없이 더 많은 나라로 쪼개졌습니다. 유럽은 역사를 통틀어 통합이란 구심력보단 분열이라는 원심력이 작용하는 땅입니다.

 

유럽이 이렇게 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근본은 지정학입니다. 한마디로 유럽은 곳곳이 국가를 만들기도, 국가를 방어하기도 좋다는 지리적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이에 관해선 <총균쇠>의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와 <강대국의 흥망>을 쓴 폴 케네디의 설명이 가장 설득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다이아몬드가 주목한 건, 유럽의 해안선과 강, 그리고 산맥입니다. 지도를 보면 유럽의 해안이 얼마나 길고, 거칠며, 굴곡이 심한지 알 수 있습니다. 면적이 비슷하지만 거의 모든 것이 정반대인 중국과 비교해보면 더욱 확연하게 드러나죠.

 

중국을 보면 해안선이 아주 매끄럽습니다. 이에 반헤 유럽엔 바다가 육지 속으로 깊숙이 들어간 만과 땅이 바다로 돌출된 거대한 반도가 정말 많습니다. 

반도가 무엇일까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반은 섬이나 다름없다는 땅입니다. 섬 못지않게 방어에 유리하지요. 이런 나라를 치려면 육군뿐 아니라 해군까지 동원해야 합니다. 대개 반도와 한 세트인 만에는 좋은 항구가 발달하니 이를 이용한 교역과 해상교통로로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여러모로 국가가 생존하기 딱 좋은 지리적 조건이죠.

 

그래서 유럽에선 이베리아반도에 스페인이, 이탈리아반도에 이탈리아가, 발칸 반도에 그리스, 알바니아, 불가리아 등이, 크림반도엔 우크라이나가 자리하게 됐죠. 거기에 유럽의 북쪽으로는 브르타뉴반도에 프랑스가, 유틀란트반도엔 덴마크가, 그리고 스칸디나비아반도에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가 아주 오래전부터 터를 잡게 된 것입니다.

 

다시 중국 부근을 보면 위로는 한반도가 있고, 아래로는 인도차이나 반도가 있습니다. 한반도의 우리와 인도차이나반도의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 등이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유지한 것도 반도의 지정학적 유리함과 무관치 않을 것입니다.

 

여기에 유럽은 영국해협으로 고립된 두 개의 커다란 섬도 있죠. 바로 영국과 아일랜드입니다. 반도보다도 더 국가를 만들고 지키는 데 유리하죠. 이 부분 역시 중국은 다릅니다. 중국 앞바다에 조금 큰 섬이라곤 지금의 대만뿐입니다.

 

하지만 아일랜드 면적의 절반도 안 되는 작은 섬이죠. 만약 중국 앞바다에 영국만큼 큰 섬이 있었더라면 일찌감치 중국과는 다른 독립 국가가 들어섰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내륙의 곳곳을 나눈 건 거대 산맥입니다. 

 

얼핏 유럽은 평원이 많을 것 같지만, 주요 국가들을 분리시킨 건 산맥입니다. 피레네산맥은 스페인과 프랑스를 나눠놨죠. 알프스는 프랑스, 독일과 이탈리아의 경계를, 카르파티아산맥은 발칸 반도의 수많은 나라를 만들었습니다. 그 밖에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를 가르는 우랄산맥과 코카서스 산맥도 지정학적으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죠.

 

이 산맥들은 외부 세력이 유럽으로 들어오게 하는 것도 힘들게 하지만 범유럽적인 제국을 건설하고 지속하는데도 장애물입니다. 하지만 곳곳에 국가가 들어서려면 반도와 산맥만으로는 부족하죠. 많은 사람이 먹고 사려면 꼭 필요한 게 강이니까요.

그런데 유럽에선 이 강이 지리적으로 특이한 양상을 보입니다. 유럽엔 황하, 나일, 갠지스, 티그리스, 유프라테스강 같은 하나의 문명을 이룰 만한 거대한 강은 없습니다. 대신 준척급의 강이 정말 많습니다. 중국처럼 좌우로만 흐르는 게 아니라 동서남북 방향도 가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루아르 라인, 엘베 포 다뉴브, 볼가강 등, 강 하나에 나라 하나만 들어선대도 수십 개국이 만들어질 수 있죠. 폴 케네디는 이런 유럽의 지리를 두고 “산맥 때문에 기병 제국이 빠르게 전 유럽을 지배할 수 있는 거대한 평야도,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릴 넓고 비옥한 강 지대도 없었다”고 말합니다.

 

만약 유럽에 황하, 나일, 갠지스,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같은 강이 있었다면 이를 지배하는 세력에 힘이 쏠리면서 거대 제국이 만들어질 수도 있었겠지만 그럴 여건이 안 되었다는 뜻입니다. 해안과 산맥의 자연 방어선 덕에 큰 세력이 작은 세력을 정복하는 일이 어려워지자 유럽은 게르만, 라틴, 슬라브 등, 다양한 민족과 문화 언어를 가진 대륙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복잡성 때문에 유럽은 오랫동안 큰 통일 국가를 형성하기 어려웠습니다. 큰 나라를 이루더라도 늘 각 지역의 토착제력인 영주와 귀족들의 견제로 얼마 못 가 분열되곤 했죠. 로마 멸망 후 중세가 되면서 유럽엔 봉건제가 자리했습니다. 바다와 산과 강으로 고립되어 세력을 키워온 오랜 역사에 비추어 유럽이 선택할만한 딱 그런 제도인 셈이죠.

 

이후 신성로마만 해도 황제는 중국처럼 막강한 권한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큰 나라를 이루기 위해선 황제를 정점으로 하는 중앙집권 구조를 가져야 할 텐데,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는 고작 귀족을 대표하는 대귀족 정도에 불과했죠. 

유럽이 크고 작은 여러 개의 나라로 나뉜 데는 중세 이후의 유럽사를 좌우해 온 종교의 영향도 큰 몫을 합니다. 교황은 때론 신성로마제국 황제보다 더 큰 권력을 갖곤 했습니다. 각 지역의 주교 권환도 막강해서 거대한 영지와 성채를 가진 성직자도 많았습니다.

 

각 지역의 영주만큼이나 정치 권력을 가진 이들은 제국의 출현이 달가울 리 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기독교는 유럽에서 민족 국가가 탄생하는 데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1517년 마르틴 루터로부터 시작된 종교 개혁 이후 신교와 구교는 계속 충돌을 빗다가 결국 ‘30년 전쟁’으로 끝장을 보았습니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종교전쟁이자, 거의 모든 유럽 국가들이 참전한 최초의 국제전쟁이었죠. 30년간 거의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서로 죽고 죽인 이 참혹한 전쟁은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을 맺은 다음에야 끝났습니다. 이 조약으로 유럽의 각 국가는 종교의 자유를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건 종교에 신물 난 각 유럽 국가들이 영토에 기반한 민족 국가의 개념을 드디어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상 카톨릭으로 한묶음된 신성로마제국을 일제히 벗어나 민족을 중심으로 한 다수의 국가가 한꺼번에 독림하게 된 것입니다.

 

이후 유럽은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더 많은 나라로 분열되었지만, 기본적으로 지금의 유럽은 베스트팔렌 조약이 그 바탕이 되고 있습니다. 하는 김에 유럽과 달리 일찌감치 중앙집권화에 성공한 중국의 지리적 환경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마무리 짓겠습니다.

 

사실 중국은 삼면이 천혜의 방어벽으로 둘러싸인 요새 같은 곳입니다. 서쪽은 히말라야와 사막이, 남쪽은 밀림지대가, 동쪽은 바다가 적의 침입을 어렵게 하죠. 유일한 걱정거리는 북쪽의 초원지대지만, 이것도 만리장성을 쌓아 어느 정도 문제를 해소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해안선도 단조롭고 나라가 들어설 만한 크기의 섬도 없습니다.

 

거기에 동서나 남북을 결정적으로 차단할만한 산맥도 없죠. 강도 단순해서 중원을 흐르는 양쯔강과 황하만 손에 넣으면 중국을 지배하는 데 절대적으로 유리했습니다. 그리고 한문과 한족이라는 지배적인 문자와 민족이 있어서 문화적인 통합도 비교적 쉽게 이룰 수 있었죠.

 

이런 환경 덕에 중국은 유럽보다 더 쉽게 통일된 정부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분열과 통합 중 어느 것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왔는지는 아직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통합의 역사가 길었던 중국은 동아시아의 패자였지만, 근대 들어 유럽과 일본으로부터 수모를 당했고, 최근엔 강대국으로 복귀했습니다.

 

늘 분열을 향해가던 유럽은 생존을 건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한때 세계를 지배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주춤하고 있죠. 유럽은 여전히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뤄보지 못한 꿈을 포기 않고 있습니다.

 

이번엔 영토적 통합이 아닌 EU(유럽 연합)을 앞세운 경제적 통합입니다. 그래서 EU를 신성로마제국의 후계자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죠. 하지만 영국의 브렉시트로 유럽의 꿈은 이번에도 어려워 보입니다. 늘 작은 나라로 쪼개져 온 유럽의 오랜 분열의 역사, EU의 위기를 보면 이것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 유튜브 "지식 브런치" 채널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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